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금융의 언어가 되는 순간
나는 이 질문을 2021년, 지금의 회사에서 건축과 공간을 다루던 시절부터 붙잡고 있었다. 공간은 단순히 벽과 구조물의 조합이 아니었다. 그 안에 머무는 시간, 경험, 그리고 브랜드가 만들어내는 가치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회사가 단기간에 응축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공간의 ‘금융화’를 고민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우리는 TIPS(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 지원사업) 과제를 준비하고 있었고, 기술적 확장을 위한 투자사 미팅 과정에서 처음 STO(Security Token Offering) 라는 단어를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것은 단순히 새로운 자금 조달 구조쯤으로 생각했지만, 점차 자산의 소유와 유통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기술적 언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그보다 조금 앞선 2020년 무렵, 나는 이미 NFT(Non-Fungible Token) 라는 개념에 깊은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예술품과 디지털 아이템의 거래를 지켜보며, “결국 세상은 고가의 실물이나 디지털 자산 모두 소유권이 명시된 형태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라고 직감했다. 그때의 관심이 지금의 STO에 대한 이해의 바탕이 되었다.
즉, NFT는 나에게 디지털 자산의 소유가 ‘증명’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STO는 그 가능성을 제도적·금융적 구조로 확장시킨 현실적 기술로 다가왔다. 이 두 지점이 맞물리며, 나는 자연스럽게 공간이 단순히 ‘건축물’이 아니라 금융 구조 안에서 정의될 수 있는 자산 단위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것이 바로 내가 STO 산업에 관심을 갖게 된 출발점이었다.
건축이 ‘공간의 예술’로 인식되던 시대에서, 이제 STO는 ‘가치의 언어’로 자리 잡고 있다. 한 채의 건물이 단순한 물리적 구조물일 때 그것은 머무는 장소에 불과하지만, 그 건물이 블록체인 위에서 거래 가능한 디지털 자산 단위로 전환되는 순간, 공간은 새로운 금융의 문법 속으로 진입한다.
McKinsey & Company(2024)는 산업 전반에서 무형자산(Intangible Assets) 의 비중이 전체 기업가치의 약 25%를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부동산 자체의 가치라기보다, 브랜드·운영·신뢰·경험 등 비물질적 요소가 자산의 핵심 평가 기준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즉, 건축물의 가치는 토지와 구조물의 물리적 가치만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그 공간이 만들어내는 운영성과·브랜드 경험·데이터 신뢰도가 함께 평가되는 구조로 변하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히 평가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운영형 브랜드 자산’으로서 공간이 재정의되는 과정이다. 공간은 일회적 사용 대상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가치가 생성·순환되는 구조적 자산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STO는 그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금융적 언어로 등장한다.
전통적인 자산이 ‘소유’를 중심으로 했다면, 이제는 참여·거래·유통을 중심으로 하는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따라서 STO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자산의 정의를 새롭게 쓰는 금융 구조의 진화라 할 수 있다.
내가 속한 산업, 즉 건축과 공간을 다루는 일은 어느 순간부터 ‘브랜딩’과 ‘콘텐츠’의 경계에 서 있었다. 공간이 브랜드가 되고, 브랜드가 곧 투자 대상이 되는 흐름 속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공간의 금융화’, 그중에서도 STO(Security Token Offering)에 주목하게 되었다.
STO는 실물자산을 디지털화하여 블록체인 위에서 유통 가능한 증권(Security Token)으로 바꾸는 기술이다. 과거의 자산이 ‘소유’를 중심으로 움직였다면, 이제는 ‘참여’의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다. 누구나 한 공간의 일부, 한 브랜드의 일부를 보유하고, 그 가치 상승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참조 : 금융위원회, McKinsey & Company)
이 흐름의 중심에는 RWA(Real World Asset), 즉 실물자산 토큰화가 있다. 건축물, 예술품, 지식재산, 심지어 농지까지 — 그동안 유통이 불가능했던 모든 실물 가치들이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장부 위에서 금융의 언어로 재해석되고 있다. Bloomberg Intelligence(2024)는 2030년까지 토큰화 가능한 실물자산(RWA)의 규모가 약 16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단순한 디지털화가 아니라, 자산의 평가·유통·신뢰 구조 전체를 재설계하는 흐름으로 평가된다.
(참조 : Bloomberg Intelligence, BCG Relevance of On-Chain Assets)
금융위원회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된 카사코리아(KASA Korea)는 ‘역삼 W타워’, ‘서울 센터필드’ 등 상업용 부동산을 조각 단위로 증권화해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을 운영하며, 누구나 5천 원 단위로 지분을 보유하고 임대수익 배당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부동산을 ‘소유’의 대상이 아닌 ‘참여’의 대상으로 전환한 첫 번째 실증 모델로 평가된다.
루센트블록(Lucent Block)은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부동산을 선매입한 후, 블록체인 기반으로 분할 유통하는 ‘부산형 RWA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지자체와 금융기관이 함께 참여해 부동산 NFT를 디지털 수익증권 형태로 발행·유통하고 있으며, 지방 금융과 기술 산업이 결합된 분산형 STO 모델의 초기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참조 : 머니투데이, 비즈워치)
무형자산 영역에서도 같은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뮤직카우(Musicow)는 음악 저작권 수익을 조각 단위로 분할 투자할 수 있는 ‘저작권 수익증권 조각투자 모델’을 통해 STO의 문화산업형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금융당국의 제도권 편입 승인 이후 음악 저작권은 단순한 창작물이 아니라 수익을 창출하는 디지털 자산으로 재평가되었고, 이는 콘텐츠 산업이 금융 자산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이외에도 트레져리(Treasury), 펀블(Funble), 소유(SOYU) 등은 예술품·명품·IP 기반의 조각투자 서비스를 통해 STO 생태계의 민간 확산을 가속화하고 있다.
(참조 : 콘텐츠웨이브, 한국경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주목할 만한 사례가 바로 법인 소유의 실물 자산을 기반으로 한 공유 별장을 소유권을 거래하는 STO 이다. 실제로 내가 속한 회사의 R&D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이다. 공간을 기반으로 한 실물 STO 프로젝트로, 배당형 수익 구조가 아닌 실물 등기부등본에 근거한 자산 직접 소유 구조를 설계했다. 참여자는 한계가 적용되어 있는 일정 수량의 토큰을 통해 해당 자산의 일부를 직접 보유하며, 정기 배당 대신 실질적 자산 가치 상승으로 인한 매각시 수익과, 공간 이용권 형태의 효용을 공유하는 비배당형 소유형 STO 모델이다. 이는 기존의 KASA나 루센트블록이 수익 배당 중심 구조를 채택한 것과 달리, 자산 소유권 그 자체를 토큰화함으로써 실물 기반의 디지털 소유 구조를 구현하려는 새로운 접근이다.
결국 이 모든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한 가지 방향이다. STO와 RWA는 자산의 소유권을 데이터화하고, 데이터에 신뢰를 부여하는 기술이다. 이를 통해 부동산이나 예술품처럼 유동성이 낮던 자산이 시장 참여 구조 속으로 편입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투자 기회를 창출하는 차원을 넘어, 금융의 신뢰 인프라를 중앙기관에서 분산망으로 옮기는 근본적 전환이다. 실물자산의 토큰화는 ‘소유에서 참여로’, ‘폐쇄에서 개방으로’ 이동하는 금융 구조의 진화이며, 공간·브랜드·콘텐츠 등 복합적 자산이 금융의 언어로 번역되는 결정적 전환점에 서 있다.
한국의 STO 논의는 단순히 새로운 금융 상품의 등장이 아니라, ‘금융의 문법을 바꾸는 제도적 실험’ 으로 해석해야 한다. 2023년 2월,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토큰증권 발행·유통제도 정비방안」은 그 출발점이었다. 이 방안은 블록체인 기반으로 발행되는 디지털 증권을 기존 자본시장법 체계 안으로 편입시키며, 토큰증권을 단순한 가상자산이 아닌 ‘공식 금융상품’으로 정의한 첫 사례다. 즉, 기술이 아닌 신뢰의 언어로서의 STO를 인정한 것이다.(참조 : 금융위원회)
이후 「디지털자산기본법(Digital Asset Basic Act, DABA)」 제정 논의가 본격화되며, 한국의 STO 시장은 법적 인프라를 갖춘 규제 일원화 단계로 이동하고 있다. DABA는 단순한 규제법이 아니라 ‘디지털 자산의 소유·보관·거래·공시’를 포괄하는 상위 법체계로, 자본시장법·전자증권법·특정금융정보법 등 기존 제도와의 경계선을 조율하는 기본법적 성격을 지닌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국내 시장에서도 실물자산 기반의 토큰증권 발행이 2026년부터 가능해질 전망이다. 이는 단순한 금융 혁신이 아니라, 실물경제와 디지털금융의 접점을 제도권이 공식적으로 승인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참조 : The Korea Times)
한국의 접근법은 해외 주요국과도 궤를 같이한다. 일본 금융청(FSA)은 ‘FIBC(Financial Instruments and Business Code)’ 체계 아래에서 토큰증권 발행을 자본시장법상 소유권 증명수단으로 명문화했다.
싱가포르 통화청(MAS)은 ‘Project Guardian’ 샌드박스를 통해 실물자산(특히 부동산·채권)의 토큰화를 제도권 금융기관과 공동 검증하는 모델을 운영 중이다. 스위스 금융감독청(FINMA)은 디지털 자산의 인가 체계를 가장 먼저 확립하며, 발행·보관·청산 절차를 모두 법적 체계로 편입했다. 즉, STO는 각국에서 더 이상 기술의 영역이 아니라 금융의 신뢰 인프라로 진입한 제도적 장치로 변모하고 있다.
(참조 : FSA Japan, MAS Singapore, FINMA Switzerland)
한국의 STO 정책이 주목받는 이유는, ‘규제 혁신’이 아닌 제도적 정합성(Regulatory Alignment)을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기적 시장 개방이 아니라, 금융 생태계 전체를 토큰 단위로 재설계하려는 시도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한국예탁결제원(KSD), 한국거래소(KRX) 등이 각각의 역할을 조정하며 ‘발행–유통–청산–수탁’ 전 과정의 디지털 전환 표준을 만드는 중이다. 특히 예탁결제원은 ‘토큰증권 예탁결제 시스템 시범사업’을 추진하며, 향후 KRX가 STO 시장의 1차 유통플랫폼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결국, 한국의 STO 제도화는 단순한 금융정책이 아니라 금융신뢰 인프라의 리엔지니어링(Re-engineering)이다.
중앙집중형 계좌 시스템에서 벗어나 블록체인 기반의 분산 장부 체계로 이동하는 정책적 전환점이며, 이는 ‘누가 발행하느냐’보다 ‘누가 검증하고 보관하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왔음을 뜻한다. 기술은 이미 존재했지만, 그 기술이 법적 신뢰와 결합된 시점이 바로 지금이다. 따라서 STO는 더 이상 혁신의 실험이 아니라, 금융 구조의 공식 언어로서 자리 잡아가는 중이다.
(참조 : 금융위원회, The Korea Times, MAS Singapore, FINMA Switzerland)
지금의 금융 구조 변화는 단순히 STO 법제화에서 그치지 않는다. 스테이블코인(Stablecoin)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가 디지털 금융의 인프라적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기술이지만, 모두 “가치를 안전하고 투명하게 이동시키는 구조”라는 동일한 목적을 지닌다.
STO는 실물자산의 디지털 전환을 의미한다.
스테이블코인은 디지털 자산의 거래와 결제의 매개체다.
CBDC는 화폐 시스템의 공공 인프라 역할을 수행한다.
미국은 2025년 「Clarity for Payment Stablecoins Act」와 GENIUS Act를 상정하며 민간 발행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 결제수단으로 인정했다. JP Morgan의 Onyx Network, Circle의 USDC, PayPal의 PYUSD는 이미 국경 간 결제 및 토큰화 자산 거래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이는 중앙은행이 아닌 민간 주도의 신뢰 인프라가 실물금융을 견인하는 첫 사례다. (U.S. House Financial Services Committee, 2025)
한국은행도 2024년 말 CBDC 시범사업을 종료한 후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민간 발행 모델을 병행 검토 중이다. 이는 중앙은행이 직접 통제하는 폐쇄형 구조보다 민간 참여형 결제 네트워크가 더 빠른 확산 가능성을 가진다는 판단 때문이다. 정부는 2025년 「디지털금융혁신 로드맵」을 통해 CBDC 기술을 오픈소스로 공개하고, 민간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제도권 안으로 흡수하는 하이브리드 구조를 제시했다. (CoinDesk Korea, 2025.06; Reuters, 2025.06)
이 구조는 BIS(국제결제은행)가 제시한 ‘Three-Tier Tokenized Money’ 모델 — ① CBDC(공공화폐)② Stablecoin(민간결제망)③ STO(자산토큰화) — 의 실제 구현 단계다. 이 세 기술이 동시에 성숙하며 금융은 계좌에서 지갑으로, 소유에서 참여로, 중앙에서 분산으로 이동하고 있다.
STO는 기술의 혁신이라기보다 자산의 개념을 재정의하는 과정이다. 이는 실물경제의 가치를 ‘참여 가능한 금융 구조’로 전환함으로써 자산의 유통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시도다. 공간은 더 이상 고정된 부동산의 형태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서비스, 경험, 브랜드, 데이터가 결합된 형태로 가치가 실시간으로 평가되고 거래될 수 있는 자산 단위로 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자산을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에서 비롯된다.
STO는 실물자산을 디지털화해 블록체인 상에서 증권화함으로써 자산의 소유·거래·참여 구조를 투명하게 재편하는 기술적 틀이다. RWA(Real World Asset)와 STO는 단순한 투자 상품이 아니라, 실물경제의 흐름을 디지털로 번역하는 금융 언어로 작동한다. 이를 통해 자산의 분할 소유, 즉 유동화가 가능해지고, 시장 참여의 접근성이 높아진다.
STO의 핵심은 “신뢰의 구조”에 있다. 과거 금융의 신뢰가 중앙기관·계좌 기반의 폐쇄형 체계였다면, STO는 데이터·기록·검증이 분산된 개방형 체계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신뢰 구조의 변화는 단순한 디지털화가 아니라, 금융 거래의 근본적 단위가 ‘계좌’에서 ‘토큰’으로 이동하는 과정이다.
STO는 따라서 ‘투자의 기술’이 아니라, 신뢰를 디지털로 구현하는 기술적 언어다. 이는 공간, 건축, 브랜드, 콘텐츠 등 다양한 실물 가치가 금융의 언어로 연결되고 유통될 수 있는 기반 구조를 제공한다. 결국 STO는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금융 인프라의 구조적 재편을 의미한다. 자산이 디지털로 표현되고, 거래의 단위가 세분화되며, 참여의 문턱이 낮아지는 순간, 금융은 특정 기관의 영역을 넘어 모두가 접근 가능한 개방형 시스템으로 확장된다. 이것이 STO가 가지는 본질적 의미이며, 실물경제와 디지털금융을 연결하는 핵심 축이 되는 이유라 생각한다.
참고 문헌 및 인용 자료
금융위원회, 「토큰증권 발행·유통제도 정비방안」 (2023.02)
자본시장연구원, 「국내 증권형 토큰(STO) 현황 및 시사점」 (2023.03)
The Korea Times, “Will Korea’s STO legislation finally be approved?” (2025.03)
CoinDesk Korea, “한국은행, CBDC 프로젝트 대신 민간 스테이블코인 허용 검토” (2025.06)
Reuters, “Bank of Korea deputy chief says desirable to introduce stablecoins gradually” (2025.06)
머니투데이, 「iM뱅크, 시중은행 전환 인가로 전국 영업망 확장」 (2024.02)
McKinsey & Company, Real Estate Reimagined: Intangible Value and Digital Ownership (2024)
Deloitte, Tokenized Real Estate: Market Forecast 2025–2035 (2024)
BIS Innovation Hub, Blueprint for Tokenized Financial Systems (2023)
IMF, The Rise of Tokenized Assets: From Experiment to Infrastructure (2024)
World Economic Forum, Tokenization of Real Assets and the Future of Capital Markets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