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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P Jun 04. 2024

이야기까지 훔쳐야 재능이다

SBS ‘더 매직스타’를 보고 성찰한 나의 재능.

오늘 인스타에 적힌 글 하나를 봤어요.


[무언가를 볼 때, ’어라 나도 그 정도는 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면 그것이 재능이다.]

라는 글이었는데요. 예를 들어 누군가 기타를 치는 걸 보고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겠는데?’ 싶다면 내 재능은 기타를 치는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잠시 생각을 해봤어요.

저 정도는 할 수 있겠는데? 굉장히 발칙하고, 거만하면서 자신감 있는 표현인 것 같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노력과 재능을 낮잡아 보는 것 같아서 무례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하지만 동시에 어느 정도 공감했습니다.


다양한 관심사가 많지만 ‘저렇게 하고 싶다’는 있어도, ‘저 정도는 할 수 있겠는데?’는 별로 없었거든요.

기타를 치고, 피아노도 치고, 노래를 부르고, 축구, 농구, 헬스도 하고, 볼링도 치고, 공부를 하고, 추리 퀴즈를 풀고, 스도쿠를 하고. 여러 가지 흥미가 많지만 ‘하고 싶다’가 항상 먼저였습니다.

기타와 피아노를 쳤을 때 선생님들이 ‘손이 음악 하는 손이다.’ , ‘타건음이 남자답지 않게 섬세하고 예쁘다’라고 칭찬을 해주셨었지만, 제 생각만큼 노력에 비례해서 실력이 성장하지는 않았었거든요. 그래서 항상 성장이 더뎠습니다. 흥미가 떨어지더군요. 그럼 다른 관심사에 눈길이 가고. 항상 그런 식이었습니다.



한참 동안 해당 게시물을 손에 붙잡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저 정도는 할 수 있겠다’가 아예 없지는 않더라고요.



인스타를 끄고, 유튜브에 들어갔습니다. 메인 화면에 마술 영상이 여럿 올라와 있었어요. 마술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6/1일 SBS에서 시작한 ‘더 매직스타’를 시청했거든요.

‘더 매직스타’를 시청하기 전까지 전 마술에 제 재능인 줄 알았습니다.


9살, 10살?이었어요. 친구가 방과 후 활동으로 마술부에 들어서 마술 몇 가지를 저에게 보여줬습니다. 신세계였습니다. 재밌더라고요. 그리고 친구가 하는 마술을 보니 어떻게 하는지 바로 알 것 같았습니다. 친구의 ‘기술’이 보인달까.

그래, 이렇게 하는 건가? 해보니까 얼추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는데?’ 싶었습니다. 그게 처음이었어요. 그 뒤로 마술을 혼자 연습하고, 기술 찾아보기를 거진 15년. 항상 카드를 붙잡고 있진 않았지만, 그래도 친구 중에선 나름 이름 좀 날린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나 마술에 재능이 있을지도?’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더 매직스타’를 보았습니다. 정말 정말 대단한 마술사 분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이에요.

축구로 치자면 호날두, 메시, 네이마르, 음바페, 홀란드, 덕배 등등 전 세계 월드클래스 선수들 모아 놓고

‘자,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하는 거랑 다름없는 스케일이거든요.


이런 프로그램에서 마술사들이 1등을 위해 오디션을 펼친다? 엄청난 기술과 스케일이 나올 것임이 분명했어요.

실제로 ‘아, 대단한 기술이다. 미쳤다. 어떻게 하는 거지?’이런 기술도 있었고, ‘어랏, 이 정도는 나도 지금 하겠는데?’ 싶은 마술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프로그램이 뻔하게 흘러갈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 반전이 생겼습니다.


제 생각에는 무조건 A가 이긴다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분이 떨어졌더라고요. 왜지? B의 기술이 뻔한데?라는 생각이었기에, A의 압승을 생각했었거든요.

그래서 둘의 마술을 한 번 더 돌려봤습니다. 다시 봐도, 잘 모르겠어요. 영상을 좀 더 앞으로 돌려서, 마술사 소개하는 영상부터 다시 봤습니다. 두 마술사를 소개하는 영상에는 그들이 걸어온 마술의 ‘길’, 이야기가 담겨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차이가 보였어요. 이긴 쪽 마술사의 이야기가 더 재밌었습니다.


머리가 좀 띵 해졌습니다.


마술을 보여줄 때, 가장 제가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술을 보여줄 때나, 다 보고 나서 ‘아, 저거 지금 여기서 뭔가 해서 카드 빼돌린 거야~. 어차피 다 속임수야. 뭐 하러 속아주냐. 이거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식의 사람들이었어요.

제가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건

‘나 이렇게 기술 잘 써. 너네 그냥 감도 못 잡게 내가 속이는 중이야. 엄청나지?’가 아니라

‘내 마술을 통해서 놀람을 느끼고, 짜릿함을 느껴서 재미를 느끼면 좋겠다~’였거든요.


마술이 내 액트를 통해 재미를 주는 게 목적이지, 극한의 기술을 보여주는 게 목표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마술을 할 때도 ‘오오~ 야 멋져. 잘했다~~’라면서 트릭을 파헤치기보다는 퍼포먼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칭찬을 했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정작 마술사 분들의 퍼포먼스를 볼 때 제가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이 되어 있더라고요. 퍼포먼스에 이야기, 흐름을 보지 않고 기술만 파헤치려는 사람이 되어 있던 거죠.


꼴불견 그 자체.


분석을 통해 그들의 기술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망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마술사의 퍼포먼스 평가로 이어지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마술을 좋아하던 옛날에 저에게 부끄러웠고, 미안했습니다.


1화를 다시 봤습니다. 절대적인 기량 차이가 나는 대결도 물론 있었죠.

하지만 기량이 비슷할 때는 그 마술사가 보여줘 온 이야기의 맛이 승자를 가렸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따라 할 수 없겠더라고요.

아마도 저는 마술의 ‘기술’에만 재능이 있었나 봅니다.


매직 스타를 다시 보며 3년 차 마술사 11살 ‘이주열’ 마술사의 무대가 인상이 깊어졌습니다.

첫 번째 볼 때는 ‘아, 내가 다 아는 거네, 올라가기엔 아직 어리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볼 때는 기술의 난도, 완성도를 떠나서 그 무대를 즐기고, 앞으로의 비전이 보이는 그의 이야기가 멋있었어요.


특히 전설적인 마술사 루이스 데 마토스가 이주열 마술사에게 건넨 말이 그의 서사를 더 멋지게 만들어줬습니다. 승리자의 이름이 적힌 카드 위에 마토스는 접힌 주열의 카드를 같이 올려둡니다.

 그는 대결 이주열 마술사의 이름이 접힌 카드를 보여줍니다. 그리곤 ”이주열 마술사의 이름을 접어둔 이유는 그는 아직 펼쳐지지 않은 스타이기 때문입니다. 주열 군은 꿈을 펼치는 스타가 될 거예요 “라고 그를 평가합니다.

벌써부터 제가 따라 할 수 없는 그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이주열 마술사가 굉장히 멋있었습니다. 11살의 나이에 시작된 그의 마술사로서의 그의 이야기를 앞으로 지켜볼 생각입니다.



매직 스타를 보면서 ‘그 정도는 할 수 있는데’라는 말을 다시 생각해 봤어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볼 때 ‘그 정도는 할 수 있는데’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그 이후에 어떤 노력으로 그들이 만들어 온 이야기를 따라잡는가는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만들어 온 ‘이야기’까지 따라 할 수 있다면, 그게 재능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장금이 임금님께 올렸던 ‘어머니가 마지막에 드신 산딸기’를 ‘알프스 산맥에서 만든 초고당 산딸기’가 이길 수 없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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