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에게 허락된 가장 소중한 무기
학년교육과정 제출일은 교육과정 설명회(총회) 전으로 이미 정해져 있을 테고, 설명회 전까지 학년교육과정을 제출하는 것이 입학 이후 최우선 목표다. 교육과정 재구성이니 교육철학을 교육과정에 담겠다는 생각은 접어두고, 일단 마감일에 맞추어 제출하는 게 일차 목표다. 한국의 교육과정 계획서는 각종 사건, 사고, 민원으로부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비 위주의 면피용 문서라는 것을 유념하고, 학년부장은 빈틈없이 그 수비 계획을 작성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심신이 지치지 않는다.
교육과정 계획서는 학교 내부구성원 중 결재선상에 있는 사람들 이외에는 읽을 일이 없는 문서다. 교사의 교육철학과 양심에 따른 계획서라기보다는 외부의 시선, 특히 사건 사고가 발생했을 때 빠져나가기 위한 방패막이로 쓰일 면피성 내용들로 가득해 작성하면서 밀려 올 회의감을 각오해야 한다. 1학기 약 20주 분의 주간학습안내 중 3월 첫 주 주간학습안내만 일단 만들어 본다는 마음으로 교무부장한테 받은 학년 과목별 시수를 교육과정 프로그램에 입력한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2024년부터 적용되었는데, 교육과정이 바뀌면 특정 시기에 과목 배치를 어떻게 하라는 제약조건이 있다. 개정 교육과정 적용 첫 학기는 작년 교육과정도 참고할 수 없으므로 학기 시작 전 연수에도 참여해야 한다. 다른 학년부장에게는 없는 수고가 더해지므로 개정 교육과정이 처음 적용되는 학년부장 자리가 공석으로 남아 있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교육과정 변경되는 첫 해에는 학년부장을 맡지 않기를 추천하지만 이미 맡았다면 이왕 맡았으니 내가 1년짜리 교육과정 판을 깐다는 정신승리도 필요하다.
개정 1학년 교육과정에서는 1학년 3월 한 달간 한글놀이 34차시, 학교 적응과정 34차시를 배정하라는 요구가 있었다. 문제는 개정교육과정이 적용되면서 통합교과와 입학초기 적응교재에서 중복되는 내용이 교통정리가 안 되었고, 학기 초 교육과정 내용까지 자세히 들여보지 않고 주간학습안내를 만든 초기 주간학습안내에서는 지난주에 배운 내용이 이번주에 또 등장하기도 했다.
게다가 교육과정 프로그램 회사가 영세 회사다 보니 개편된 지역별 교재의 목차와 차시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서 수동으로 차시 내용을 변경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약 2-3주 정도면 입학초기적응활동 교재가 끝나기 때문에 차시 내용과 쪽수를 수동으로 바꿔도 크게 불편한 점은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당 회사는 물론 입학초기 교재를 개발하는 교육청 담당자한테도 이 문제를 제보했기에 개정교육과정이 적용되는 2년 차 이후에는 발생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외부 강사 수업은 해당일, 해당 차시에만 개별적으로 고정
전일 행사일을 확인해 교육과정프로그램 행사일에 반영한다. 전일 행사가 아닌 외부강사 수업을 행사로 잡으면 과목별 진도표에서 행사일이 너무 많아지고, 나중에 일정이 변경이 되었을 때 행사일 설정을 해지하고 재반영해야 해서 번거롭다. 대신 외부강사 수업은 과목별 진도표에서 해당 수업일(차시)에 개별적으로 고정시키는 게 융통성 있게 일정 변경하기 좋다.
1학기 방학일에는 4교시-식사-귀가하는 일정으로 설정하고, 2학기 종업일에만 1교시 후 곧바로 귀가하는 것으로 설정하면 교육과정 프로그램이 나머지 수업일수 안에 미리 입력한 과목 시수에 맞춰 자동으로 과목을 배치한다. 교육청에서 사전 안내한 제약 조건이 있다면 그 기간만큼은 수동으로 입력하고, 그 기간을 제외한 나머지 기간을 설정해 자동 배열한다. 곧바로 과목별 진도표 메뉴로 넘어가 학기별 방학일까지 모든 교과 진도가 끝나는지 확인한다. 수업일수가 부족하면 차시 내용을 통합해야 하고, 수업일수가 남으면 수업 내용을 늘리거나 추가 수업 내용을 입력한다.
기초 시간표는 매주 반복되는 차시에 초점을 두고,
비반복 교과는 (나이스에는) 공백과 함께 입력
작년 기초 시간표를 불러와 입력해 두면 과목들 배치 순서와 비슷하게 연간시수표가 입력된다. 국어, 수학 같은 주지 교과는 머리가 맑은 1-2교시, 활동적인 수업이나 창체활동은 3교시 이후로 기초시간표를 배치하면 학생들 생체리듬과 어울린다. 교육과정 프로그램(주간학습안내가 보이는 창)에서 기초 시간표와 최대한 비슷하게 배치해야 과목 이동을 최소화해 매주 루틴대로 수업하기도 편하고, 나중에 나이스에 입력하기도 좋다.
행사 일정은 교무부장, 외부강사 일정은 연구부장이나 문화예술 담당자로부터 전달된다. 웹캘린더 공유로 전달되면 좋겠지만 한글파일, 이미지 파일 여러 가지 형태로 오기 때문에 전달 받는대로 인쇄해서 L자 파일에 모아두고 필요할 때 살펴보기를 추천한다. 중요 쪽지 내용은 캡처(ctrl+shift+s)해서 업무폴더에 정리해 두었고, 나중에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는 쪽지는 보관함으로 한 번 더 옮겨두었다.
외부강의나 행사는 공유캘린더에 기록
외부강의나 작은 행사는 공유캘린더에 입력하는 게 수정하기도 편리하고, 학년 선생님들이 수시로 들어가 확인하기도 편리하다. 단 혼자 직관적으로 찾아보기에는 수첩만 한 게 없으므로 교육과정에 반영할 외부 일정이 접수되면 수첩 하나를 정해 1차 입력을 마치고, 학기(학년도) 별 일정이 정리되면 공유 달력에 옮기는 것을 추천한다.
주제어 입력표는 교육과정 라벨지
다음으로 교무부장이나 업무 담당자에게서 전달된 필수 교육시간을 과목과 차시에 배정한다. 차시 키워드를 보고 자동으로 주제어를 입력하는 기능이 교육과정 프로그램에 내장되어 있지만 이 기능은 체감상 70% 정도의 만족도를 보여 나머지는 수동으로 입력해야 했다. 주제어칸에 입력해야 하는데, 적당한 차시가 없다면 여기저기 갖다 붙이기 좋은 특정차시에는 A교육, B교육, C교육이 덧씌워지기도 한다. 법령 또는 교육청에서 요구한 내용이 덕지덕지 붙은 만능 차시가 탄생하고, 교육과정 서류상에서는 수많은 주제의 교육이 40분, 1차시 만에 해결되기도 한다.
교과서 뒤 붙임자료 뜯는 데만도 한세월 걸리는 1학년을 데리고 한 차시에 교육과정 계획서상의 이 많은 교육을 한다는 게 말도 안 되지만, 학교를 향한 사회의 압력은 교육과정을 완전무결한 누더기로 만들었다. 업무 담당 선생님들이 업무 관련 학년 교육과정을 보고해야 하는 시기가 주로 1학기초에 몰려 있어서 업무 관련 과목과 배정 시수를 알려달라는 요청이 자주 온다. 이때 학년 교육과정 계획서 중 주제어로 정리해 놓은 표를 보고 작성해서 보내면 된다.
외부강사 수업 한 차시가 한 주에 끝내도록 계획
한 가지 주제로 학급수만큼의 강사 여러분이 동시에 수업하면 상관없지만 강사가 1명인데 학년에 속한 반이 6반 이상이면 수업 요일을 2일로 나누어야 한다. 저학년은 하루 최대 5교시 수업을 해서 강사 한 분이 1교시부터 5교시까지 수업을 해도 수업을 못하는 반이 생기기 때문이다. 2일 이상 외부강사 수업이 있는 경우 공유 달력을 사용해 수업 시간표를 학년에서 공유하면 간단하다. 강사가 특정 요일에만 수업이 가능해서 한 차시 내용을 2주에 걸쳐서 해야 하면 2주 치 주간학습안내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두 주를 동시에 계획하면 학년 일정을 맞추기 쉽지 않기 때문에 되도록 1주에 한 차시 내용을 끝낼 수 있는 외부강사(업체)를 섭외하는 게 좋다.
꼭 사용해야 하는 외부 강사 예산이 있고, 선호하는 수업이 있다면 교육과정을 계획하는 2월 중에 선예약을 해야 원하는 시기에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이때 어느 예산을 활용해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지, 업무담당자와 예산항목명을 알아두고 별도로 기록해 놓아야 실제 사용 시기에 다시 예산과 액수를 찾느라 시간을 소모하지 않고, 바로 일을 진행할 수 있다.
체험학습은 가까운 곳으로
일단 체험학습을 진행할 수 있는 예산이 있는지 찾아본다. 학교 예산으로 체험학습을 가는 경우가 많은데, 추가적으로 보호자가 부담하는 경비를 걷지 않아야 일하기가 편하므로 체험학습에 필요한 예산이 어느 부서에 무슨 명목(예산명)으로 있는지 확인한다.
저학년은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학교 근처 장소로 체험학습을 가는 게 좋다. 차량을 이용하면 행정 업무가 급증하고 버스 이동시 각종 사건사고 발생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학생들 안전교육, 차량 승하차시 안전문제, 탑승 전 음주 측정, 보험 가입 등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일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결정적으로 사고 발생하면 교사 책임을 물어 법정 소송까지 이어질 수 있으므로 체험학습은 안전이 확보된 곳으로 가거나 되도록 근거리로 안전하게 다녀오는 게 좋다.
올해 우리 학년은 학교 근처에서 숲체험을 하기로 해서 체험학습 장소 사전 답사 없이 당일 숲체험 강사님 강사료만 미리 확보해 두었다. 그 전에 작년 학년부장님에게 강사 전화번호와 평을 들어보고, 학년 선생님들과 협의해 진행할지 여부를 결정한 뒤 강사비 총액과, 준비물, 당일 일정은 강사님과 의논하는 순서로 진행했다. 체험일이 속한 달에 대표강사님 사전 연락을 받고 다른 학년 숲체험 계획서를 문서함에서 검색했더니 예상보다 미리 처리해 놓을 일이 많았다. 일용임금내역서, 체험학습계획서, 강사카드, 강의수락서, 개인정보활용 동의서, 성범죄경력조회, 준비물 품의까지 미리 마쳐야 하므로 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학교 근처에서 체험학습을 해도 행정적인 업무가 상대적으로 적을 뿐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임시공휴일을 대비한 학교장재량휴업일 탄력적 운용
종업일까지 주간학습안내까지 모두 만들어 놓았는데, 대통령이 임시공휴일을 지정한다면 그냥 하루 맘 편히 쉬면 될까? 학교는 수업일수가 정해진 조직이기 때문에 학기 중에 임시공휴일이 생기면 종업일과 졸업식도 자연스럽게 그 일수만큼 뒤로 밀린다. 이미 학교장 재량휴업일이 있으면 그 재량휴업일을 임시공휴일로 움직여 종업일에 변화가 없도록 하면 좋으련만 임시공휴일이 임박해서 지정되어 융통성을 발휘하기도 쉽지 않다. 이미 학교장 재량휴업일에 멀리 이동할 계획을 세워놓은 가정을 위해서 기존의 재량휴업일은 그대로 쉬고, 임시공휴일을 추가로 쉬다 보니 임시공휴일 이후의 일정이 하루씩 밀려 최종적으로 종업일(졸업일)이 하루 늦어진다. 학교장 재량휴업일 있어도 추가로 임시공휴일이 생기면 학교장 재량휴업일이 임시공휴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조건부 재량휴업일 계획이 교육 계획서에 있으면 임시공휴일이 생길 경우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임시공휴일에 외부강의, 체험학습이 있으면 일이 복잡해지는데, 다른 날로 옮기자니 이미 그날에 계획된 일정과 겹칠 수도 있고, 체험학습의 경우 좋은 날짜는 이미 꽉 차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른 날짜로 옮기기도 쉽지 않다. 교육과정 프로그램에서 종업일을 인위적으로 하루 늘리고, 임시공휴일이 된 날의 차시수와 추가로 등교하게 된 날의 차시수의 차이만큼 생기는 차시수를 다른 날에서 추가하거나 빼야 총시수가 일치한다.
자연재해나 임시공휴일 지정과 같은 돌발 변수 때문에 매주 다음 주 주간학습안내를 작성하는 게 어찌 보면 합리적이지만 본업에 충실하기 위해서 종업일까지의 일정을 상수로 묶어두고 싶다면 다음의 과정이 추가된다. 여기서부터는 선택의 영역이다. 과목별 시수 계획과 실제 운영될 시수가 일치하는지 확인(마지막주 과목 아래 모두 0이 떠 있는지 확인) 후 시수표가 포함된 교무실 제출용 학기 전체 주간학습안내를 출력한다. 교육과정 프로그램에서 학기 전체 한글파일을 저장한 뒤, 그 이후에는 HwpPrnMng 프로그램에서 '일괄 PDF 전환' 또는 '일괄 출력'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이 추가적인 과정까지 미리 해 놓으면 매주 교무실을 가는 시간과 인쇄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들여다보고 인쇄해서 교무실 가서 매주 철을 하고 돌아오는 시간을 매주 5분씩이라고 해도 20주면 100분이다.
가장 가까운 교육과정 멘토는 바로 위층에 있다
1~2학년은 저학년군으로 묶여 같이 교육과정이 움직이기 때문에 교육과정 유사도가 높아 궁금증이 생기면 주저하지 말고 2학년 부장님에게 문의하자. 처음 교육과정을 작성하면 그동안 내가 받아 썼던 시간표가 동학년 선생님의 노고가 담긴 결과물인데, 참 쉽게 받아서 썼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 동학년이었떤 교육과정 담당자와 학년부장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만들어야 지치지 않고 첫 주차 주간학습안내를 완성할 수 있다. 첫 학년부장이라면 서두를 필요 없다. 처음 가는 길이라 목표 지점이 안 보일 뿐 천천히 조금씩 하면 총회 전에 교육과정을 완성할 수 있다. 학기말 나이스 시간표 입력까지 학년교육과정은 끝난 게 끝난 게 아니므로 3월 총회 전까지 버전 1.0까지만 만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