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보 Jan 14. 2024

아버지를 기록합니다.-2

브런치, 미분화된 나를 만난다.

  아버지에게 남겨진 시간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그 장소를 찾고 있었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몇 개의 SNS를 생각했지만 어떤 곳은 글보다 사진이나 영상을 우선하고 있고 글밥이 조금 길어진다면 우리 학생들 말로 누가 요즘 그렇게 구구절절 쓰냐고 사람들 안 읽는다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촌스럽게 때로 그런 구구절절한 글을 올리고 있기도 하다.

그 와중에 우리 아이와 관계된 경로를 통해 타고, 타고 들어오다 보니 브런치? 이름조차 생소한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됐다. 사람들은 힘들고 난감한 어느 순간에 맞닥뜨리는 우연을 마치 인연이라 여기는 경우가 많다. 따지고 보면 우연은 없다. 내가 그곳에 갔기 때문에 인연이 생기는 것일 뿐.

그냥 우연이고, 인연이고 나는 지금 어딘가에 내 마음을 엮고 싶은 그 순간 너를 발견한 거다, 브런치.




 23년 1월 12일, 12월 그날 이후로 약 20일 정도가 지났다. 아버지는 치료 전 잠시 집에 머물고 있다. 빠르면 다음 주부터 시작될 항암 전 약 일주일 동안 아버지는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정리하자면...


1. 보훈병원 위탁병원 변경 요청.

2. 종친회 회장 업무 변경.

3. 부가세 신고, (세무서 직접 가서 해야 마음 편함)

4. 각종 공과금 정리.(은행 공과금 정리기로 처리해 영수증을 철해두어야 마음 편함)

5. 집안, 밖 쓰레기통 비우기.

6. 최근 맛 들인 G치킨의 간장치킨 손주들과 먹기. (막상 가장 맛있는 건 이 브랜드의 치킨 무, 치킨무 맛집이기에 두 마리나 시키시는 것이라 함)

등 등...



앞에는 뭔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뒤로 갈수록 아버지는 일을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다. 그중에 쓰레기통 비우기를 잠깐 보자면...

 아버지는 정말 지나치게 깔끔한 분이다. 거실에 가만히 앉아있다가도 손가락으로 바닥의 먼지나 머리카락을 쓱 모으고 있는 그런 모습에 어머니는 때로 그만 좀 하라고 소리를 치곤 한다. 어머니 본인도 막상 베란다를 손걸레질 하는 분이면서. 참고로 두 분의 자녀인 나는 전혀 닮지 않은 모습이다. 가끔 아이들에게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시면 하는 말씀이 뭐더라~라고 물으면 아이들은 말한다.

"이게 집이여, 돼지우리여."

그리고 우리는 서로 꿀꿀 거리며 깔깔대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아버지가 아이들 등교를 맡아주시던 불과 얼마 전까지, 단 한 번도 아버지는 내게 집이 이게 무어냐 나무라신 적이 없다. 늘 아이들을 키우고, 일을 하고, 공부하는 내 막내딸은 도와주지 못해 안쓰러운 존재일 뿐.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때로 조금 과격하지만 딸에 미친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 보면 나도 아버지에게 미친것 같기도 하다.

아버지와 나는 서로에게 '완벽히 미분화된 상태' 딱 그 수준.

그래서 나는 아버지와 마지막을 준비하는 이 시간이 매우 불안하고, 지금 이 순간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고 사고하기보다 감정의 폭풍우를 겪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아버지에게 찰싹 붙어 그렇게 늘 의지하고 있었다.

어느 날 나를 잘 아는 교수님이 내게 물으신 적이 있다.

 "이선생은 지금 자립이 되었나?" 그때 나는 약간 망설였지만 그렇다고 대답을 드렸는데 아직 못한 것 같다며 웃으며 넘어가신 적이 있다. 당시에는 웃고 지나갔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딩동', 정답이다.

 아버지가 편찮으시며 우리 식구들 일상은, 특히 나와 아이들은 대혼란이었다.  당장 아침 등교시간을 맞추기 위해 우리는 매일 아침 전쟁을 치러야 했고, 나는 5분, 10분 지각에 늘 죄송합니다를 말해야 했고... 그리고 늘 할아버지 간식을 먹으며 편하게 하교하던 아이들은 학교 셔틀버스를 타고 내려 엄마가 오기 전까지 할 수 있는 몇 가지 방안을 마련해야 했다.


1. 도서관 가서 기다리기.

2. 도서관 휴관일에는 근처 블럭방에 가 있기.

3. 배가 고프면 패스트푸드점 가기.

처음 엄마없이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우리는 이주간 연습을 했다.

이 몇 가지를 실행하기 위해 우리는 주말마다 연습을 했다.

그리고 이주즘 연습했을 때 큰아이가 했던 말은,

"할아버지가 편찮으시니까 너무 힘들어."

그러게 너무 힘들다.

그런데 후야 우리 모두 그동안 할아버지를 너무 힘들게 한 건 아닐까... 이제야 비로소 그게 보인다.

나는 팔십이 넘은 아버지가 해주시던 그 많은 것들을 너무 쉽게 받아왔다. 자립하지 못한 아이처럼.


작가의 이전글 아버지를 기록합니다.-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