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때문에 나갈 때야 모자를 쓰진 않지만 일상에서는 자주 썼다. 가벼운 외출, 산책, 운동, 쇼핑에 나갈 때마다 모자를 집어 들었다. 모자는 단 10센티도 얼굴을 가려주지는 못하지만 모자를 썼을 때의 심리적 안정감은 꽤 크다. 편하게 나갈 때, 모자는 일정한 크기의 익명성이 보장되는 듯한 착각이 든다. 나는 주로 캡모자를 썼다.
그날, 그 식당에 내가 앉았던 자리와 메뉴까지 선명히 기억한다. 맞은편에서 밥을 먹고 있던 사람은 캡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는 밥을 먹으며 연신 모자를 들어 올렸다 다시 썼다. 모자가 시야를 가리거나 땀이 났거나 뭔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들어 올려졌다 다시 내려앉는 모자는 좌로 기울었다 우로 기울었다 나중에는 앞머리를 드러내고 뒤로 젖혀졌다.
모르겠다, 왜 그랬는지. 나는 슬그머니 모자를 벗어 가방에 넣었다. 보기 싫었다. 그 뒤부터는 모자 쓴 사람만 보였다. 캡모자를 쓴 중늙은이 중 그럴듯해 보이는 경우는 열에 하나가 될까 말까 했다. 나는 그때부터 더 이상은 캡모자를 쓰지 않는다.
'나이에 어울리는 옷이 있다'는 말 따위, 곧이듣지 않는다. 믿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옳지 않은 말이라 믿는다. 그럼에도 난 이제 캡 모자를 쓰지 않는다. 내가 더 이상은 입지 않는 옷의 종류도 하나둘씩 늘어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결코 입지 않았던 스타일의 옷을 하나둘씩 입기 시작했다.
나는 옷차림에 전혀 재능이 없다. 그런 쪽에 취미도 아예 없다. 겨우 단정하게 입는 것만을 지켜왔다. 평범하다는 얘기다. 문제는 그 평범한 사람들에게 몸의 변화가 왔을 때 그 몸을 숨길 수 있는 건, 불행하게도 '그들'이 흔하게 입는 '그 옷'의 부류였다.
'한국 중년의 교복이 아웃도어'라는 말이 조롱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 조롱을 알면서도 그런 종류의 옷을 입게 된다. 그쪽으로는 별 재주도 용기도 없으니 방법이 없다. 맘에 안 드는 걸 어쩔 수 없이 하게 될 때 짜증이 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 짜증을 견디는 일인지도 모른다.
캡모자를 쓰지 않게 된 뒤에 난 아직도 나에게 맞는 모자를 찾지 못했다. 지금도 뭐든 쓰고 나가긴 하지만 뭐를 써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런저런 모자를 사보지만 다 마뜩잖다. 아직도 나는 변한 내 몸에 익숙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