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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보 Jan 17. 2024

아버지를 기록합니다.-4

두 번은 없다.

  아버지는 선택한 일을 바꾸는 법이 거의 없다. 내가 아는 한 아예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만큼 굉장히 신중한 분이다. 어떤 일에 대한 결정도 그러하지만 삶의 패턴을 바꾸는 법도 거의 없다. 한 곳의  목욕탕 내 이발소를 몇십 년을 다니셨는데  십년전즘 지금의 이발소로 옮기신 이유는 목욕탕이 닫으며 이발소도 닫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버지의 성격이 본인을 지금에 이르게 한 것은 아닌지 어제는 좀 원망스러웠다.




 항암 시작을 앞두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혹시 오진은 아닐까? 우리 겨우 병원 한 곳만 갔는데? 다른 곳에 가면 수술을 할 수 있다고 하진 않을까?

아버지는 이전보다 컨디션도 좋고 혈변도 멈추었다며 지금의 상황이 최악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갖고 계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대학병원에서 진단을 받았고 몇 번의 정밀검사로 크게 달라질 건 없겠지만 지푸라기라고 할까? 그런 막판의 혹시 모를 기적을 생각한다.

그냥 한 군데만 더 가보자. '명의' 딱 그분에게 한 번만 가보자. 그럼 우리 좀 더 이 순간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어쩌면 그 후회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고픈 남게 될 사람들의 면죄부 같기도 하다. 그리고 입원 전 딱 한 곳만 가보자고 그렇게 결정했다.




  아버지가 편찮으시단 이야기를 듣고 친지나 지인들이 오면 모두 변함없이 하는 말이 있다.

"서울에는 가보셨어요?"

 서울... 서울에 가면 달라질까? 우리가 말하는 그 서울의 메이저 병원의 등록번호만 생긴다면 아버지는 한 이삼년즘 더 사실 수 있을까.

그런데 이미 우리 가족은 오래전 그 메이저 병원에 진료를 보러 갔다 지금 입원하면 살려주겠다는 의료진에 말을 믿고 그 자리에서 입원을 결정하고 그렇게 병원에서 치료만 받다 만 일 년이 되기도 전에 가족을 보낸 경험이 있다. 그때 우리는 의사와 병원을 진짜 오지게도 욕했다. 누구 탓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버리지 못하는 아쉬움이다.

그리고 우리는 시간이 지나 또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며칠을 고민하다 서울이 아나라 '전문가'를 찾기로 했다. 우리가 중요한 시험을 치르기 전 과목별 전문가를 찾아가듯 병원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례를 가지고 정확하게 이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의사를 찾아가 보자 선택했고 다행히 빠르게 진료를 잡을 수 있었다. 

 진료의뢰서가 필요해 어제는 아버지가 그동안 다니시던 병원을 찾았다. 응급실에 가시기 전날까지도 다니셨던. 밥맛도 없고 기운도 없고,  무려 두달만에 십키로가 빠지고 빈혈 수치도 조금 있으며 배가 아프다고도 하는데 피검사에 큰 이상이 없고 칼슘이 부족하므로 그걸 열 번이나 맞게 했던 병원. 수십 년을 다닌 그런 단골 환자인 아버지를 모시고 의뢰서를 받으러 병원 문을 열었을 때 데스크에 앉아있는 직원에게 처음 들은 말은 요즘 어떠시냐, 좀 괜찮아지셨냐는 말이다.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말인데 아버지는 거기다가 어째 최고참이 여기 앉아 있냐며 점심시간이 가까워져 직원들을 배려한 것은 아니냐며 말을 건네고 있다.

 하... 아버지 정말 저는 피가 거꾸로 습니다.

나는 접수하며 대장암 말기를 받으셔서 진료의뢰서를 받으러 왔다고 전했고 그 순간 정적이 흐르고  당혹스러워하는 얼굴과 내가 느끼기에(아버지도 그런 것 같다셨긴 하지만) 미안해하는 얼굴로 약간의 탄식을 내뱉는 나이 든 직원의 모습이 그래도 조금은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진료실에 들어간 순간 의사는 잘 지내시냐 또 물었다. 잘 지내면 병원에 왔을 리가 없지 이 냥반아...

그래도 우리는 의뢰서 한 장이 필요했으므로 진단서를 보여주며 설명을 하고 다른 곳에 한번 모시고 가려한다며 의뢰서를 부탁했다. 의사는 시큰둥한 얼굴과 목소리로,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요?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은데. 수술하고 추적치료하고 그러려면."

그 순간 의사 면상에 욕을 한 바가지 해줄 용기는 내게 없었다.  왜 이렇게 생겨먹었는지... 좀 쌈닭 같은 면모가 내게 있으면 좋았겠다.

그렇다더라도 혹시 모르니 모시고 가보려 한다고 그리고 수술은 못하신다고 한다는 말을 던지니 그제야 그 입을 다물고는 글씨를 휘갈겨 써준다.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치료 잘 받으시란 인사를 건네는 직원에게는 그나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온다. 그래도 수십 년을 한결같이 믿고 다닌 당신네 병원인데 적어도 발견하지 못해 미안하단 말까진 아니더라도... 데스크의 직원처럼 치료 잘 받으시란 인사정도는 건넸어야지 않았을까. 나오며 아버지 팔짱을 끼곤 눈물이 차오르는 걸 이를 악물었다.

"아빠, 여긴 두 번 다시 오지도 마."

 진짜 여기 두 번 다시 오지말자. 한 곳만 파는 아버지 성격이 처음으로 원망스러운 날이었다.




GPT에 두 번은 없다는 그림을 그려달라니 가시나무에 다가간 나비를 그려준다.

AI는 어쩌면 가장 감성적인 존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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