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윔지테일 Nov 18. 2024

반달 소나타_광호

<달> 오이스터

 몸이 힘들면 마음은 잠시 일을 멈춘다. 이 진리를 잘 아는 내가 스스로 카페 야간 매니저를 자처한 건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서울에서 야간 유동 인구가 제일 많은 곳, 홍대에서 카페 야간 매니저로 일한다는 건 끈끈한 단골과 진상 사이 미묘한 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다. 밤에 일할 때마다 찾아오는 약간의 몽롱함을 느끼며 카페에 앉은 손님을 보면 그 사이에서 정신줄을 잡고 있는 게 무의미할 정도였다. 자정을 넘긴 시간에도 커피를 마셔가며 놀겠다는 사람과 일하겠다는 사람의 공존이란 그 텐션부터가 다르니까. 하지만 이런 나의 선택이 카페 아르바이트생들 사이에서 어떻게 입에 오르내릴지는 뻔히 알고 있다. E와 더 이상 마주치고 싶지 않다는 나의 의지.




 E는 저녁 8시쯤 와서 항상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시키던 사람이었다. 스타 드라마 작가의 서브작가였던 E는 메인 작가가 홍대 근처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글을 썼는데, 저녁 식사 후 산책코스에 내가 일하는 카페를 끼어 넣어 매일 들락거렸다. 처음에는 항상 카운터 근처 테이블에 앉아 귀찮게 말을 거는 사람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글 쓰는 사람의 소재를 얻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었을까 싶기도 하다. 번거로워하는 우리의 핀잔 어린 눈길은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넉살을 부리며 우리의 안부를 살폈다. 어느새 카페 알바 스케줄까지 외워버린 E가 우리에게 물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E의 가장 대단한 점은 넓고 얕은 지식이었는데, 대부분 대학생에 여러 전공을 가지고 있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내뱉은 어떤 전공 이야기라도 대화가 가능했다. 음악, 그림, 철학, 문학, 경영, 공학까지. 그 어떤 전공이든 한 두 가지는 전공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어쩔 때는 궁금한 듯, 어쩔 때는 교수처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 다들 물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오전 알바만 하던 누구는 E가 궁금해서 저녁 스케줄로 바꾸기까지 했으니까. 그렇게 E는 그저 공용 휴게소 같던 대형 카페의 단골이 되었다. 모든 아르바이트생이 E와 대화하기만 기다렸다. 가끔 E가 마감에 쫓기거나 촬영장에 간다고 오지 않을 때면 모두들 파블로프의 개처럼 카페 문이 열릴 때마다 고개를 돌려 들어오는 이들을 살폈다.


 카페 매니저로서 중립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나 또한 관성처럼 E를 기다렸다. 사실 E가 그리 예쁜 편은 아니었지만 그냥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은가. 마음에 밟히는 사람. 언젠가는 메인 작가가 돼서 입봉 하겠다며 불끈 쥐는 주먹이 귀여웠다. 그냥 그뿐이었다. E에게 쿠키를 챙겨주다 번호를 교환했고, 손을 잡았고, 작업실에 혼자 있는 날이면 가서 밥을 차려주었고, 가끔은 E의 자취방 침대에 같이 누워 살갗을 마주했을 뿐이었다. E가 그 한 마디를 내뱉기 전까지.


- 나 이번 주말에 선 봐. 우리 엄마가 그래도 내세울만한 사람이랑 결혼하길 바라거든. 나도 애는 풍족하게 키우고 싶어.


처음으로 결혼을 생각했던 여자였다. 그 짧은 시간 안에 비혼주의를 접게 할 정도로 E를 내 옆에 두고 싶었다. 한낮 카페 매니저의 수입이랄 게 뻔했겠지. 나라도 내 딸 주기 싫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게 E의 잔인함을 견딜 수 있다는 말은 아니었다. E는 여전히 저녁 식사를 끝내고 카페에 들렀고, 나와의 일은 존재한 적도 없다는 듯 행동했다. 바쁠 때는 외면하기 쉬웠지만 유난스레 한가할 때면 나에게 건네는 인사에 실려 오는 향을 외면하기 어려웠다. 철저한 비밀이었던 우리 둘 사이를 알 리 없던 카페 알바들은 그저 내가 E를 귀찮아한다 느낄 뿐이었다.




 새벽 4시. 카페 마감을 얼추 끝나고 마지막 정리는 알바들에게 맡긴 채 먼저 퇴근에 나섰다. 평소에는 모든 정리를 다 같이 할 테지만 오늘은 중요한 일이 있었다. 혜성이와 전화하기로 약속한 시간이었다. 왜 갑자기 혜성이가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런 일이 생길 때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대나무숲.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  

 

오래전 카페에서 알바로 만났던 혜성이는 참 이상한 애였다. 문예창작과는 차분하고 조용하다는 고정관념을 철저히 깨버릴 만큼 쾌활했던 혜성이는 모두와 스스럼없이 지냈지만 본인의 생일조차 얘기하는 법이 없었다. 그런 혜성이가 유일하게 그 속내를 드러내는 사람이 나였는데, 이를테면 이런 거였다.


- 나 알바 시간 새벽으로 바꿀까 해.

- 얘기 들었어. 야간이 돈 더 줘서 좋다며. 근데 여자애가 무슨 야간이야.

- 여자랑 야간이랑 뭔 상관이야. 엄마가 없는 시간에 집에 있고 싶어. 엄마 출퇴근이랑 야간 출퇴근이 시간이 딱 맞거든.


 혜성은 항상 나에게만 넌지시 진짜를 내뱉고는 했는데, 나는 항상 그 문장들에 압도당하면서도 동질감을 느꼈다. 혜성은 나와 비슷한 게 많았다. 독불장군 같은 엄마를 견디는 것, 세상에 친절하며 자신의 어둠을 감추는 것, 그래서 아무에게도 곁을 내어주지 않는 것까지. 그런 혜성이가 나에게 이런저런 진짜를 얘기를 하게 된 건 학생들의 방학기간, 평일 저녁 텅 빈 카페에서 혜성이와 단 둘이 있을 때 받은 엄마의 전화 한 통이 시작이었다. 엄마의 전화는 이래 저래 핑계는 많았는데, 요지는 매주 밤낮을 바꿔가며 일하는 아빠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나까지 저녁에 일한다는 것이었다. 왜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내 발작버튼 하나를 대차게 눌러버리고 말았다.


- 말로는 카페 아르바이트한다 하고서는 호빠로 출근하는 거 아니야? 누가 밤에 커피를 마시니?


 분노에 휩싸여 온 카페가 울릴 정도로 전화기에 소리를 질렀다.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한참을 그러고 나서 엄마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전화를 끊는데, 그제야 그 모습을 지켜봤을 혜성이가 떠올랐다.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그때 혜성이가 내뱉은 한 마디를 이렇게 오래 기억하게 될 줄은 몰랐다.


- 왜, 몸 팔아서 돈 번다고 하시니?

- 뭐?

- 신경 쓰였다면 미안. 그냥. 나는 괜찮다고. 우리 엄마는 나 고등학교 때 내가 곱창구이 좋아한다니까 원조교제 하냐고 물어보는 사람이거든.

- 뭐라고?

- 그래서 내가 글 쓰는 것도 안 좋아하셔. 나는 이런 것도 다 글로 써버리니까.




 이미 오래전에 카페를 그만두고 글 쓰는 것도 그만둔 채 멀리 미국에 시집가버린 혜성이를 여기에 끼워 맞추는 것도 우습지만. 글 쓰는 여자를 잘 알 만한 사람은 내 주위에 혜성이 밖에 없기도 했다. 혹시나 혜성이 남편이 오해할까 싶어 일부러 혜성이 퇴근시간에 전화하기로 이야기를 맞춘 게 혜성이 시간으론 오후 다섯 시 반, 나에겐 지금이었다. 


 환경미화원의 빗질 소리와 간간히 과속하며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만 울리는 도로변을 걸었다. 그런데 내가 이런 얘기를 혜성이에게 하는 게 맞는 걸까. 그냥 남자 애들 몇 데리고 술이나 마실 걸 괜한 짓을 벌였나. 하긴. 어차피 다들 출근한다고 자고 있을 시간. 혜성은 어느 나라에서 살든 간에 고요한 밤, 전화를 받아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서쪽으로 내려가는 보름달을 바라보는데 혜성이에게 문자가 온다.


- 퇴근! 5분 뒤에 차 타니까 그때 전화해.



<달> 오이스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