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미학

『고도를 기다리며』 를 읽다가 든 생각

by 영원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연극이다. 이름 없는 두 인물,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 ‘고도’를 기다리며 무대 위를 배회한다. 그러나 고도는 끝내 등장하지 않고, 인물들은 의미 없는 대화를 반복하며 또 다른 ‘내일’을 기다린다. 작품은 극적인 사건 없이 반복, 침묵, 무의미한 언어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간 존재의 허무함과 삶의 부조리를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이 부조리한 기다림은 곧 확신 없는 미래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상징한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가자”라고 말하면서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은 기다림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림 속에서 살아가고자 한다. 이 역설적인 모습은 때로 우리 자신의 모습과 닮아 있다. 나 역시 대학생이 된 이후, 정해진 진로와 루트가 있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모든 선택이 나의 몫이라는 사실 앞에서 막막함을 느끼곤 한다. 불확실한 미래를 마주하며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고민하는 순간들, 그 시간들이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기다림처럼 느껴진다. 이 글에서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상징적 기다림을 통해, 나의 경험과 함께 ‘불확실한 미래와 살아가는 법’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한다.


『고도를 기다리며』 속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가자”라고 말하면서도 끝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들은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명확히 알지 못한 채, 누군가 등장해 삶의 의미를 가져다주기를 막연히 기대한다. 대화는 반복되고, 시간은 흘러가지만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는다. 이처럼 작품은 인간 존재가 처한 부조리한 상황, 즉 명확한 이유 없이 어떤 것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으로 현대인의 불안을 드러낸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는 다르게, 불확실한 미래를 마냥 기다리지만은 않았다. 대학생이 된 이후, 정해진 경로 없이 내가 스스로 방향을 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처음엔 막막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이내 나는 가만히 기다리는 대신, 미래를 향해 다가가려는 시도를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 일을 하기 위해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적어보기도 했다. 때로는 관련 분야에 대해 조사하며 경험을 쌓을 수 있는 활동을 찾아보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관심 분야를 발견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를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물론 그 과정이 항상 명확하거나 확신에 차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고도’처럼 실체 없는 대상을 기다리는 대신, 나름의 기준과 목표를 세우고 나아갔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정체 모를 고도를 기다리며 무기력에 빠져 있었다면, 나는 불확실함 속에서도 방향을 만들어가려 애썼다. 이처럼 ‘기다림’이라는 상황 속에서도, 그것을 대하는 태도는 전혀 다를 수 있다. 『고도를 기다리며』가 보여주는 막연한 정체의 시간은 나에게 ‘그렇게만 살아선 안 된다’는 반면교사의 메시지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 시간을 능동적으로 채우기 위해 노력했다. 불확실한 미래는 두렵지만, 그 미래를 마주하고 준비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다는 것을, 나는 그 시간을 통해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다.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나름의 방향을 정하고 움직여보려 노력해 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막연한 미래가 한층 더 또렷하게 다가올수록,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정말 ‘맞는 길’인지 확신이 들지 않아 흔들릴 때가 많다.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음에도 결과가 보이지 않을 때면, “나는 과연 잘 가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마음 한구석을 파고든다. 이런 불안은 『고도를 기다리며』 속 인물들이 반복적으로 겪는 감정과 닮아 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계속해서 고도가 올 것이라 믿으며 기다리지만, 시간이 흘러도 고도는 오지 않고, 그들은 점점 더 혼란스럽고 지쳐간다. 그들은 고도에 대해 “그가 오기는 오는 걸까?”라고 질문하면서도 떠날 용기를 내지 못한다. 마치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 불확실성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머뭇거리는 우리의 모습처럼 보인다.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자리에서 뱅뱅 도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선택을 해야 하고, 방향을 정해야 하며, 어떤 식으로든 '성장'을 보여줘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 속에서, 멈춰 있거나 잠시 쉬고 싶을 때조차 마음 편히 그러지 못한다. 이럴 때면 내가 겪는 불안이 단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감정이라는 사실이 떠오른다. 선택을 해야 하고, 방향을 정해야 하며, 어떤 식으로든 '성장'을 보여줘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 속에서, 멈춰 있거나 잠시 쉬고 싶을 때조차 마음 편히 그러지 못한다. 그런 순간마다 문득 “시간이 멈춘 것 같아”라는 블라디미르의 말이 떠오른다. 변화하지 않는 현재 속에서 허둥대는 내 모습이, 막연한 기다림 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그들의 모습과 겹쳐 보이곤 한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시간을 견디며 매일같이 고도를 기다린다. 무대 위 그들의 삶은 반복의 연속이고, 그 반복은 지루함을 넘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들은 떠나지 않는다. “가자.” “그래, 가자.”라고 말하면서도 결국은 무대에 머무는 그들의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삶을 버텨내는 인간의 끈질김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들은 변화 없는 날들을 맞이하면서도, 어쩌면 언젠가 올지도 모를 무언가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이런 그들의 모습은, 지금의 내 삶과도 닮아 있다. 뚜렷한 정답 없이 방향을 스스로 정해야 하는 시기를 살면서, 나 역시 매 순간이 기다림의 연속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 속에 주저앉기보다는,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계속 나아가고자 노력해 왔다. 무언가 거창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순간들에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좋아하는 공연을 찾아보는 등 나를 더 이해하기 위한 작은 실천들을 이어왔다. 그러는 사이, 나는 지금의 나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고, 나를 재촉하기보다 기다릴 줄 아는 법도 배워가고 있다. 블라디미르가 말한다.

“우리가 어제 여기 있었던 게 맞을까?”

무대 위에서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도는 듯 보이지만, 그 질문 속에는 변화에 대한 감각, 어제와 오늘을 구분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담겨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비록 큰 변화는 없을지라도, 나를 조금씩 알아가며 겪는 내면의 움직임은 분명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만들어 간다. 그렇게 나는 여전히 ‘고도’를 기다리면서도, 동시에 ‘나’라는 가능성을 기다리는 중이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뚜렷한 갈등도, 명확한 결말도 없이 ‘기다림’이라는 시간만을 끈질기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 무의미해 보이는 반복 속에서, 우리는 인간이 가진 가장 원초적인 힘을 본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도 끝내 자리를 지키고, 매일을 견디는 존재로서의 인간. 그들은 답 없는 삶 앞에서 무력하게 보이지만, 동시에 가장 치열하게 살아내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읽으며 나는 깨달았다. 미래가 분명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때로는 확신 없는 기다림 속에서도 우리는 성장할 수 있고, 그 시간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과거에는 그런 시간을 허비처럼 느꼈지만, 지금은 안다. 그 시간이야말로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며, 나를 버티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을. 나는 여전히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기다림이 두렵지 않다. 무작정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나를 위한 시간임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걸어가는 이 불확실한 길 위에서, 확신이 없더라도 자신의 속도로, 자신의 방향을 따라 나아가길 바란다.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기에


25년 초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