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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윔지테일 Sep 08. 2024

오리온자리

<가까운 듯 먼 그대여> 카더가든

 사거리 신호등에서 보라는 교통 신호등은 안 보고 건너편 횡단보도용 신호등에서 눈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깜박이는 초록색 인간이 빨간 칸으로 자리를 옮기자마자 망설임 없이 오토바이를 몰고 좌회전을 한다. 벌써 배달 오토바이 1년 차. 이 지역 신호등 패턴은 이미 다 외운 지 오래다. 예전 뚜벅이 시절에는 이런 오토바이 기사들을 욕하기 바빴는데 이제는 그 사람들의 1분 1초가 돈이었다는 사실을 안다. 사실 그들이 그렇게 거슬렸던 건 아니다. 단지 지희가 그런 오토바이를 잘 피하지 못해서 눈살을 찌푸렸을 뿐. 지희가 지금 내 운전을 본다면 뭐라고 할까. 분명 나한테 욕을 하면서도 이유를 꼬치꼬치 캐물으며 내 상태를 확인하려고 했을 거다. 

 

 10분쯤 달렸을까. 카페 <고양이 식빵>에 오토바이를 세운다. 새하얀 간판에 주백색 조명이 눈에 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카페지만 이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모르긴 몰라도 음식 픽업하러 왔었겠지. 익숙한 듯 낯선 이 카페를 기억하는 건 사치다. 요새 카페들은 다 시커멓거나 새하얗거나 핑크빛이니까.

 "픽업 4826번이요."

 "네, 저 봉투 가져가세요."

 카페 사장은 유리문 옆에 있는 테이블 위 갈색 봉투를 가리키며 대답한다. 익숙하게 확인하는 영수증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4826. 파니니 샌드위치 하나. 로열 밀크티 하나. 신촌로 45길 68 308호. 현관 앞에 두고 가세요.' 

 생각났다. 분명 파니니가 맛있는 카페라고 지희가 몇 번 데려왔었다. 병원에서 커피를 끊으라고 했다며 한참을 우울해하던 지희는 커피 대신이라며 밀크티를 미친 듯이 마셔댔다. 밀크티도 홍차니까 카페인이 있다던 내 말은 가볍게 무시하면서. 종이봉투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수고하세요."

 애써 물건을 들고 나오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새하얀 입김이 끊임없이 하늘로 길을 만들어 저 위에 있는 오리온자리의 허리에 닿는다. 겨울이다.


 별자리는 잘 몰랐지만 겨울에 오리온자리가 가장 잘 보인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지희 덕분이었다. 사실 오리온자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조차 몰랐다. 오리온은 초코파이라고 얘기하는 나에게 지희는 별자리 어플까지 보여주며 오리온자리를 설명해 줬다. 도시에서도 보일 정도로 밝은 별자리라서 해가 빨리 지는 겨울날, 외롭고 어두운 퇴근길에 위로가 되었다고 얘기하곤 했다. 


 지희는 중학생 영어학원 강사였다. 항상 남들이 출근할 때 일어나서 수업 준비하고 남들이 퇴근 준비할 때쯤엔 학원에서 목이 터져라 아이들에게 영어로 얘기했다. 남들과 다른 출퇴근 시간에 말 안 통하는 아이들과 일하는 것도 견딜만했지만, 제일 힘든 건 엄마들의 등살이라고 했다. 아무리 봐도 영어보단 춤에 관심 있는 아이의 성적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는 엄마에게 할 말이 없어 말을 못 했다가 컴플레인을 받았다는 류의 얘기는 정말 지겹도록 들었다. 나도 처음에는 그런 푸념들을 다 들어주고 고개 끄덕여 주며 공감해 주기 바빴다. 그때의 나는 생산이라고는 배설물 밖에 없는 취준생이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런 하소연은 핀잔이고 배부른 소리처럼 들렸다. 조금 더 뒤에는 취직을 하지 못하는 나를 향한 채찍질이 되었다. 사실 지희의 하소연은 애절하고 처절한 몸부림이었을 거다. 누군가에게 얘기하지 않으면 버틸 없었을 테니까. 나는 그런 것도 생각하지 않고 힘들다고 얘기하는 지희에게 소리 내뱉고 거다. 


 "그만 좀 해. 네가 잘 가르친 건 맞아?" 


 나의 질문을 마지막으로 지희는 더 이상 나에게 그 어떤 푸념도 늘어놓지 않았다. 드디어 지희가 좋은 교수법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퇴근길 지희와의 통화는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내가 면접에서 떨어져 의기소침할 때도 지희는 그저 웃으며 잘 될 거라고 얘기해 줬다. 

 겨울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 중간고사가 시작될 무렵, 길을 걷던 지희가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그랬다. 

 "이젠 오리온자리도 잘 안 보이네."

 "그러게."

 ".... 우리 헤어지자."

 오리온자리가 사라진 봄날처럼, 지희가 그렇게 사라졌다. 


 이별은 취직보다 아프지 않았다. 요즘 같은 N포 세대 취준생에게 연애는 사치였다. 궁핍한 삶에 연애를 빼고 취직만 바라보니 조급하던 마음이 무색하게 금방 취직이 됐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간사한 게 사람 마음이라고 했던가. 감사의 마음은 순식간에 원망을 삼킨 덩어리가 되었다. 취직한 뒤부터 태양보다 밤하늘을 올려다볼 일이 더 많아졌다. 야근, 야근, 야근. 왜 상사는 꼭 마감 전에 일을 시키고 미팅을 잡을까. 본인이 한 결정을 파전 뒤집듯 바꾸고, 좋다던 프로젝트는 갑자기 쓰레기가 되고, 아침엔 웃더니 점심 전엔 울상이 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줄 그제야 알았다. 입술 끝에 불만을 달고서 집에 가는 길에는 왜 그리 배가 고픈지. 마감 직전 빵집에 들어가 마감세일 하는 빵 몇 개를 사 집에 걸어가는 길. 간판과 광고를 이해하는 것조차 피곤해 대신 하늘을 올려다봤다. 지희도 그랬을까. 할 수 없는 일을 하라는, 강요 같은 원망을 쏟아내는 사람들을 견디느라 그렇게 하늘을 봤던 걸까. 어느새 나도 모르게 별자리 공부를 시작했다. 별자리 공부가 어려워 달이나 볼까 했지만, 달은 생각보다 변덕스러워 매번 내 퇴근길에서 벗어나기 일쑤였다. 나는 북극성이 제일 좋았다. 항상 변하지 않고 같은 자리에 그대로 있으니 어디에 떠 있나 찾을 필요도 없었다. 그러다 겨울이 되어 오리온자리가 떴고, 오리온자리가 사라지던 봄. 어렵사리 내 자리라고 앉았던 직장을 떠나 배달을 시작했다. 


  샌드위치와 밀크티가 식지는 않았을까 노심초사하며 현관 앞에 섰다. 이걸 지희가 먹을 리가 없는데 괜히 차가운 걸 전달하기 싫었다. 벨을 누르고 현관 앞에 두고 가면 그만이지만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어쩌지. 고민하다가 벌써 몇 초를 썼다. 일단은 벨을 눌렀다.  

 "배달 왔습니다."

 "네, 두고 가세요. 돈은 냈어요."

 목소리가 익숙한가? 혹시 지희인가? 이젠 그 목소리조차 흐릿하다. 

 "아, 바닥이 차가워서 식을까 봐요."

 "괜찮아요. 그냥 두고 가세요." 

 더 이상 망설이다간 변태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일단은 현관 옆에 두고 엘리베이터를 다시 잡아 탔다. 

 '3층.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 집 대문도 열렸다. 문득 비춘 얼굴이 네가 아니다. 아쉽지만 다행이다. 눈이 마주친 우리는 짧게 목례를 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오리온자리가 커다랗게 떠 있다. 오늘 할 얘기는 오리온자리에게 대신해야 할 듯싶다. 


<가까운 듯 먼 그대여> 카더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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