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는 꽤 일찍부터 써야 했다. 사십 대 초반부터 증세가 시작됐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면 반찬이 어른거렸다. 책상에서 자료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일어나 내려다보는 일들이 많아졌다. 그리하면서도 한동안 그 행동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다. 결국 돋보기를 썼다.
돋보기의 도수는 점점 강해졌다. 처음에는 책을 보거나 일을 할 때만 썼지만 이제 내 몸은 돋보기의 노예다. 돋보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상품의 성분이나 유통기한도 읽을 수 없고,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할 수도 없다. 밥을 먹을 때도 돋보기를 쓰지 않으면 식탁이 어른거린다. 돋보기가 없으면 단 하루도 일상을 유지할 수 없다. 그래도 사람은 또 살게 된다.
추락은 더 남아 있었다. 지난 건강검진에서 내 시력은 0.5와 0.6이 나왔다. 마침 운전면허 적성검사 통지가 왔다. 인터넷 처리를 접속했다. 그 순간 화면에 뜨는 알림 문구. '운전 부적합자', '인터넷 처리 불가.' 시력이 운전 부적합자로 나왔기 때문에 운전면허시험장을 직접 방문해야 한다는 안내였다.
운전 부적합자. 충격이 컸다. 공포가 왔다. 그래도 어떻든 일 처리는 순조로웠다. 돋보기가 아닌 시력 보정 안경을 맞췄고, 안경을 쓴 상태로 다시 시력검사를 했다. 나는 운전면허 갱신에 성공했다. 내 눈이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그제야 절감했다. 안과 의사는 '백내장은 좀 더 있어도 돼요'라고 했다. 백내장은 이미 예정된 순서인 모양이다. 내 몸은 이제 돋보기로만 해결될 몸이 아니었다.
그제야 많은 걸 알게 됐다. 텔레비전을 보면 눈이 시리고 어른거려 텔레비전을 아예 보지 않고 산 지도 꽤 되었다. 영화관도 앞자리가 없으면 예약을 포기했다. 운전할 때도 마찬가지로 눈이 시리고 뭔가가 불편했다. 눈에 뭐가 낀 것처럼 뿌옇기도 하고 눈물도 났다. 그런 증상을 두고 나는 '시리다'다거나 '어른 거른다'라고 표현했다. '안 보인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처음 느껴보는 어떤 증상을 나는 그저 '시리다' '어른 거른다'는 것으로 인지한 것이다. 미련하고 미련하도다. 몸은 저 멀리 달려가는데 나는 그 몸을 쫓아가기가 이렇게 힘이 든다.
비튜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라고 했지만 눈이 이 지경이 되고 보니 알겠다. 내 눈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다. 아, 눈의 미학에 관한 책이 한 권 있었지. 묵은 책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눈이 어두워지기 전에는 눈을 알지 못했다. 이제 눈이 어두워지고서야 눈을 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