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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부동산은,
일본이 아닌 유럽을 닮았다

보유세의 정의가 만든 것은 ‘순환’이 아니라 자본 집중.

by Charlie Choi

2000년대 초, 유럽과 미국의 도심에서는 이미 ‘집값’이 단순한 자산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세대 간·도시생산력의 위기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후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본격적으로 ‘보유세 강화’가 자산 재분배의 해법으로 논의되었다. 당시 서구 언론에서는 ‘aging in place(도심 고령화)’라는 표현이 유행할 정도로, 노년층의 도심 장기 점유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도시에서 일하는 젊은 세대는 월세를 감당하느라 저축을 포기했고, 그들이 내는 월세는 더 이상 도시의 생산 인프라나 신생 기업에 투입되지 않았다. 대신 노년층의 소비로 빠져나갔고, 결국 도시의 인프라 투자와 개발이 막히며 소비의 선순환이 멈췄다. 그때 등장한 해법이 바로 ‘보유세 강화’였다. 유럽 각국의 정책 담당자들은 말했다고 한다.


“도시의 생산력은 젊은 세대가 만든다. 그런데 이들이 도시에서 살 수 없다면, 도시 전체가 늙어간다.”


그래서 도심의 고령층 자산가들에게 보유세를 통해 자산 과세의 형평성을 높이고, 주택의 세대간 이동을 촉진하려는 논리가 형성되었다. 정치적 설득을 위해 보유세와 소득세 공제를 연동시켰다. 즉, 일을 해서 세금을 내는 사람은 보유세를 공제받지만, 생산활동이 없는 은퇴자는 보유세를 그대로 부담하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부의 기대와 달랐다. 고령층이 내놓은 주택은 개인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보유세 강화는 매각을 촉진했지만, 저금리·유동성 환경 속에서 그 매물은 개인이 아닌 기관투자자에게 흡수되었다. 대신 REITs(부동산투자신탁), 부동산 펀드, 기관투자자들이 일부 매물을 대규모로 흡수하며 주택의 임대화가 진행되었다. 주택은 월세 수익 구조로 전환되었다. 미국 주택 위기 이후, 기관투자자가 단독주택을 대량으로 인수해 임대주택으로 재편했다는 보고도 있다. 결국 개인은 더 이상 주택의 ‘주인’이 아니었고, 도시는 임대의 도시로 변했다.


미국과 일부 유럽 주요 도시에서는 주택이 남아돌지만 실거주자는 줄었고, 월세는 오히려 폭등했다. 그 결과 보유세가 만든 것은 ‘순환’이 아니라 자산 집중의 새로운 형태였다. 오늘의 서울이 맞이하고 있는 현실은 그때의 유럽과 닮아가고 있을 것이라 개인적으로 추측한다. 소득이 없는 고령층이 도심의 주택을 장기 보유하고 있고, 젊은 세대는 교외로 밀려나며 도심의 생산 인구는 빠르게 줄고 있다.


보유세를 올리자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지만, 문제는 단순히 세율이 아니다. 이미 글로벌 자본은 이 구조의 ‘빈틈’을 보고 움직이고 있다. Morgan Stanley, Heimstaden, Cushman & Wakefield 등 글로벌 부동산 자본이 국내 주요 금융기관과 협력하며 주택 리츠(REITs)·프롭코(PropCo) 구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주택을 한 채씩 사지 않는다. 압구정, 반포, 용산 같은 대단지를 통째로 인수해 호텔형 레지던스, 장기 월세형 콘도, 서비스형 아파트로 전환하는 모델을 준비하고 있다.


만약 한국이 유럽식으로 “소득 없는 고령층에 대한 보유세 강화”를 밀어붙인다면 그 매물은 개인에게 가지 않는다. 그 빈자리는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자본, 즉 법인과 글로벌 펀드의 손으로 흡수될 것이다.(개인적으로 이미 이를 예측했었다.) 그때 서울의 아파트는 ‘부동산 자산’에서 ‘임대 수익 자산’으로 성격이 바뀌고, 청년층은 집값 하락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채 월세 부담만 떠안게 된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현재 정부는 ‘보유세 부담 완화’ 기조를 유지하면서 다음의 3단 틀을 병행하고 있다.

① 법인 과세 강화
② 다주택자 중과세 합리화
③ 공시가격 현실화율의 점진적 조정


이 구조는 단기적으로 시장 안정에는 분명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부동산의 위기는 이제 단순한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 ‘소유 구조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지금 정부의 정책 기조가 거래 정상화와 공급 확대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다음 단계는 ‘누가 도시의 주택을 소유할 것인가’에 대한 설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세율을 조정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세금이 자본의 속도를 늦추는 방향으로 작동하느냐로 생각된다.


보유세를 낮춘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보다 중요한 건 그 세금이 누구의 속도를 늦추느냐다. 실거주자는 여전히 도시에 머무를 수 있어야 하고, 자본은 주택을 단기 수익 수단으로만 다루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필요한 건 세금의 높낮이가 아니라 소유 구조의 방향성이지 않을까?


정부의 보유세 완화와 거래 정상화 정책은 단기적 안정에는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효과를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다음 단계는 ‘가격’이 아니라 ‘소유’를 다루어야 하지 않을까?


법인과 외국계 자본이 도심의 주택을 대량으로 흡수하기 시작하면, 결국 청년층은 더 이상 집을 사는 주체가 아니라 월세의 공급원이 된다. 이 흐름을 막기 위해선 몇 가지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 실거주 중심 과세 구조 재편 : 생산활동 여부가 아닌 ‘살고 있는가’의 여부를 기준으로 감면과 과세를 나누어야 한다.

- 법인·대형 펀드의 주택 매입 제한 : 리츠와 PEF의 주거용 자산 비중에 대한 공시 강화 및 감독 기준을 마련해야한다.

- 도심 실거주 인센티브 강화 : 단순한 지원금이 아니라, ‘도시 안에 머무르는 사람’을 위한 세제 혜택 중심으로 바꾸어야 한다.

- 거주 기반 리츠(Social REITs) 육성 : 단기 수익형 리츠가 아닌, 실거주자 중심의 사회적 리츠를 공공-민간 협력으로 설계해야 한다.


서울은 지금, 유럽의 20년 전이 아니라 그 이후의 금융화 결과를 눈앞에 두고 있는 것 아닐까? 보유세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문제는 ‘보유세 이후’의 시나리오를 준비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지금의 세제 개편이 단순히 ‘정의’의 이름으로 고령층 자산을 밀어내는 구조라면,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젊은 세대가 아니라 자본이다. 정책은 언제나 정의를 앞세우지만, 시장은 언제나 돈의 방향으로 흐른다. 지금 필요한 건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이런 칼을 대는 그런 것이 아니라, 도시를 누구의 손에 넘길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지 않을까?


한국의 부동산 시장을 이야기할 때, 흔히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떠올린다. 가격이 꺼지고, 거래가 멈추고, 도시가 늙어가는 그림이다. 그러나 지금의 서울은 일본과 닮은 듯하면서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듯 하다. 일본의 부동산은 ‘가격의 붕괴’로 인한 정체되었고, 유럽은 ‘금융화’를 거치며 자본이 주택 시장을 지배했다.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부동산을 되살리기 위해 금리를 내리고 세금을 낮췄지만,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이 겹치며 자산이 여전히 정체 되었다. 유럽은 반대로, 세금을 높였지만 그 결과 주택이 개인의 손에서 자본가들의 포트폴리오로 넘어갔다.


한국은 지금 그 두 길의 교차로에 서 있다. 일본처럼 얼어붙을 위험과, 유럽처럼 잠식될 위험이 동시에 존재한다. 세금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세금이 누구의 손에 도시를 남길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서울은 일본이 걸었던 ‘정체의 시간’을 피할 수 있을까, 그리고 유럽이 겪은 ‘금융화의 함정’을 넘어설 수 있을까. 그 대답은 아마도, 우리가 ‘집’을 어떤 언어로 정의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참조 및 관련 자료

The Financialization of Housing and Its Political Consequences (R. Dancygier et al., 2024)

The Restless Urban Landscape of Housing Financialization (Z. J. Taylor, 2024)

Institutional Investors in the Swedish Housing System (D. Kadıoğlu et al., 2024)

The Financialization of Rental Housing: Evictions and Rent Trajectories (V. Lima, 2020)

Rental Housing: Information on Institutional Investment in Single-Family Homes (U.S. GAO,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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