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용은 보험회사의 손해사정사로 오랜 경력을 쌓아온 베테랑 직원이다. 매일 같은 사무실, 반복되는 업무, 그리고 성과를 위한 치열한 경쟁 속에서 그는 자신이 속한 이 세계에 안주해 있었다. 일과 친구들과의 시간만이 그의 시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의 세상에서는 사랑 따윈 잊힌 채로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 계발 도서 읽기를 즐기는 기용은 퇴근 후, 평소와 다름없이 서점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책을 가까이하며 잠시 여유를 찾는 시간이 기용에게는 선물과 같았다.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한 후 책을 집어 들고 코너를 돌아서자, 따뜻한 조명 아래, 책을 고르고 있던 한 여성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화려한 꾸밈없이 단정한 차림새와 자연스러운 매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책에 집중한 모습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분함에 기용의 시선이 멈춰버렸다. 순간 그녀가 고개를 들더니 기용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은 그녀는, 이내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이내 다시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기용은 심장이 새처럼 날아오를 듯이 두근거렸다.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곳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기용은 순간적으로 그녀에게 끌리게 되었고, 긴장한 마음으로 다가가 대화를 시작했다.
그녀의 이름은 민아,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고르고 있는 모습에서 지적인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민아는 웃으면서 그에게 책을 추천해주었고, 둘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취향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게 두 사람은 서로의 관심사와 책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고, 그녀를 만난 것은 기용의 인생퍼즐에 마지막 조각이 맞춰진 것과 같았다.
기용에게도 사랑이 찾아온 걸까. 그녀와의 대화는 마치 오랜 세월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찾는 듯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