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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chola Mar 19. 2024

지영이 짝지

지영이 짝지

                                                                                                                                  김미혜     

중학생으로 첫 등교 날 이후로 아직 교실에는 낯설음 투성이지만 함께 친해지고 싶은 친구들이 몇몇 생겼다. 도시락도 함께 먹고 교실을 이동해야 하는 수업에 팔짱을 끼고 가는 친구, 쉬는 시간에 화장실이나 매점을 함께 이용하는 친구도 생겼다. 오늘 아침에도 친구랑 나눠 먹기 위해 사탕과 초콜릿도 챙겼다. 엄마에게는 도시락 반찬을 신경 써 달라고 부탁도 했다. 새로운 중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기 위한 부모님께서 조언하셨다. 당부의 말씀을 체크해 보며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등교 준비를 했다. 학교까지는 버스로 50분정도가 걸린다. 학교 배정에 운이 없어 친구를 사귀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릴듯 하다. 친구들과 가까이 살면 좋으련만. 이렇게 먼 거리를 혼자서 다녀본 적이 없다. 그래서 딸의 등하굣 길에 늘 걱정이 많으신 부모님이다.     

영어 시간이다. 중학생이 되어 처음 접하는 새로운 언어에 늘 그렇듯 아는 듯 모르는 듯 조용하게 수업을 듣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뒷자리 책상이 밀려와 내 몸을 친다. 내 자리 바로 뒤에 있는 친구가 쓰러졌다. 쓰러진 친구는 입에 거품이 나와 있고 흰동자가 보인다. 그리고 몸을 심하게 떨고 있다. 근처에 있던 친구들은 “꺅” 놀라움의 소리를 지른다. 나 역시 처음 보는 광경에 매우 놀란다. 이러다 저 애가 잘못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과 함께 당황스럽고 무서운 생각까지 든다. 그때 선생님이 오시더니 지영의 주위의 책상과 의자를 치우신다. 그리고는 우리들에게 모두 제 자리에 앉으라고 소리 치신다. 선생님도 적잖이 놀라신 것 같다. 우리는 제자리에 앉아서 친구의 떨림을 쳐다만 보고 있다. 교실안은  정적만이 에워싸고 있다. 5분쯤 지났을까? 지영이의 떨림은 사라지고 호흡이 안정되어 길어진다. 눈을 뜬 지영이는 전혀 기억이 안 난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리고 선생님의 양호실로 가라는 말씀에 짝궁과 함께 교실 문을 나선다. 한참 동안이나 놀란 가슴을 안고 수업은 어찌 지나갔는지 모른다. 종례시간이 되어 이미 조퇴하고 없는 지영이에 대해 짧게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지영이는 간질병을 가지고 있다. 간질병은 발작을 할 수 있어. 이럴 때는 아무 소리 하지 말고 주변의 책걸상을 치워주면 되.” 하셨다. 그리고 나를 포함하여 주위 친구들에게 역할을 정해 주신다. 나의 임무는 책상2개를 옆으로 옮기기 이다. 어린 나이이지만 친구들 모두 지영이의 오늘 일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쉽사리 말을 꺼내지 않는다. 방과 후 하굣길에 친구가 말을 먼저 꺼냈다. 

“아까 영어시간에 너무 놀랐어. 그런 것 처음 봤어. 넌 바로 앞인데. 어때?” 

“나도 많이 놀랐어.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쿵쾅거려. 그런데 지영이는 괜찮을까?” 


지영이는 늘 깨끗한 옷을 입고 다니고 조용하며 친구들과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 친구였다.

지영이는 그날도 선생님들께 꾸중을 들었다. 병을 앓아서인지 숙제를 잘 해오지 않았고 수업시간 질문에 대답을 못했으며 나와서 풀라고 하면 전혀 손도 대지 못하였기 때문에 담임선생님을 포함하여 여러 선생님들께 많이 혼났다. 그렇지만 지영이가 아픈 아이여서 일까.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때리거나 벌을 주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수업 내용을 따라가기 역부족으로 보였다. 그 일이 있은 후에도 일주일에 두세 번 또는 한 달에 한 두 번씩 지영이는 경련을 일으켰다. 그래서인지 늘 친구가 없었다. 걱정이 된 지영이 어머니는 친구들과 친해지게 하기 위해 가끔 학교에 오셔서 반 전체에 아이스크림도 사서 나눠주셨고 지영이 도시락 반찬도 친구들과 나눠먹으라며 정성껏 2인분 이상을 보내주시기도 했다. 소풍날은 반 전체에 과자와 음료수도 보내주셨다. 그래도 아무도 그 애와 가까워지려는 친구는 없었다. 오히려 몇몇 아이들은 그 애를 놀리기 까지 하였다. 못된 장난을 치기도 하였고 도가 넘는 행동도 보이기 시작했다. 화장실에 가서 못 나오게 하기도 하고 지영이가 들어가 있는 화장실 문을 일부러 두드렸다. 매점 가서는 지영이 보고 돈을 내라고 하고 도시락 먹을 때 반찬만 빼앗아 먹는 등의 그것이다.

이런 행동들도 몇 개월 후부터는 잠잠해 졌다. 그리고는 모두가 지영이에게 무관심한 행동으로 이어졌다. 지영이는 도시락도 혼자 먹었고 교실을 이동해야 하는 수업때도 화장실이나 매점을 가야 할 때도 그리고 하교 시에도 늘 혼자였다. 

지영이는 결코 우리에게 먼저 말을 걸어오지는 않았다. 우리와 친해지고 싶은 욕구가 없는 것은 아닐텐데. 어머니가 반에 오셔서 우리 지영이와 놀아 달라던 간곡한 부탁의 말도 떠올랐고 특별히 나쁘게 행동하는 일 없이 내성적인 지영이에게 늘 마음이 쓰였다. 가끔 말을 걸어주면 대답 대신 경직된 미소로 답을 했다. 지영이의 짝과 앞뒤로 앉은 우리는 가끔씩 쉬는 시간에 말을 걸어주기는 했으나 그게 친해지려는 노력의 전부였다. 지영이는 내가 말을 걸어도 고개만 끄덕일뿐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2학기에 들어섰다. 따사로운 가을 문턱에 한 아이가 전학을 왔다. 전학 온 친구도 공부와 친구 사귀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먼저 말을 하지도 묻는 말에 대답도 하지 않았다. 숙제를 해오는 날도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나쁜 행동을 하는 일도 없었다. 작고 왜소한 모습만큼이나 눈에 띄는 일 없이 조용했다. 지각이나 조퇴도 없었으며 빠짐없이 학교에 출석을 하였다. 전학 온 친구도 늘 혼자였다.      

반 친구들의 무관심 속에 두 친구들은 잊혀져 가던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 무렵의 어느 날. 

시끌벅적한 쉬는 시간의(쉬는 시간이 되어 시끌벅적한) 교실 앞문에 두 아이가 활짝 웃으며 함께 과자봉지를 들고 들어왔다. 매점을 다녀왔나 보다. 반 친구들은 놀라서 쳐다만 보았다. 이젠 그 친구들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닌 함께였다. 

그토록 기다려 왔을 짝지가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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