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동으로 태어났다. 그래서인지 어렸을 적 형제자매와 노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운 감정이 들곤 했다. 하지만 당시 내가 진짜 부러워했던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바로 강아지를 키우는 친구들이었다. 어렸을 적에는 단순히 귀엽다는 이유로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몇 년간 부모님을 설득했다. 용돈의 2/3 가량을 모아 강아지 집을 사는데 보태겠다고 내밀어 보기도 하고, 강아지를 키우게 되면 내가 지킬 규칙들을 써 내려간 적도 있다.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부모님이 강아지를 입양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내가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었고 천식 수치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님 입장에서는 털이 많이 날리는 강아지를 키울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랜 기간 설득 끝에 11살이 되었을 무렵, 여느 때와 같이 놀이터로 놀러 나가던 나에게 엄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 이번 주는 정말 다치면 안 돼! 조심히 놀아!”
평소와 다르게 강조해서 말하는 엄마의 말에 나는 왜냐고 물었다. 엄마는 이번 주를 건강하게 보내야 할 이유가 있다며 주말을 기다리라고 하셨다. 나는 이 의미심장한 말을 듣고 그 주 내내 놀이터에 나가지 않았다. 내심 강아지를 데리러 가는 길이라고 기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주말이 되었고, 엄마는 논산이라는 곳에 갈 거라고 하셨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지역이었는데 내가 있던 곳에서 2시간이나 걸린다고 했다. 그렇게 논산에 다 와갈 즈음 엄마가 까만 강아지 사진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함께 살 가족이라고 말하시면서..!! 사진 속 강아지는 작고 새까만 색을 하고 있었다. 화면 아래에는 ‘탄이’라고 쓰여있는 이름도 보였다. 새까만 외형 탓에 연탄에서 따와 탄이가 된 것 아닐까 싶다. 나는 당시 강아지 사진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었다. 강아지를 키우게 된 다는 사실에 기뻤던 것도 있지만, 웃기게도 나는 까만 강아지가 있는 줄 몰랐다. 동네에서 산책하는 강아지들은 신기하게도 온통 하얀색이나 갈색빛을 띠는 털을 가지고 있었고, 그 강아지들에게 익숙해진 탓에 이렇게 새까만 강아지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렇게 논산에 도착해 까맣고 손바닥만 한 강아지를 마주했다.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더 까맣고 작았다. 강아지를 보고 예쁘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너는 정말 예쁘구나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예쁘다 함께 웃는 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어린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양손을 가득 오므리고 쩔쩔매었다. 하지만 어딘가 기분 좋은 당황스러움이었다. 작은 몸에서 나오는 온기는 너무나 따뜻했고, 유난히 크고 까만 눈은 너무나도 예쁘게 반짝였다. 새까만 그 아이의 모습이 너무 인상 깊어 이름은 까미라고 지어줬다. 까미는 우리 집에 온 첫날부터 나에게 미소를 가득 안겨주었다. 당시 나에게 호흡기 질환이 남아있을 적이라, 강아지를 한번 만지고 손을 씻어야 했고, 눈물도 찔끔찔끔 났지만 그런 아픔 정도는 견딜 수 있었다.
어느덧 까미와 함께한 지 10년이 넘어가고 있다. 평범했던 우리 가족의 일상에 등장한 까미는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 가족을 웃게 해 주고 있다. 까미가 아니었으면 오늘 웃었을까? 싶은 날들이 정말 많다. 아직까지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까미의 순간은, 나와 함께 잠자리에 들 때 이다. 씻고 돌아온 방에 누웠을 때, 잠든 까미의 숨소리가 조용한 실내에 울려 퍼졌는데 그것이 고맙고 징그러웠다. 신기하게도 새까맣던 까미는 크면서 금색 털과 하얀 털이 조화롭게 생겨 마냥 까맣지만은 않은 강아지가 되었다. 매일매일 새로운 행복을 주는 까미에게, 놀라울 일이 없는데도 나는 놀란다. 너무 크고 과분한 행복을 주어서. 까맣던, 하얗던 우리에게 가장 진한 색의 행복을 가져다준 소중한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