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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ELJAZZ Oct 19. 2024

그녀는 악몽을 꾸었다.

서울특별빌라 시리즈 8 (202호의 시점)

서울특별빌라 202호에 데스크탑 컴퓨터가 들어왔다. 사양은 최신의 최신형이었고, 컴퓨터의 주인이 될 그녀는 입꼬리를 귀에 걸었다. 그녀는 게임을 사랑하는 겜순이였다. 이제 아늑한 자취방에서 평생 그녀가 좋아하는 총 게임을 하며 시간을 때울 생각에 그녀의 기분이 좋아졌다.


책상은 컴퓨터가 다 차지해버렸다. 마우스에서는 무지개색 빛이 났고, 그녀의 눈에서는 광이 났다. 마치 사바나 초원의 하이에나처럼, 그녀는 목표를 놓치지 않고 게임세상에 몰두했다. 회색 세상, 대학교 등 현실의 탈을 쓴 무엇이든지 그녀의 모니터만한 시야 밖에 있었다.



그녀는 친구가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몇몇의 인터넷친구들과,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데면데면하게 지내온 친구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를 이들만 그녀의 주위에 있었다. 그마저도 점차 가상세계에 빠지는 그녀의 습관에 점점 멀어져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는 친구가 전화를 할 때면 항상 바쁜 일이 있다고 핑계를 대었다. 물론 그 바쁜일은 모니터 안에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도 가끔은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었다. 너무 자주 친구의 연락을 받지 않는다거나, 일주일 동안 아무 사람도 보지 않는 경우에는, 그녀의 마음에서도 회색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그렇지만 그녀가 먼저 연락하는 일은 없었다. 그녀의 연락하는 능력은 퇴화되었다.



따라서 그녀는 연락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 안절부절하지 못하다가, 휴대폰에 아무 새로운 연락도 오지 않자, 헤드셋을 목에 걸고 다시금 게임의 세계에 빠져버렸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그녀도 연달아서 패배하는 일이 있었는데, 오늘이 하필 그날이었던 것이다. 평소같았으면 패배의 쓴맛을 냉장고에 있는 맥주 한 캔으로 달랬을 그녀이지만, 인간관계의 허무를 손에 만지기 직전인 그녀는 방을 나서기로 결심하였다.



그녀는 방문을 열고 나갔다. 그렇지만 그녀는 먼 길을 가지는 않았다. 밖은 너무 추웠고, 어차피 밖에 친구도 없었다. 그녀는 312호에 사는 그녀의 친구, 이지연을 보러 갔다. 고등학교 동창인 이지연이 그녀와 같은 건물에 거주하는 것은 순전한 행운이었다. 혼자서는 절대 자립하지 못했을 그녀의 대학생활을 지지해준 것도 이지연이었다. 그녀는 이지연을 거만하고 재수없는 친구로 생각하였지만, 이지연은 그녀를 그저 찐따로 볼 뿐이었다. 이지연이 그녀를 챙겨주었던 것은 온전한 동정심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이지연도 그녀가 불시에 방문을 노크하는 것은 참지 못했다.


"뭐해 지연쓰 혹시 맥주 한 캔 안할래?"


"나 지금 지호랑 영통 중이야. 김민지 나중에 봐"



그렇다. 이지연의 남자친구 김지호의 존재 앞에서 그녀의 존재는 한줌 재가 되어 날아가버렸다. 그녀는 순간 서운함을 느꼈다. 그렇지만 그녀는 자신의 분수를 아는 여성이었다. 바로 다음 순간 그녀는 게임만이 그녀의 유일한 친구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녀는 작별인사를 하고 다시 그녀의 모니터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때, 이지연이 잠시 방문을 열고 나왔다.


"아, 김민지, 이따가 피방가자"


"피방? 웬일이야?" 그녀는 순간 설렜다. 물론 최신 데스크탑을 지닌 그녀에게 피씨방은 사치였다. 그렇지만 가끔은 사치가 인간에게 필수재가 될 때도 있는 법이었다. 지금 그녀에게 거절이라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좋아, 언제 갈까?"


"나 지호랑 계속 영통하고, 한 자정쯤에 가서 새피(새벽 피씨방) 하자, 으음 제니수 피씨방으로 12시 반까지 오케이?"


"엉, 내가 자리 맡아두고 있을게"



그녀는 설레는 마음으로 방으로 돌아갔다. 그렇지 않아도 인터넷친구와의 게임이 질려가던 참이었다. 그렇지만 혼자서 게임하는 것보다는 인터넷친구라도 데리고 같이 게임하는 것이 더 나았다. 그런 와중에 이지연의 등장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그녀는 시계를 보았다. 지금은 밤 11시였다. 약속시간은 12시 30분이었고, 피씨방은 10분 거리에 있었지만 그녀는 일찍 집을 나서기로 한다. 산책이라는 것을 해보려는 마음이 든 참이다. 그녀는 문을 박차고 나갔다. 금방 피씨방에 갈 것이니, 보조배터리, 지갑도 챙기지 않았다. 어차피 요즘은 휴대폰이 카드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시대였다.



그녀는 서울특별대학교를 거닐었다. 오랜만에 실제 신체를 움직이니 온몸에 피가 다시 도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차가운 밤공기를 만끽했다. 서너개씩 보이는 별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순간 자신이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감각에 빠졌다. 지고의 사실이었다. 그녀는 인생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생각을 돌렸다. 생각을 돌리면 인생이라는 무거운 벽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약속, 이지연이라는 친구만이 지금 그녀의 눈앞에 존재하였다.



그녀는 서울특별대학교 법학관 쯤에서 휴대폰을 한번 꺼냈다. 배터리가 애매하게 남아있었다. 42퍼센트였다. 그렇지만 그녀는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피씨방에서는 휴대폰 충전이 가능했다. 그리고 약속시간은 1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시원한 밤공기처럼 순탄하게 흘러갔다. 길가에 보이는 귀여운 강아지들처럼 눈에 띄게 좋았다.



그녀는 12시까지 서울특별대학교를 거닐었다. 휴대폰으로 걸음수를 보니 6000보가 찍혀있었다. 그녀는 뿌듯함을 느꼈다. 그녀는 보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건강을 위해 투자하는 그녀는 시대가 인정하는 인재였다. 절대 인생을 허비하는 날백수가 아니었다. 그녀는 걸음을 빠르게 옮겨 약속장소인 제니수 피씨방으로 향하였다.


제니수 피씨방은 학교 정문 코앞에 있는 6층 건물의 6층에 있었다. 그녀는 제니수 피씨방 건물 3층의 중식당에서 자주 혼자 식사를 했었다. 익숙한 발걸음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저 앞에 거대한 개가 한마리 보였다. 검은색이었고, 성인 남성의 허리까지 오는 키를 가진 개였다. 그녀는 순간 공포를 느꼈다. 아마 맹견일 그 개는 입마개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는 무서웠지만 무시하고 건물안으로 들어가려했다. 그때 맹견이 짖었다. 늑대와도 같은 소리였다. 그녀는 깜짝 놀라 순간 발을 헛디뎠다. 개의 주인이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소리를 하는 것이 잠깐 귀에 스쳤다. 그렇지만 곧 물리적 타격에 사과는 희미해졌다.



그녀는 넘어졌다. 그녀는 순간 고개를 올려보며 개를 보았다. 이미 개는 사라져있었다. 공허한 사과만이 울려퍼졌을 뿐이었다. 그녀는 잠시 휴대폰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가 넘어지며 그녀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떨어졌다. 그녀는 자신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었다. 휴대폰이 더 중요하였다. 그녀는 휴대폰을 켰다. 액정에 금이라도 가있으면 안되었다. 휴대폰 화면을 보니, 기스가 몇개 생겨있었지만 금은 가지 않았었다. 그녀의 가슴에도 기스가 몇개 생겼지만, 그녀는 금이 가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려 노력했다. 잘 되지는 않았다. 짜증이 몰려왔다. 왜 입마개도 안하고 거대한 개를 산책시키는지 그녀는 속으로 욕을 했다. 이건 뺑소니였다. 아까 넘어지며 부딪힌 무릎이 아파왔다. 그렇지만 그녀는 참았다. 그녀에게는 깡이 없었다. 그녀는 개의 주인에게 어차피 항의할 수 없었다. 그녀는 피씨방으로 향했다.



그녀는 제니수 피씨방에 처음 가보았다. 학교 익명 커뮤니티에서 피씨방에 대해 안좋은 평가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피씨방에 대하여 사치라고 생각하였지만, 이왕 부리는 사치라면 모니터는 240HZ가 되는 곳이어야 하고, 마우스는 롤지텍 브랜드여야 한다고도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제니수 피씨방은 모니터는 5년 정도 된 구형이었고, 마우스는 그녀의 상처난 무릎처럼 바닥이 다 문드러져 있었다. 최신 게임을 돌리기 적당하지 않았다.



그녀는 피씨방에 들어갔다. 라면 냄새가 코를 때렸다. 그녀는 시간을 충전하려고 키오스크에 갔다. 그리고 결제를 위하여 휴대폰의 카드기능을 활성화하고, 결제하기 버튼을 눌렀다. 결제가 완료되었다는 안내멘트가 들렸다. 그때였다.


'삐삐삐'


경고음이 들렸다. 그녀는 아연실색했다. 그녀의 카드가 문제였을까? 그녀의 잔고가 텅 비어버린 것일까? 어떤 문제 때문에 그녀가 경고음을 들어야만 했던 것일까? 그녀는 키오스크를 매섭게 쳐다보았다. 오류메시지가 떠 있었다.


'산협은행 점검시간입니다. 잠시 후에 다시 결제바랍니다.'



그녀의 주거래 은행인 산협은행은 항상 자정부터 30분간 전산 점검을 하였다. 그녀가 생각하기로는 은행 전산이란 것은 그저 있으면 있는대로 완벽히 작동해야 하는 것이었는데, 굳이 매일 점검을 하는 은행시스템은 불편하였다. 가끔 친구에게 송금을 해야할 때 장애물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실제로 결제하려고 할 때에 경고음을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당황하였다. 그녀는 휴대폰을 보았다. 배터리 잔량이 위험하였다. 기스가 난 화면 위로 배터리 잔량이 보였다. 28퍼센트의 배터리가 남아있었다.



그녀는 고심하였다. 지금 그녀가 택할 최선의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하였다. 그녀의 무릎이 아려왔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게임을 할 때마다 가동되던 하이에나의 눈으로 빈 자리를 포착하였다. 그녀는 빈 자리에 가서 일단 앉아있으려고 했다. 그렇지만 이것도 최선의 방안은 아니었다. 우선 이지연의 문제가 있었다. 이지연은 지금 그녀가 제니수 피씨방에 있는지, 있다면 몇번 자리에 앉을지 모르는 상태였다. 그녀가 자리 번호를 알려주지 않는다면 짜증을 낼 이지연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자리번호를 키톡으로 보내주었을 것이지만, 그녀의 휴대폰은 점차 생명이 다하고 있었다. 그녀는 우선 얼른 키톡으로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려 하였다.



그녀는 이지연에게 키톡을 보냈다.


'지연쓰 나 지금 은행 점검 때문에 시간 충전 못함 일단 빈자리에 앉아있을게 ㅜㅜ'


그리고 그녀는 빈자리에가서 앉았다. 그리고 피씨방 컴퓨터와 연결된 충전기를 연결하려 했다. 그렇지만 곧 충전기가 낡아 제역할을 못함이 밝혀지고야 말았다. 그녀는 좌절했다. 배터리 상태를 보니 23퍼센트가 남아있었다. 휴대폰 기종이 오래되어 비정상일정도로 배터리가 빨리 닳고 있었다. 그녀는 진작에 휴대폰을 바꾸지 않을 것을 후회하였다. 그렇지만 후회해도 소용이 없었고, 곧 지독한 현실이 그녀를 덮쳐왔다.



피씨방 주인 아주머니였다. 제니수 피씨방의 악명을 만들어낸 장본인으로, 철저한 구두쇠로 소문이 나있었다. 아주머니가 그녀에게 다가와 몇 마디를 건냈다.


"아니, 학생 시간 충전도 안하고 자리에만 앉아있으면 돼? 학생이 전기세 내줄거여?"


"저 지금 은행 점검시간이라 충전을 못해서 그러는데, 조금만 앉아있으면 안될까요?"


"안돼, 학생 그럴거면 이따가 점검 끝나면은 다시 들어와"


아주머니는 그녀를 내쫓았다. 그녀는 자신이 점차 궁지에 몰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휴대폰 배터리는 13퍼센트 남아있었다. 약속시간은 20분 남아있었고, 이지연은 그녀가 피씨방 안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터였다.



그녀는 다시 머리를 굴려 최선의 방안을 찾으려고 했다. 우선 휴대폰을 충전해야만 했다. 그녀는 아픈 무릎으로 절뚝거리며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마침 피씨방 바로 밑, 1층에 편의점이 있었다. 그녀는 편의점에 들어가, 케이블과 보조배터리가 있는 코너로 향하였다. 보조배터리는 용량이 크지만 지금 충전되어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다. 그녀는 대신 일회용 보조배터리를 들었다. 일회용 보조배터리는 충전이 매우 느리지만,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그녀는 편의점 계산대에 가서 계산을 했다. 아! 그녀는 멍청하였다. 그녀는 또 휴대폰의 카드기능을 활성화하여 결제하려 한 것이다. 또다시 경고음이 뜨고 그녀를 무안하게 하였다.



그녀는 어쩔 도리없이 편의점을 나왔다. 그녀는 안색이 새파래져 있었다. 휴대폰 배터리는 8퍼센트 남아있었다. 약속시간은 15분 남아있었다. 그녀는 점차 걱정이 되었다. 그녀는 마지막 선택지를 선택하기로 하였다. 이지연에게 자신이 피씨방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키톡을 보내고, 그저 피씨방 앞에서 기다리는 것이 최후의 수단이었다. 그녀는 후회하였다. 인간관계는 별로 그녀의 인생에 중요치 않았는데 안락한 방을 버리고 밖에 나온 것을 후회하였다. 그렇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그녀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피씨방 문 앞에 서 기다리기로 했다. 아까 부딪혔던 무릎이 계속 아파왔다. 그녀는 바지를 조금 올려 무릎을 보았다. 멍이 조금 들어있었다. 그녀의 마음에도 멍이 들었다.



그렇지만 15분만 기다리면 되었다. 그녀는 그 사실에 집중하기로 하였다. 15분만 기다리면 된다는 것에 집중하면 마음이 그나마 편해졌다. 휴대폰을 본다거나 음악을 듣는 선택지는 없었다. 그녀는 배터리를 아껴야만 하였다. 그녀는 휴대폰을 우선 절전모드로 바꾸어놓고, 기다렸다. 피씨방 문 앞은, 엘리베이터와 마주하고 있는 실내였지만, 추웠다.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고, 하필 겨울이 매서울 때였다. 그녀는 추위에 덜덜 떨었다. 그리고 몇번 피씨방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아주머니가 자신을 보고 들여보내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렇지만 아주머니는 피도, 눈물도, 인정과 사정도 없는 분이셨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는 떨었다.



영겁의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망상 속을 탐방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던 아이돌에 대하여 상상하였고, 무대에 올라 노래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였다. 그리고 총게임의 캐릭터가 되어 아주머니에게 총을 쏘는 상상도 하였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어 휴대폰을 잠시 확인하니, 5분의 시간만이 흘러있었다. 그녀는 남은 10분을 어떻게든 버텨야만 했다.



그녀는 다시 망상하였다. 아이돌은 다른 아이돌로 변화하였고, 그녀가 부르던 노래는 다른 노래가 되었다. 그리고 총게임의 캐릭터도 다른 캐릭터가 되어 각각 다른 기술로 아주머니를 겨누었다. 그렇게 또 5분이 지나고, 추위는 여전하였다. 추위 속에서 그녀는 데스크탑 컴퓨터가 서울특별빌라 202호에 왔던 순간을 다시 떠올렸다. 그녀가 뽑는 인생의 하이라이트였다. 그녀는 그 순간을 재생하고 재생하며 남은 5분을 또 버텨보았다. 그렇게 약속시간이 되었다. 이지연은 오지 않았다.



그녀는 4퍼센트밖에 남지않은 휴대폰 배터리에도 불구하고 키톡을 열어 자신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녀의 키톡은 읽히지 않았다. 그렇게 남자친구가 좋다고 한들, 자신의 키톡을 읽지도 않다니, 그녀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추위와 분노가 느껴졌다. 그때였다. 그녀가 보낸 키톡을 이지연이 읽었다. 그리고 키톡이 왔다.


'미안 나 10분 정도 늦을듯 ㅈㅅㅈㅅ(죄송죄송) 대신 내가 음료 쏠게'


그녀는 다시금 몸을 떨었다. 시간감각도 존재하지 않고, 오만하고, 남자에 미쳐사는 이지연의 친구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그녀가 이지연과 절교한다면, 이지연과 공유하는 친구들까지 멀어질 게 뻔하여, 그녀는 이지연을 밀어낼 수 없었다.



그때 그녀는 기억해냈다. 12시 30분이 넘은 것이다. 은행 점검 시간이 끝났다는 의미이기도 하였다. 그녀는 얼른 키오스크로 가서 결제하였다. 다시는 이 피씨방에 올 생각이 없었기에 2시간의 시간만 결제하기로 하였다. 휴대폰 배터리는 2퍼센트 남아있었다. 이렇게 적은 배터리에도 카드기능이 활성화될까 의문이었다. 그녀는 카드기능을 활성화시키고, 키오스크에 휴대폰을 갖다대었다. 결제중이라는 메시지가 떴다.


잠시후, 메시지가 떴다.'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라는 메시지였다. 그렇지만 아직 난관이 남아있었다. 30분 전에도 결제 완료 메시지가 뜬 후에 경고음이 울린 것이었다. 그녀는 기다렸다. 1초, 2초, 3초... 경고음은 울리지 않았다. 그녀는 안심하였다. 저 너머에 그녀를 흘겨보는 아주머니의 눈빛이 보였다. 그렇지만 이제 상관없었다. 그녀는 이제 정식으로 손님이 되어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었다. 비록 202호에 있는 컴퓨터보다 매우 질이 떨어지는 컴퓨터였지만 말이다. 추위와 악몽이 끝난 것이었다. 휴대폰 배터리를 보니 1퍼센트만이 남아있었다.



15분뒤에, 이지연이 왔다. 그리고는 양심에 찔리지도 않는지 바로 반갑다는 인사를 했다. 그녀는 속으로 이지연의 욕을 했지만,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이지연은 생각하였다.


'내가 비록 늦었지만, 우리 친구없는 민지랑 놀아주는 건 관대한 처사지, 암암. 우리 민지는 날 조금 기다렸다고 약이 올랐겠지만, 뭐 어때. 주인공은 늦게오는 법. 그리고 오늘은 지호가 영상통화에서 특히 잘생겨보였는걸. 어쩔 수 없었지.'


이지연의 표정이 기묘하게 보였지만, 그녀는 참았다. 그녀는 추위와 불안으로부터 멀어진 것에 안심하였다. 그녀는 아까 키톡을 보내면서 이지연이 그녀에게 짜증을 내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왜 짜치게 그녀가 피씨방 문 앞에서 기다려야 하는지 이지연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녀에게 짜증을 냈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지연이 오기 전에 자리에 앉을 수 있었고, 안심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이지연의 눈치를 지나치게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지연은 생각하였다.


'솔직히 게임 재미없고, 민지는 더 재미없는데, 뭐 어쩔 수 없지, 공유하는 학창시절 친구들과의 우정을 위해 내가 참는다. 얘 때문에 지호랑 일찍 끝내야 했던 건 너무 아쉬워. 달콤한 꿈이 깬 느낌이야.'


그녀는 생각하였다.


'게임이나 하고, 집에 들어가야겠다. 앞으로 일주일은 절대 사람을 보지 말아야지. 특히 이지연은 말이야. 오늘은 악몽 같은 날이었어. 너무 추웠고, 불안했어. 아냐 잊어버리자.'


동상이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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