박완서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오마주 에세이
나는 독박육아 중이다.
조금 센 워딩인 것 같은데 정확히는 남편이 퇴근하기 전까지만. 남편이 오면 두어 시간 후에 곧 아기는 잘 시간이 되니 내 아기의 하루 대부분은 엄마로 가득하겠지. 나의 하루도 그러하니까.
매일 아침 아기가 눈을 뜨면 그 애는 뒤집기를 하곤 고개를 돌려 옆에 누워있는 날 본다. 그러면 나는 졸음에서 이제 막 벗어나 이불밖으로 손만 내밀고 볼을 간질이며 잘 잤어? 라고 묻는다.
아직 사 개월밖에 안되어 표현이라고는 울음과 옹알이간간한 돌고래소리뿐인 내 아기는 베개에서 머리도 떼지 않는 내 얼굴을 보며 씨익 웃는다.
그제야 나는 아침이 온 것을 깨닫는다. 놀아줘야지 싶어 이불을 허물 벗듯 기어 나와 아기를 다시 눕히고 그 위에서 바라보며 눈을 맞추고 팔다리 쭉쭉 마사지를 해준다. 꼭 안아주면서 온몸에 뽀뽀를 해주면 그 애는 웃는다.
그러고 온종일 잘 놀아주면 다행이련만 그러다가도 이내 무언가 불편한 듯 다양한 음역대의 소리가 터져 나온다. 대부분은 맘마와 기저귀 때문이지만 여하튼 소통이 아직 원활하지 않으니 답답하기도 하다.
매일 아침 통화를 해 딸과 손주의 일상에 함께 머무는 우리 엄마는 이따금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손자의 칭얼거림마저 귀엽단다.
처음엔 작은 칭얼거림 그리고 이따금 악! 하듯이 큰 기합을 넣다가 자신의 요구를 눈치채지 못하는 양육자에게 온몸으로 자신의 불편함을 알릴 때, 그 작은 입 밖으로 악을 쓰는 강성울음이 터져 나온다.
목청이 어찌나 큰지 안아서 달랠 때는 귀가 따가울 지경이다. 그럼에도 안기며 옷자락이나 머리칼을 잡아 내 목덜미를 감싸 안고 진정하려는 작은 몸놀림과 앙앙거리는 목소리는 또 어찌나 귀여운지.
그렇게 육아를 하며 나보다는 ‘엄마’로 살아가는 와중 좋은 기회로 박완서 작가의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에세이집을 선물 받아 읽을 시간이 생겼다.
아기를 낳고 엄마가 되어서인지 가장 마음에 와닿은 글은 책의 제목으로도 선택되어 글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된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라는 챕터였다.
평범하게 키우고 있다. 공개해서 남에게 도움이 될 만한 애 기르기의 비결 같은 것도 전연 아는 바 없다. 그저 따뜻이 먹이고 입히고, 밤늦도록 과중한 숙제와 씨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숙제를 좀 덜 해 가고 대신 선생님께 매를 맞는 게 어떻겠느냐고 심히 비교육적이고 주책없는 권고를 하기도 한다
박완서 에세이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중 한 꼭지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 세계사(2024)
결혼식 때 낭독할 혼인서약서 문구를 남편과 정하면서 마지막 문장에 “아이가 생긴다면 행복한 부모를 보며 자라도록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키우겠습니다”라고 정하고 지금까지 그렇게 키우자는 마음으로 아기를 대하고 있다.
평범하게 키우고 있다는 첫 문장이 내 폐부를 가득 채웠다. 유별나게 키우지 말자,라고 늘 남편에게 말했으면서 나는 아기 발달정보와 영어고민 그리고 국민장난감들을 검색해 보며 이걸 사 말아, 를 혼자 고민하는 유별난 엄마가 되고 있는 것 같았기에.
이런 말이 언제 생긴 건지 모르겠으나 “책육아”가 sns상에서 인기가 꽤나 있다. 인플루언서들 중 자녀에게 책육아를 실천 중이라는 분들은 여러 유명 책들을 공동구매를 열어 판매하고 나는 늘 눈여겨보며 이 책을 들일까 저 책을 들일까를 생각하며 책을 읽어주곤 한다.
정작 내 아기는 아직 글도 모르고 이제야 컬러가 눈에 익을 사 개월임에도.
영어는 또 어떤가. 일찍부터 언어를 흘려줘야 한다기에 영어동요도 따라 불러주고 팝송도 틀어주지만 사실 이런 건 다 내가 유별나게 변해가고 있음에 새삼 반성했다.
국민장난감이라 불리는 종류의 대부분은 전자음과 건전지 그리고 꽤나 자극을 주는 반짝이는 불빛으로 가득해서 그런 류의 장난감은 최대한 들이지 말아야지,라고 여태 몸으로 놀아주고 딸랑이를 흔들어주고 고리로 된 장난감과 치발기로 아기병풍으로 놀아주는 - 조금 거창하게 말해 나의 육아철학도 실은 아기는 원치 않을지도 모르지.
에세이집을 읽다 보면 사랑이 관통된 주제로 작용하는데 글 속에서조차 자녀들에게 담담하고 무던한 태도가 느껴진다. 그 방식이 그녀의 사랑임을 알고 있지만.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랑이 결코 무게로 그들에게 느껴지지 않기를, 집이, 부모의 슬하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바랄 뿐이다
태어난 지 나흘 만에 황달이 심해져서 눈을 가리고 광선치료를 받고 조리원에서도 추석 명절이 끼여 있던 주간에 황달수치가 너무 높아 대학병원 입원을 권유받아 일주일이나 떨어져서 니큐(신생아 중환자실)에 있었던 작은 내 아기.
그때만 해도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조리원 밥도 몇 술 뜨지 못한 채 그저 건강하기만 하라고 빌었었는데 글을 읽다 새삼 깨달은 것이다. 이 모순덩어리. 아기에게 바라는 게 많아지다니.
소박했던 소망이 엄마의 욕심에 거대해져가고 있음에 반성하게 되었다. 소망을 하되, 강요는 하지 말아야지.
(중략) 대강 이런 것들이 내가 내 아이들에게 바라는 사람 됨됨이다. 그렇지만 이런 까다로운 주문을 아이들에게 말로한 일은 전연 없고 앞으로도 할 것 같지 않다.
아직은 무조건적인 이 사랑을 나와의 눈 맞춤 한 번에, 스킨십 한 번에, 안겨서 잠드는 그 순간에 온몸으로 내 사랑을 흠뻑 받아들이고 있는 너. 미소 한 번으로, 칭얼대며 나를 찾는 그 옹알이 한 번으로 화답해 주는 너.
이유 없이 울어대느라 너를 달래는 엉망인 몰골의 나. 새벽마다 잠에서 깬 너를 반쯤 감긴 눈으로 토닥이며 재우려 애쓰느라 숙면은 꿈도 꿀 수 없는 나. 매일 쳇바퀴 같은 일상에 피곤하고 지쳐도 집안일도 육아도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나. 그래서 속으론 화가 나더라도 네게는 내색하지 않고 대상 없는 분노를 네가 잠든 시간에 허공에 소리 없는 외마디 비명으로 풀기도 했던 나.
그렇게 지지고 볶으면서도 내 새끼 귀엽다며 곤히 잠든 너를 내일은 더 예뻐해 줘야지 다짐하게 되는 나.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기는 네가 내 나이가 되고 그보다 더 자라면서 희미하게 퇴색되어 가는 과거이겠으나 그 작은 심장 안에 용기와 사랑 그리고 행복이 가득하도록 지금부터 차곡차곡 적립해 줄게.
살아가는 모든 시간이 즐거울 순 없겠지만 두려움과 외로움이 네게는 멀게만 느껴지는 단어처럼 만들어줄게.
가슴이 가득 차도록 엄마의 사랑은 진하고 무거울지언정 네게는 가볍고 부드러운 깃털 하나만큼의 무게감으로만 느껴질 수 있도록.
반짝이는 매 아침마다 행복과 용기를 한 스푼씩 그리고 사랑을 가득 담아줄게.
위 에세이는 세계사 출판사의 2024년 신간인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 결정판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를 오마주한 에세이로 콘텐츠 협업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