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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보 Jan 25. 2024

아버지를 기록합니다.-6

얼마나 자주 우울하신가요?

  조금 전, 아버지와 어머니를 병원에 모셔다 드리고 왔다. 이제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어제저녁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원래는 다학제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일정상 취소가 되었고, 아버지가 열이 갑자기 나기 시작해 우선 입원 후 치료하며 항암을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을 지었다. 갑자기 일정이 변경되어 내일 입원길에 올라야 하는 아버지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실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나는 전화를 끊고 무작정 아이들 짐을 챙겨 친정으로 갔다. 그냥 오늘은 다 같이 자고 싶어서.


 저녁도 드시기 싫다던 아버지는 어머니의 성화에 단백질 음료 한 잔을 겨우 드셨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G치킨을, 그 집의 무를 사드리고 싶었는데... 입맛이 없다고 하셨다.

막내가 뜬금없이 장에 든 앨범과 사진을 가지고 와 거실에 펼쳤다.


큰아이 초등학교 입학식 때 아버지와 교문 앞에서 함께 찍은 사진.

쌍둥이 백일에 아버지가 바닥에 앉아 양 옆에 녀석들을 안고 계신 사진.

아버지랑 함께했던 내 어린 시절 졸업 사진들.

아주 어린 나를 꼭 안고 바닷가에서 찍은 사진.

......

.....

....

다 아버지와 함께한 사진만 보인다. 수 천장의 사진 중에 엄마도 나도 '아버지와 함께'만 보인다.


 오전에 업무를 볼 것이 있어 먼저 나왔다가 아버지를 다시 모시러 갔다. 이미 오빠와 엄마는 짐을 들고 문 앞에 나와 계셨다. 우리가 무슨 영영 못 보는 것도 아닌데 그냥 일주일이면 올지도 모르는데 다들 발걸음이 무겁다.

엊그제 오빠와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오며 식사를 하는 자리에 오빠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저는 예전부터 궁금한 게 하나 있었거든요. 왜 이야기하실 때 사람 얼굴을 보시지 않아요?"

"무안할까 봐 그러지. 말하는 사람 무안할까 봐."

"저는 저를 싫어하시는지 알았어요. 이제는 얼굴 보고 말씀해 주세요."

환갑을 바라보는 아들과, 팔십이 넘은 아버지 두 부자간의 참 훈훈한 대환데 뭔지 모르게 고구마 2,395개 먹은 그런 퍽퍽함이 있다. 목메임이 있다.

그러나, 이 순간 아버지의 정적을 깨뜨리는 대화는 정말이지...


"나도 하나 말할 게 있다. 너는 말을 좀 부드럽게 해라."


나참... 아버지, 이 상황에 세상 무뚝뚝한 아들이 꺼낸 진심에 어울리는 말씀은 아니십니다만.



  

  병원에 도착해 입원 수속을 마치고, 입원실에 도착해 자리를 확인하고, 담당 간호사에게 아버지 약을 설명하기까지의 일이 끝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간호정보 조사지를 작성하다 뒷 장 어느 질문에 멈추고 말았다.

 최근 2주간 절망, 우울, 좌절 등의 기분이 들었나요?
들었다면, 일주일에 몇 번이나 그런 기분을 느끼셨나요?

상담자인 내가 내담자에게 묻는 접수면접 질문사항을 아버지에게 하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주 조용하게 말했다.

그런 기분이 든다고, 얼마나 자주? 거의 매일... 그렇다고 그렇게 말했다.


 상담자 딸년은 도대체 그동안 뭘 배운 건지...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아버지의 모습을 진심이라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삶의 한 순간, 당신에게 남은 시간이 육 개월이라고 들었는데 세상 누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담담하게 수용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왜 아버지가 슬프고, 우울하고, 절망적일 거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는가. 할 수 있다고, 해보자고 그렇게 몰아세우기만 하고 아버지가 지금 이 순간 얼마나 힘든지 그 마음을 들으려는 시도조차 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 말이 있는 거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손주들만 있는 집이 걱정인 두 분은 어서 가라 나를 떠밀었다. 뒤돌아 서기 전 아버지를 안고 잘하고 있으시라고 토요일에 오겠다고 말하는데 눈물이 자꾸 흘러 아버지 얼굴을 탄다. 네가 고생이라고, 네가 고생하는 것만 생각하면... 하며 말을 끝내지 못하시는 아버지 얼굴 옆에 내 얼굴을 묻고 흐느끼다 그렇게 나왔다. 차마 아버지 옆에서 울지 않았던 어머니는 엘리베이터 앞에까지 나온 그제야 소리를 내 울음을 터뜨렸다.


 주차장에 도착해 시동을 한참 걸지 못했다. 마치, 아버지를 내버려 두고 가는 것 같아서.

팔십이 넘은 아버지가 자주 하시던 농담이 있다. 팔십이 넘은 노인들은 다 모아 산 밑에 두어야 한다고. 어느 정치인의 노인 폄하 발언을 비꼬시는 건데 마치 내가 부모 말을 잘 듣는 자식이 된 것 같았다.

내가 아버지를 그렇게 산 밑에 두고 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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