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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래 Mar 08. 2024

함께 걸어 좋은 길

느려도 괜찮아

유치원에서는 특색교육, 중점교육 등 특별히 애정을 쏟는 교육 분야가 있다.

그 당시 내가 근무하던 유치원은 숲 놀이, 밧줄 놀이 등 바깥 놀이를 중점적으로 진행했다.

유치원 주변에 산과 하천이 있어 아이들이 몸으로 경험하며 배우기에 너무 적합한 환경이었다.

숲 놀이, 밧줄 놀이가 없는 날에도 대부분의 학급이 밖에서 뛰어놀며 환경적 자원을 적극 활용했다.


하지만 이러한 유치원의 방향이 모든 유아들에게 항상 적합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벼래반 윤석(가명)이 같은 경우가 그랬다.

윤석이는 정말 많은 특징과 모습을 가진 사랑스러운 아이였는데 그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윤석이가 지체장애라는 것이었다.

윤석이는 근이영양증이라는, 쉽게 말해 근위축증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친구였다.

걷거나 움직이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장시간 바깥놀이는 조금 힘들었다.

윤석이는 탐구심과 참여하고자 하는 의욕이 많은 어린이여서 학기 초 바깥놀이를 분배하여 나가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했다.

그런 날 근육으로 가득 찬 윤석이의 다리를 주물러주면 윤석이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선생님 우리 엄마랑 똑같아요. 우리 엄마도 내가 밖에 못 나간다고 울면 이렇게 마사지해주는데”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윤석이 얼굴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교무실에 가서 혼자 많이 울었던 적이 있었다.


하루는 오후에 밧줄놀이를 나가는 날이었다.

그날따라 윤석이는 올라가는 길에 짜증을 많이 냈다.

윤석이의 하루 활동량과 컨디션을 보았을 때 아예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윤석이에게 조금은 단호하게 굴었다.

“못하는 것도, 하기 싫은 것도 한 번은 도전해 보는 거야. 선생님이 언제든 도와줄 건데 왜 이렇게 약한 소리를 해 윤석아.”

윤석이는 결국 밧줄놀이를 안 하고 싶다며, 교실에 돌아가겠다며 눈물을 뚝뚝 쏟아냈다.


다른 벼래반 친구들도 있었던 터라 자리를 바로 비울 수 없었다.

선생님들께 양해를 구한 후 윤석이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윤석이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우리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 밧줄놀이를 하는 대신 우리 반에 필요한 나뭇잎을 주워오는 거야. 근데 산을 돌아서 가야 큰 나뭇잎을 주울 수 있어서 친구들보다 교실에 조금 늦게 도착할 수 있어”


내 타협점이 마음에 들었는지 윤석이는 생각보다 쉽게 “좋아요”하고 대답을 했다.


산을 돌아 내려가는데 뾰로통해있을 줄 알았던 윤석이가 재잘재잘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근데 저 사실 밧줄놀이 하기 싫었던 거 아닌데요.”

“뭐야~ 그럼 왜 그랬어? 선생님은 윤석이가 밧줄 하기 싫어하는 줄 알았어.”

“친구들은 다 잘하는 것 같은데 나는 좀 못하니까.. 짜증내서 미안해요 선생님.”


윤석이는 사실 밧줄놀이를 누구보다 잘하고 싶었단다.

잘하고 싶은데 내 마음대로 안되니까 나한테 괜히 짜증을 냈다며 말하는 아이를 보는데 마음이 일렁거렸다.


나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은 어른들에게도 어려운 일인데 아이가 느끼기에는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윤석아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선생님도 가끔 그런 날이 있어. 밧줄놀이 안 해도, 못해도 괜찮아~ 우리가 조금 늦게 도착해도 우리는 멋진 자연을 더 많이 볼 수 있잖아”

“맞아요 선생님 이 큰 나뭇잎 우리만 볼 수 있어요 우주(가명)것도 챙겨갈까?”


윤석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눈물이 핑 돌았다. 마음이 일렁거리는 이유는 눈물 때문이었다.

밧줄놀이가 뭐라고 아이에게 단호히 했을까.

미안한 마음에 윤석이를 바라봤는데 윤석이의 큰 눈에서도 눈물이 맺혀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산 중턱에서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우리는 오늘 밧줄 대신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고 바람을 느꼈다.

함께 나눈 풍경과 이야기들이 기억되기를, 또 우리의 걸음이 비록 느릴지라도 꾸준하길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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