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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윔지테일 Sep 29. 2024

'신'이라는 이름으로

<샤이닝> 자우림

 인도 여행을 온 한국인들은 대학교 개강과 설날 때문에 이미 2월 중순부터 썰물 빠지듯 없어진 지 오래였다. 3월이 될 무렵부터는 더운 날씨에 밀려 다른 나라 관광객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전기가 잘 끊기는 인도에서 24시간 에어컨이 잘 도는 게스트하우스라는 걸 찾기 어려우니 현명한 선택이다. 그런데 나는, 나도 잘 몰랐는데, 아무도 없는 이 시간을 아주 오래도록 기다려 온 것 같았다. 매일 아침 들리던 한국말을 비롯한 온갖 나라의 언어가 없어진 고요한 아침이 맘에 들었다. 말 그대로 온 세상이 찜통 같은 더위를 견디며 그렇게 홀로 게스트하우스를 지키던 내 앞에 민재 씨가 타일 깔린 바닥에 앉아 있다. 낡은 실링팬이 돌아가는 게스트하우스 1층 로비에서 민재 씨가 나의 요구에 완벽한 듯 어눌한 한국어로 볼멘소리를 터트렸다.


 "이거 걸리면 진짜 큰일 나요."


무리는 아니지. 나도 안다. 내가 어려운 부탁 하는 거.


"이번만요. 민재 씨도 지금 비수기니까"

"이번만이에요. 대신 오래 못 있고 내 조카 한 명 같이 가요. 여자. 한국말 몰라요."

"땡큐, 땡큐. 단야밧."


 인도 바라나시, 그것도 가장 신성하다는 갠지스강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배에 태우는 인도인 민재 씨를 본 것도 거의 반년이 다 된다. 진짜 이름은 뭐였는지 들었는데 이미 까먹었고, 그냥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민재 씨다. 민재 씨는 아침저녁으로 사람들을 배에 태우며 갠지스강의 가트 - 우리로 치면 한강공원의 각 지구 - 를 설명해 주는 투어를 진행했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해 알아듣기 어려운 인도식 영어에 지쳐 있던 한국인들의 욕구를 톡톡히 채워 돈을 좀 만진 모양이다. 덕분에 배 몇 척을 더 만들어 이 근방에서는 꽤 알아주는 유명 인도인이다. 그런 민재 씨를 곤란하게 한 부탁이라는 게 심플하다. 그냥 밤에 나 혼자 배에 태워달라는 것. 밤에 *푸자가 끝나고 사람들이 잘 시간이 되면 강에 배를 띄우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안전 문제 때문에 있는 조치 같은데, 노를 저어야 하는 민재 씨가 외국인 여자 하나만 배에 태운다? 그것도 밤에?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나 꽤 곤란한 건 알고 있지만 나는 절실했다.




 엄마는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뇌신경이 긴밀하게 잘 연결되어 있어 예민한 거라며 과학적인 추론이라도 가능하지만 그때 관념으로 엄마는 그냥 집 밖을 나가기 어려워하는 특이한 사람일 뿐이었다. 그런 엄마에게 딸자식 교육 시키는 데 필요한 돈을 모을 방법이라곤 부업밖에 없었다. 할만한 부업은 다 한 듯했다. 마늘 까기, 인형 눈알 붙이기, 스타킹 포장하기, 종이봉투 접기, 비즈 구슬 팔찌 만들기. 초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바뀌는 엄마의 부업을 꽤 오랫동안 지켜보고, 기다리고, 돕기도 했다. 나는 꽤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재밌어하는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사실 아직도 모르겠다.

 부업이라는 게 숫자가 돈이라서 엄마는 매번 머릿속으로 숫자를 세느라 바빴다. 그런 엄마 옆에,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쫑알거리며 엄마의 일에 손을 대는 딸의 존재는 아마 유용하지만 귀찮을 법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라도 얘기할라 치면 엄마는 아무 말도 않고 있다가 어느 순간 부업거리를 잠시 멈추고 버럭 한 소리를 하는 거다.


"엄마 바빠."


 나도 눈치라는 게 있는지라 몇 번 반복되는 엄마의 잔잔한 짜증을 이해하고, 어느 순간부터 엄마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끝으로 부업거리만 만져댔다. 엄마는 나를 위해 짜증을 냈고, 나는 엄마를 위해 입을 다물었다. 그게 고민을 들어주고 받아줄 유일한 서로를 잃는 거라는 걸 엄마와 나는 알지 못했다.


 아빠는 친구가 많은 사람이었다. 어찌나 넉살이 좋은지 집 주변 상인들이 다 아빠를 알았고, 상인들에게 공짜로 얻었다며 받아오는 것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 물건이 아빠가 빌려준 돈을 대신해 받아온, 아빠의 입을 막기 위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아빠는 왜 그걸 공짜라고 좋아하며 받았을까. 아빠가 가져오는 물건의 정가와 남은 빚을 적어내는 엄마의 가계부를 볼 때면 아빠의 넉살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과하게 넉살 좋은 사람들이 으레 가족을 이야기 소재로 쓰듯 아빠에게도 나와 엄마는 좋은 소재거리였는지 사람들은 말 한 번 섞지 않은 나와 엄마를 알았다. 상인들은 시장에 가려고 외출하는 엄마와 내가 나타나는 일요일 한 시간, 그 유일한 시간의 틈을 잡아내며 한 소리씩 얹고는 했다. 우리에게 인사 한 마디 건네지 않으면서 내 손을 잡고 지나가는 엄마의 가녀린 손목을 안쓰러워할 뿐이었다. '저 손목으로 어떻게 애를 키우고 부업을 한다니.'라는 식으로 그 내들이 수군거리면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집에 들어와서는 나에게 한 마디 내뱉고 얇은 요 위에 길게 누워버렸다.


"너는 밖에 나가서 집안 얘기 하지 마. 네 아빠로도 충분해."  


 나는 아무 말 않고 장 봐온 생선 토막이나 콩나물 따위를 냉장고에 넣으면서 생각했다. 엄마처럼, 아빠처럼 살기 싫다고. 모두에게 좋은 사람도, 누구 눈에 띄지 않는 사람도 되고 싶지 않았다. 그저 평범하고 싶었지만 비범해지고 싶었다. 양극단의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그렇게 모순적인 사람이 되어 갔다.




 해가 지고 얼마 후, 민재 씨는 갠지스강 위에서 푸자를 보겠다고 몰려드는 인도인들 사이로 나를 불러냈다. 인도인 특유의 체취를 뚫고 민재 씨 앞에 서자 이제 10살 조금 넘은 것 같은 여자 아이가 스팽글이 잔뜩 달린 분홍색 인도 전통옷을 입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한밤 중에 출발하는 건 힘들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나왔다가 조금 늦게 들어올 수는 있어요."

"30분 정도 될까요?"

"해볼게요. 여기는 내 조카. 아샤."

"아샤, 나마스테."


 내 인사에 수줍게 고개를 끄덕인 아샤는 조용히 민재 씨에게 뭐라 이야기했다.


"언니 이쁘다는데요."

"와, 네가 더 이뻐. 고마워, 단야밧."


민재 씨가 강가에 서 있는 배 중에서 가장 작은 배 앞에 서더니 물었다.


"어디로 갈 거예요?"

"마니까르니까 가트(Manikarnika Ghat)."

"이럴 때 쓰는 말 아니에요? 산 넘어 산."

"하하하. 맞아요. 미안해요."

"진짜 누나 다음엔 진짜 안 돼요."


 한숨을 푹 쉬며 철수 씨가 배로 향하자 아샤가 훌쩍 배에 올라탄다. 나도 철수 씨가 놓은 간이계단을 타고 배에 올라가 아샤 옆에 앉았다. 그렇게 우리는 푸자 의식을 보겠다는 인도인을 잔뜩 실은 채 출발하는 다른 배들과 달리 마니까르니까 가트, 일명 버닝 가트(Burning Ghat)라고 불리는 화장터로 향했다.




 공부를 그리 열심히 하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성적이 그리 나쁘지도 않았다. 그저 그런 평범한 학생으로 조용히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친구들과 선생님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다 아빠 피 때문이었다. 아빠의 넉살을 그대로 물려받은 나는 가만있고 싶어도 머릿속에서 번뜩이는 농담을 입 밖에 내뱉지 않고는 견디지를 못했다. 친구들은 나의 입담에 즐거워했고, 선생님은 수업 분위기를 흐린다고 핀잔을 주면서도 미워하지는 않았다. 남들 같으면 학교에서의 인기를 기뻐해야 당연하지만, 나는 내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에 괴로워했다. 혹시나 내가 뱉은 말들로 누군가가 상처를 받았을까, 나에게 수군거릴까, 나를 따돌리지는 않을까. 학교 생활은 불안의 연속이었지만 그 모든 말을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다. 밤이 되면 침대에 누워서 잠들지 못하고 숨죽인 채 베개를 손수건 삼아 우는 것뿐이었다. 매일을 눈물과 함께 잠들다 보니 내 베개는 소금기를 머금어 얼룩덜룩해지기 일쑤였다.


"너는 왜 잘 때마다 이렇게 침을 흘리냐."

"글쎄. 꿀잠 자나 보지. 근데 아빠는 어딨어? 며칠 못 봤네."

"글쎄다. 또 금은방 아저씨랑 수다 떠나 보지."


엄마는 그저 나의 누런 베개를 자주 바꿔 줄 뿐이었다.


 내 마음과 달리 학생으로서의 나는 좋은 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수능 점수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수도권의 괜찮은 4년제에 들어갔고 CC라는 것도 해봤다. 첫 남자친구였던 S는 오리엔테이션 같은 조였는데, 중간고사가 시작하기 전에 사귀어 기말고사 시작 전에 헤어졌다. 사귀자는 것도 S, 헤어지자는 것도 S였다.


"난 OT에서 너 보고 진짜 입담 좋고 쾌활해서 너무 좋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보수적이고, 말도 너무 없고 우울해. 나까지 우울해져서 안 되겠어."

"그냥 너랑 안 자서 그렇다고 솔직하게 얘기해."

"그래. 또 이렇게 직구 날리지. 사랑하는 여자랑 자고 싶은 건 남자 본능이야."

"사랑? 그게 사랑이었니?"

"이것 봐. 누가 너 같은 애랑 사귀겠냐. 어휴. 칙칙해. 서로 상의 하에 헤어졌다고 해. 내가 그 정도 배려는 해줄게."

"쓸데없는 소문 낼 생각 하지 마. 자고 싶다고 매번 모텔로 약속 잡던 카톡 기록 다 저장해 놨으니까."

"무서운 년."


 무서운 년. 나는 그렇게 무서운 년이 되어갔다. S가 소문을 내진 않았지만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남자 동기들은 그 이후 나와 말을 잘 섞지 않았다. 항상 그룹을 만들어서 행동해야 하는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편했던 나에게 이건 고립과도 같은 상황이었다. 하긴. 잘 된 것일 수도 있었다. 남자들과 가까이 지내면 여우 소리를 듣고 여자애들과 그룹을 만들라 치면 눈치 볼 게 너무 많았으니 차라리 혼자가 편했다. 집에서도 항상 혼자처럼 지냈으니 불편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내가 나의 세계를 견고히 할 동안 아빠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걸 엄마가 알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렇게 나는, 엄마는, 그리고 아빠는 서로를 고립시켰고, 서로의 세계를 만들어 갔다.




 마니까르니까 가트가 멀리 보이는 곳에 도착한 배에 가만히 앉아 불타는 장작들을 바라봤다. 열 개가 조금 넘는 저 불이 모두 화장 중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오싹해진다.


"민재 씨도 저기서 화장하고 싶어요?"

"그럼요. 모든 힌디들의 마지막 꿈이에요. 딱 이 시간에 화장 됐으면 좋겠어요."

"바라는 시간까지 있어요?"

"이 시간에 푸자를 해주잖아요. 이 시간이면 신들도 기분이 좋아질 테니 내 다음 인생은 더 괜찮게 태어나게 해 주겠죠."


  마니까르니까 가트에서 장작 위에 올라간 채 화장당하는 것. 인도인들은 그것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착지로 생각했다. 어떻게 죽은 뒤 '처리'되는 방법조차 꿈이 될 수 있을까.


"환생이 하고 싶어요?"

"환생?"

"다시 태어나고 싶냐고요."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이미 신이 결정한 거예요. 나는 다시 태어날 거예요. 그러니까 다음 생이 더 좋으려면 지금 잘 살아야 해요."


 인도 여행을 떠나온 건 온전히 나의 선택이었다. 서로의 세계에 갇힌 가족 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모든 고정관념이 깨지는 곳이라고 해서 인도로 여행을 왔건만, 고정관념은 고사하고 어디를 가든 넘쳐나는 인도인의 시선과 온갖 크고 작은 사기를 피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 도착한 바라나시에서 그나마 짜이를 마시며 생각할 시간을 벌었다 생각했는데, 어느 관광지든 유명한 곳은 모두 찍어야 하는 한국인들의 목소리에 숨이 막혔다. 이제야, 이제야 비로소 혼자가 됐다. 잘 모르겠다. 나는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 한국을 벗어난 것일까, 아니면 나를 벗어나고 싶어서 혼자를 선택한 걸까. 어떤 게 정답일지라도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혼자가 되길 간절히 바랐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피어오르는 장작의 연기를 따라가다 하늘에 눈이 갔다. 군데군데 박혀 있는 연기가 별을 향해 날아 올라갔다.


"나 여기 잠깐 누울게요. 아샤 좀 잡아줘요."


민재 씨가 아샤를 본인 옆으로 부르고, 나는 좁다란 배 위에 길게 누웠다. 배가 흔들거리면서 아샤의 작은 발이 내 이마 위로 왔다 갔다 거렸다.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죽으면 별이 된다고 아이들한테 얘기해 줘요."

"별? 그럼 다시 안 태어나요?"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다시 태어난다고 하고, 예수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 하고.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별이 된다고 얘기하죠."

"그럼 누나는 죽으면 별이 되고 싶어요?"

"글쎄."


 지금은 그냥 죽어서 사라지고 싶어. 아샤가 한국어를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알아들을까 싶어 뒷 말은 입술 끝에 남겨두었다. 어느새 푸자가 끝났는지 요란하던 악기 소리가 잠잠해지고 다시 약간의 웅성거림만이 울리는 갠지스강으로 돌아왔다. 밤의 소리는 낮게 강으로 깔리다 이내 사라졌다. 강 전체가 얇은 카펫을 깔아놓은 것처럼 일렁이는 갠지스강. 한국 사람들은 강물이 얼마나 더러우면 저런 부유물이 두껍게 떠있냐며 질색을 했지만, 나는 그 모든 부유물이 꼭 모든 영혼의 속삭임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가만히 있으니 민재 씨가 아샤에게 뭐라고 이야기 걸었다. 몇 마디 나누더니 금세 아샤의 풀이 죽었다.


"아샤는 죽어서 별이 되기 싫다고 하네요."

"왜요? 한국 애들은 다 좋아하던데. 한 번 물어봐 줘요."


민재 씨가 힌디어로 중얼중얼거리자 아샤의 말이 길게 늘어졌다.  


"별로 태어나면 혼자라서 외롭다고 싫대요. 지금 입은 옷도 반짝거리는 게 하나만 달려 있으면 하나도 안 이쁘다고. 사람도 다 같이 있어야 반짝인데요."


 아샤의 한 마디에 머리가 멈춘다. 나는 누군가에게 반짝이는 사람이었나.  


"나를 알아주지 않는 사람이랑 같이 있어봤자 나만 괴롭지 않아요?"


민재 씨가 잠시 망설이더니 결심한 듯 말을 이어갔다.


"만약 누나가 인도인이면 *비슈누나 *크리슈나를 찾아가라고 했을 거예요. 평화를 달라고. *시바에게 다 부숴달라 할 수도 있고. 나는 한국 사람들 많이 만났어요. 그리고 알게 된 게 있어요. 나는 신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그걸 하게 만드는 건 나예요. 내가 돈을 벌고 싶다면 *가네샤에게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죠. 하지만 가네샤가 배를 만들어 주지는 못하잖아요.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게 어떤 건지 나는 몰라요. 하지만 신을 믿지 않아도 돈 많아서 여기로 여행 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해요. 그 사람이 믿지 않는 신의 도움을 받았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신은 내가 나를 응원하기 위한 방법일지도 모른다고. 나라면 *하누만에게 가서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겠죠. 하지만 믿는 신이 없다면 내가 나를 응원해 주면 돼요.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길 바란다면 내가 먼저 알아주면 돼요. 다 내가 하면 돼요."


 내가 놀라서 몸을 일으키자 배가 좌우로 흔들거린다. 아샤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이건 비밀이에요."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자 민재 씨가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갑자기 저 멀리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오더니 메가폰으로 뭐라고 하는 듯하다. 고개를 들어 보니 모터보트를 탄 경찰이 우리 쪽으로 손전등을 비추고 있었다. 갑자기 민재 씨가 몰래 노를 강에 빠뜨리더니 경찰에게 힌디로 소리쳤다. 민재 씨의 말을 들은 경찰은 모터보트를 끌고 우리 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노가 빠져서 못 가고 있다고, 동생이 노 가져오길 기다리고 있다고 했어요. 경찰이 배 끌고 가줄 거예요. 그러니까 오면 그냥 고맙다고만 해요."

"경찰이 돈 좀 달라고 할까요?"

"아마 몇 루피 줘야 할 거예요."


주머니에 있던 500루피짜리 하나를 꺼냈다.


"이걸로 줘요. 내 탓이니까."


 민재 씨는 약간 망설이더니 돈을 받고 가볍게 목례를 했다. 이윽고 두 명의 경찰을 태운 모터보트가 다가왔다. 민재 씨는 경찰에게 하소연을 하는 듯하면서 자연스레 500루피를 한 경찰의 손이 쥐어줬다. 경찰은 뭔가 잔소리를 하는 척하며 손에 쥐어진 것을 확인한 후 우리가 탄 배를 밧줄로 묶어 경찰의 모터보트와 연결시켰다.


"이제 갈 거예요."


 모터보트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배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터 소리가 고요한 갠지스강을 다시 깨우는 듯하다. 가라앉아 있던 영혼들이 일어날까 조심스럽다. 다시 배에 길게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하나 둘 박혀 있는 별들이 화장터의 연기에 보일락 말락 했다. 저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무엇으로 환생할지는 신만이 알겠지만, 그게 별은 아녔으면 좋겠다.



<샤이닝> 자우림


 



*푸자(Puja): 힌두교, 불교도, 자이나교가 하나 이상의 신에게 경의와 기도를 바치거나 손님을 맞이하고 영예를 돌리거나 영적으로 행사를 축하하기 위해 수행하는 예배의식. 이 글에서 언급하는 푸자는 갠지스강을 향해 매일 치러지는 불의 제사, 아르띠 푸자(Arti Puja)를 일컫는다.


*비슈누: 힌두교 3대 신 중 하나로 보존과 평화를 담당한다. 우주, 인간의 세상만사와 모든 존재의 균형을 유지하고 질서를 관장한다.


*크리슈나: 비슈누가 한 10번의 주요 화신 중 8번째 화신. 비슈누의 화신 중 가장 중요한 신으로 인간 친화적이며 보호와 사랑을 담당하는 신으로 여겨진다.


*시바: 힌두교 3대 신 중 하나로 파괴를 담당한다. 모든 것이 시작하려면 과거의 것이 파괴되어야 한다는 절대적인 파괴의 본능과 힘을 상징한다. 인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신 중 하나.


*가네샤: 시바의 아들로 코끼리 머리를 한 지혜와 행운의 신. 사업과 학문 성취를 이뤄주는 신으로 여겨져 시바의 자녀 중 가장 인기가 많고 유명하다.


*하누만: 힌두교 신화에 등장하는 원숭이 영웅이자 신. 용맹함을 대표하는 신으로 어린 남자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서유기>의 손오공의 기원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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