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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보 Jan 19. 2024

엄마의 보물상자

나는 누구인가?

  내 직업을 설명할 때 딱 하나로 대답하기가 어려운 순간이 있다.  가까운 예로 브런치에 직업을 소개해야 할 때 뭐라고 작성해야는가 잠시 고민했다. 언젠가 방송에서 김정운 교수가 여러 가지 문제연구소 소장이라고 소개된 걸 본 기억이 있다. 그때 괜찮은데? 했던 생각이 난다.

나는 미니어처 작가이고,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장애학을 연구하고 상담하는 상담사이고, 상담을 공부하는 학생이기도 하다. 늘 연초 아이들이 학교에서 가져오는 설문지에 부모의 직업을 쓰는 부분에서 잠시 머뭇거린다. 언젠가 교수님 한분이 아들이 엄마 직업에 '교육업 종사자'라고 써서 내기에 두었더니 학기 상담 중에 담임 선생님이 혹시 학습지 선생님이시냐 물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처럼 맞는 말이 없다. 교육업 종사자... 상담업 종사자...

 이번에는 이들이 쓰고 싶은 대로 써가게 두어야겠다.


  언젠가 심리학 수업에서 직업을 왜 우리는 명사형으로만 대답해야는지에 대해 다룬 적이 있다.  그때 정말 뒤통수 제대로 빡! 맞은 기분이었다.

  평소 큰 아이에게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에 대해 물으면 아이는 늘 모른다고 하였는데 그 날 수업 이후 질문을 바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what과 how는 다르니까. 그때 아이는 좋은 사람이라고 대답을 했고, 가장 최근에는 유명해져서 나 혼자 사는 프로 그램에 나오고 싶어라고 말하기도 했다.


오우케이, 됐어. 그거면 됐어.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을까?

  내가 작업하는 미니어처의 가구들은 대체로 진한 고동색, 갈색으로 표현할 때가 많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번트엄버 burnt umber. 회사마다 색은 조금씩 다르지만 는 이 갈색톤을 좋아한다. 어떤 글에선가 엄버 umber는 인간의 첫 번째 물감이라 부르기도 한다고 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흙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일 것 같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구들은 대체로 '쌔 것'의 느낌보단 손때가 묻고 길들여진 그런 오래된 느낌의 것들로 만들어진다. 만드는 사람의 개인적 취향이기는 하지만 나는 익숙하고, 변함없는 그런 편안한 느낌의 것들이 좋다. 몇 해 전부터 학생들의 작품 중에는 인스타 감성이라는 약간 파스텔톤의 채색을 많이 볼 수 있는데 때로 그들의 작품을 보다 보면 내 스타일이 너무 올드한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몇 번 다른 시도도 좀 해봤는데 영 마음에 안 들어 그냥 전처럼 사는 것으로. 그것이 나다움이라 결정했다.

  최근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고 있정리하다 보니 내가 많은 부분 아버지를 닮았음을 느끼는데 한우물만 파는 그런 고루함이 있다.

그런 고루함이 습관에 젖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고루固陋인지, 융통성 없이 견문이 좁은 고루孤陋인지는 모르겠다. 둘 다인 듯도 하고.

   최근 연구와 같은 글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를 쓰는 시간이 많아졌다. 요즘 나는 어딘가 이렇게 나의 이야기를 하며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을 표현할 곳이 필요하다.

 그렇게 나는 지금 나를 말하고 싶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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