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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보 Jan 20. 2024

아버지를 기록합니다.-5

반창고 덕분에.

  눈이 내리고 비가 내리기도 했던 지난 수요일, 서울에서 오전 8시에는 시아버님의 허리 재수술이 있었고, 11시에는 갑상선 암투병 중이신 어머사선 위원소 치료 전 식이교육이 있어 다녀와야 했고, 오후 세시 반에는 용인에 아버지 병원 진료가 있었다.

 남편은 연차를 내고 새벽 다섯시 반에 아버님 병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나가기 전 어젯밤에 끓여놓은 뭇국을 한 그릇 떠주니 부엌에서 몇 수저를 뜨고 나간다.  지난 연말부터 우리 부부는 이 상황 속 정신을 차리자고 늘 서로에게 말하고 있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오전에 일을 급히 정리하고 아이들을 어머니께 맡긴 후 혹시 모를 검사를 대비해 금식 중인 아버지가 언제든 드실 수 있게 과일과 단백질 음료를 가방에 넣어 집을 나섰다.

마지막, 혹시 모를 끈을 잡기 위해 오빠와 나, 아버지 우리는 출발했다. 하필 비가 오고 눈이 내리는 날.


 병원에 도착해 접수를 하고, CD를 등록하고 새 병원이라 깨끗하네 이런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다가 아버지 손을 잡았 는데 그날은 아버지가 내 손을 같이 잡아주셨다.

그리고는 너무도 담담하게...


"혹시, 혹시 입원하자고 하면 안 한다고 그래. 약으로 달라고 해. 여기까지 어떻게 다녀."


나직이 말하는 아버지 말에 나는 자꾸 눈물이 났다. 고개를 푹 숙이고는


"그건 걱정 마. 아빠는 내가 데리고 다녀. 그냥 우선 진료 보고 이야기하자."


그렇게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목이 메 내 목소리가 아버지에게 전달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드디어 이름이 불리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나는 아버지가 진단을 받은 날부터 대장암에 대한 잡다한 지식사전이 되어있었다. 생각보다 서울에 메이저병원 말고도 대장암에 대한 명의는 전국구다. 아마 주변에 대장암 환자가 있다면 내 말의 의미를 백 프로 이해할 것이다. 그중 많은 사례를 가진 의료진, 집과의 거리 등을 살펴 최종적으로 선택해 S병원에 의사를 찾았다. 이분이 나온 프로, 인터뷰 등은 지난 시간 동안 수도 없이 봤기 때문인지 나만 낯이 익다.

 의사가 인터뷰를 하고 침대에 아버지를 누우라 하더니 직접 내진을 했다. 지금까지 진료를 봐왔지만 내진은 처음이었다. 살짝 최근에 본 드라마 '정신병동...'에 나오는 대장항문외과 동고윤 선생의 손가락 꺾기 강박이 생각이 나기도 했다면 이 상황에 너무 코믹일까.

내진을 마치고 다시 이야기가 시작되었을 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간! 현재 CT 상에는 간에 전이된 것처럼 나오지만 애매하다는 결과지의 해석이 있고 담당의가 현재 보기에도 장담할 수 없다.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므로 몇 가지의 검사를 추가적으로 해보고 나서야 결정할 수 있다.

더 질문할 것이 있는지 물었고 나는 아버지가 계셔 잠시 망설였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모두 오픈되어 함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전 병원에서 아버지는 치료는 불가하고, 육 개월에서 일 년 반 여명을 위한 항암만 있다고 했습니다. 저희가 여기까지 온 건 그래서... 그래서 왔거든요."


그 몇 마디 말이 나왔을 때 내 목소리는 내가 느끼기에도 떨리고 있었고 눈물을 꾹 참으려고 입술을 정말 꽉 물고 있었다.

잠시 우리 공간이 멈춘 것 같았고 의사의 다음 이어진 말은,


"간을 보고 그렇게 결정하신 거 같아요. 그러실 수 있죠."


그리고는 아버지를 바라보고 조용히 말을 전했다.


"더 사실 수 있어요. 그러실 거예요."


어쩌면 다시 온 이곳에서도 아버지에게 남겨진 시간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난 이십여 일 동안 늘 들어왔던 의료진의 절망적 단어, '안타깝습니다, 해보긴 하겠습니다만'과 같은 부정적 단어가 아니라 마지막 단호하지만 확실한 의사의 말은 마치

'같이 가죠, 도와드릴게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와 같이 들렸다면 나 너무 갔나?


진료실을 나와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여기서 해볼까 아빠?"

"그러게... 그럴까. 믿음이 가네."

좀 전까지도 약이나 달라고 하라던 아버지의 생각은 달라져 있었다.

'그래, 아버지가 선택한 곳이면 됐어. 더 길게 생각하지 말자'

빠르게 결정을 내리곤 오늘 할 수 있는 검사를 시작했다. 오후 시간이라 며칠 더 와야 할 것 같았는데 마침 취소된 CT 자리가 나서 외래에서 잡았다는 연락이 와 검사를 받을 수 있었고 이틀이나 와야 할 계획이었지만 다음 주 화요일 새벽 일찍 첫 MRI를 잡아줘 조금 기다리더라도 점심 전까지 외래를 볼 수 있게, 하루에 끝날 수 있도록 계획이 되었다.

결정하고 나서부터 척척 이어지는 상황에 기대감이 너무 올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마음을 가라앉혀야겠다 생각했다.

 CT전 조형제를 투여하기 위한 바늘을 다는데 아버지는 반창고가 썩 마음에 들었다. 이 전 병원 입원 중 자꾸 테이프가 떨어져 칭칭 감아달라고 했던 아버지는 깔끔하게 잘 붙어있는 반창고가 마음에 들다.

아버진 우리가 여기서 치료하자고 매달리지 않았어도  여기를 선택하셨을 거다.

반창고 때문에. 아니 반창고 덕분에.




  남편이 아버님이 수술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곤 용인으로 달려왔다. 아들, 딸, 사위에 둘러싸여 모시고 다니니 살짝 주변에서 우리에게 집중하는 눈치를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는 그게 내심 좋으셨던 것 같다. 집에 와서도 어머니께 좋았다고, 든든했다고 이야기하셨다지.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와 오빠를 먼저 보내고 남편 차를 타고 돌아오며 속마음을 털어놨다.


"나 사실 겁이 나. 괜히 여기 와서 헛된 꿈을 꿀까 봐. 아빠가 고생만 더 하는 건 아닐지. 오기 전날에는 나 사실 겁이 났거든. 똑같은 말을 들을까 봐. 얼마 남지 않았다고 그냥 가라고 하면 아빠가 얼마나 절망적이겠어. 그런데 뭔가 희망적이잖아. 처음에는 좋았거든 근데 또 무서워."


"다르지 않더라도 단 하나라도 좋으면 잘한 거야. 아버님이 믿음이 가신다잖아. 남은 시간을 절망적이게만 보내지 않을 수 있잖아. 그거면 된 거 아닌가? 잘했어. 잘한 거야."


남편의 말에 결국 돌아오는 길에 나는 참아 온 눈물을 소리 내 쏟아냈다.


 그래, 후회하지 말자. 잘한 거야.

아버지가 반창고가 좋다고 하셨지. 반창고가 좋다고 하셨지.

그럼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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