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사냥
서울특별빌라 시리즈 7 (101호의 시점)
그리고 나는 김수원 형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되었다. 그는 분명 연애 중이었다. 무려 4년이 넘게 지속된 연애였다. 그런데 그는 과 여자들의 카톡을 지나치게 많이 받는 것 같았다. 내가 과 후배 이지민, 박민정 등을 마주칠 때마다 김수원 형의 카톡이 나에게 왔으니, 아무래도 확실한 의심이었다. 그는 여우였던 것이다. 여자친구가 있지만 여자들이랑 카톡을 끊을 수 없는 여우. 열심히 어장을 관리하는 어부였다. 나는 그의 여자친구를 마주칠 때마다 그녀가 가여워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의 실체를 그녀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항상 생각만으로 그치기 일쑤였다.
벌금이 쌓여갔다. 5000원이라는 꽤나 큰 금액은 금세 몇 만원이 되었다. 다 나와 박정수의 공이었다. 우리의 피와 땀으로 일구어낸 벌금이 산처럼 쌓여가기 시작했다. 박정수는 아랫집 여자와의 싸움에 지쳐 기타를 손에서 놓아버렸다. 그렇지만 그는 스터디를 탈퇴하지는 않았다. 공연을 같이하는 내 눈치가 보여 탈퇴할 수 없었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그리고 김수원 형은 여전히 철두철미하게 요리를 했다. 주로 김치볶음밥을 요리할 뿐이었지만, 그는 단 한번도 벌금을 내지 않았고, 나와 박정수 덕에 뷔페 회식을 할 생각에 들떠있을 것이 뻔하였다. 나는 점차 김수원 형에 대해 의심에 더불어 불편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가 단 한 번도 벌금을 내지 않은 것이 분하였다. 그리고 사람이 항상 철두철미할 수는 없을 노릇이었다. 나는 그에게도 뭔가 거짓이 있을 가능성을 점쳐보았다. 그가 올리는 사진이 인터넷에서 가져오는 것은 아닌지 이미지를 웹서핑해보기도 하였고, 그의 집에서 정말 요리 냄새가 나는지 그의 집앞에 일부러 가서 확인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그의 허점을 찾아내기는 정말 어려웠다. 나는 단 한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또 몇 주가 흐르고 비가 자주 오기 시작하였다. 나는 점차 운동도 손에서 놓기 시작했다. 비가 오는 날에 진흙탕이 되어버리는 보도를 걸으며 헬스장에 가는 것이 귀찮아졌다. 주 5회였던 운동 횟수는 주 3회, 주 2회가 되어갔고, 우리의 벌금 계좌는 이제 배를 가를 때가 되었다. 뷔페 회식을 하고도 남을 돈이 쌓여버린 것이다. 이게 다 날씨가 궂은 탓이었다. 그리고 312호 여자가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는 탓이기도 하였다.
우리는 초밥 뷔페에 가기로 하였다. 인싸 김수원 형이 시간이 별로 없다고 하여 날을 잡는 것이 어려웠다. 나와 박정수는 시간이 널널한데, 김수원 형 때문에 뷔페를 늦게 가게 된 것이다. 나는 조금 짜증이 났다. 그에게는 스터디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 후배 두 명에 대한 애정 또한 결여되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무래도 우리 둘이 남자이기 때문인 것이 자명했다. 나는 언젠가는 김수원 형의 완벽한 가면을 벗겨내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신년계획이 추가된 셈이었다. 그리고, 그 계획은 초밥 뷔페를 가는 날에 진행할 예정이었다. 어차피 돈도 더 모인 겸, 술까지 그에게 먹이고, 그에게서 실토를 받아내겠다는 마음이 든 것이다. 불쌍한 박정수는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뷔페는 전쟁터가 될 예정이었다.
평소에 김수원 형은 술을 자주 먹지 않았다. 회식 자리에서도 소주를 꺾어마시는 그는 술이 약했다. 그렇지만 나는 혈관에 알코올과 니코틴이 흐르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인사불성으로 만들고 자백을 받아낼 기초체력이 있는 셈이었다. 나는 전투를 기다리며 지루한 나날을 보냈다. 그에게서 어떻게 자백을 받아낼지, 그 여우를 어떻게 철장안에 집어넣을지 계획을 세우며 런닝머신에서 운동을 했다.
그날이 되었다. 우리는 번화가에 있는 초밥뷔페, 쿠야쿠야에 갔다. 박정수는 헤벌레하는 표정으로 초밥을 한 접시에 10개씩을 집어왔다. 나는 그의 식성이 놀라웠다. 물론 그는 거구였지만 그 정도의 식탐을 지닐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않았다. 물론 나는 그에게 별 관심이 없기는 하였다. 그와 나는 같이 공연하는 사이였지만, 이인삼각 메이트로서 그는 최악이었다. 요즈음은 합주원들의 뒷담화에 나도 같이 껴서 그를 욕하기 시작했다. 이제 회식을 기점으로 신년계획 스터디 또한 마무리 짓고 쫑내기로 하였으니, 그는 나에게 별로 쓸모가 없는 존재였다. 그에게 낭비할 시간은 없었다. 나에게는 목표가 있었다.
“우리 술도 시키자” 내가 말했다.
“술? 천재야?” 박정수가 말했다. 나는 속으로 박정수를 한 번 더 욕했다. ‘식탐만 많은 가련한 것. 모두가 너를 욕한단다. 알고는 있니?’
“술 좋다. 우리 어차피 돈도 많이 남았잖아” 김수원 형이 말했다.
“그럼 시킬게요” 나는 점원을 불러 소주를 시켰다. 곧 점원이 소주 한 병과 잔 세 개를 가져왔다. 전투 개시였다.
“수원이 형, 오늘은 꺾어마시기 없어요” 내가 말했다.
“왜? 그건 내 마음 아닌가?” 수원이 형이 말했다.
“그래도 우리 오늘 열심히 한 스터디 쫑내는 날인데, 남자답게 마셔야죠”
“하,,,” 그가 한숨을 쉬었다. 그렇지만 그는 형이었다. 자존심이 있을 것이었다. 특히 내가 생각하는 그의 모습, 그러니까 그가 여우가 맞다면 미끼를 물 것이 자명했다.
“좋아. 근데 나 술 약하다? 니들이 나 챙겨야 해?”
“에이, 형 당연하죠. 우리 의리가 있잖아요. 신년계획 의리!” 박정수가 끼어들었다.
“좋아요 그럼 짠하죠.” 우리는 술잔을 부딪히고 한 잔 들이켰다. 그의 주량은 예상하기로는 1병이었다. 나는 주량이 4병이었으므로, 나는 고지를 선점한 셈이었다. 나는 초밥을 먹는 둥 마는 둥하면서 눈을 계속 수원이 형에게 두었다.
“왜 그렇게 계속 쳐다봐? 뭐 묻었어?” 그가 웃으며 말했다.
“좋아서 그래요, 좋아서” 내가 말했다. 좋은 일이 있기는 했다. 곧 여우가 철장에 갇힐 것이니 말이다. 우리는 술을 계속 들이켰다. 그가 나보다 두 살 형이었지만, 나에게는 권력이 있었다. 신년계획 스터디의 조장으로서, 이번 마무리 회식에서만은 내가 완장을 찬 셈이었다. 나는 계속 술자리의 템포를 높이며 그를 인사불성으로 만들었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아 형, 근데 나 형한테 서운해요.” 나는 일부러 취한 척을 하며 말했다.
“뭐가? 뭐가 서운한데? 말해.” 그의 발음이 뭉개졌다. 문장력도 낮아진 것 같았다. 이제 타이밍이 되었다. 철장의 문을 닫을 시간이 다가왔다.
“아니, 나 담배 피는 거 자꾸 누가 꼰지르는 거에요? 자꾸 들켜서 나 서운해요.” 나는 장난식으로 말했다. 미끼였다.
“에이 그걸 내가 어떻게 말해, 의리가 있지! 나도!” 그도 장난식으로 말했다.
“흐흐 민정이죠? 민정이 마주칠때마다 계속 형이 말하던데요?”
“민정이? 난 모른다.”
“민정이가 누구야? 우리 과야?” 박정수가 끼어들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정수야, 제발 나대지마’
“민정이 있어, 20학번. 아무튼 형 민정이 맞죠? 다 들켰어요~” 나는 계속 말투에 음정을 넣어가며 말했다. 그를 향해 먹이를 흔드는 것이었다.
“그래! 민정이 맞다!” 그가 결국 말했다.취기에 말투가 이상해져 있었다. 그렇지만 끝은 아니었다. 계속 추궁해야만 했다.
“민정이에다가 지민이 같은데, 지민이도 형한테 계속 말하잖아요”
“그래! 지민이도 맞다!” 그가 술을 몇 병 마셨더라, 대충 계산해보니 2병이라는 답이 나왔다. 주량의 두 배를 먹은 여우는 착한아이가 되는 법이었다. 기특하게도 솔직한 착한아이였다.
“근데, 걔네랑 형이랑 친해요?”
“친하지! 친해!” 그가 말했다. 계속 어투를 높여가며, 거의 눈이 반쯤 잠겨가며 말을 했다. 그렇지만 그는 졸아서는 안되었다. 나는 계속 그에게 말을 걸었다.
“나 그러면 여소 좀 해줘요, 형”
“누구? 지민이? 민정이?”
“일단 지민이요. 안되면 민정이.” 나는 일부러 선을 넘었다. 도발에 걸려들지는 지켜봐야만 했다. 나는 그에게 계속 눈을 두었다.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그 같은 타입에게, 방금의 말은 체크메이트였다.
“오오 나도! 나도 해줘요!” 정수가 나댔다.
“정수야 가만있어, 내가 먼저야. 근데 걔네랑 형이랑 그렇게 친해요?”
그는 침묵했다. 침묵의 이유는 알만했다. 그의 소중한 어장에서 물고기를 낚아채려 하다니, 얼마나 괘씸한 일이겠는가. 심지어 두 명이나 소개시켜 달라고 한 것은 그의 소유욕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제 응전이 시작될 때였다. 각오한 바였다.
“야, 근데 계속 왜 그렇게 친한지 캐묻냐? 친해, 친하다고” 그가 정색하였다. 발음이 갑자기 정직해졌다. 나는 그가 취했던 게 맞는지 순간 미심쩍었다.
“어... 죄송해요 형. 저는 그냥 확실하게 하고 싶어가지고.”
“뭘 확실하게 해?”
“그냥.... 안 친한데 소개해주기 좀 그렇잖아요.”
“하... 그래 친하다. 매일 연락해. 됐니? 분위기 이상하게 만들지 말자 우리.” 그가 정색했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이 그렇게 이성과 매일 연락하다니, 그리고 그걸 자백하고도 뭘 잘못했는지 모르다니. 이건 그의 실책이었다. 그렇지만 내 계획이 완벽했던 만큼, 그가 잡히지 않을 가능성은 없었다.
“아... 죄송해요. 진짜. 분위기 이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제가 취했나봐요.” 나는 취했다. 승리에 도취했다. 나는 그의 약점을 잡았다. 이제 이 약점을 어떻게 요리할지는 천천히 생각할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래도 바로 그의 여자친구에게 꼰지른다는 선택지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 분위기 좋게 해요. 우리 신년이라고 열심히 노력했는데 각자. 회식자리에서 이러면 안되잖아요” 박정수가 말했다. 나는 속으로 ‘나이스다 정수야’라고 생각했다. 박정수가 잔을 들었다. 화해의 의미로 ‘짠’을 외칠 때였다. 우리는 술잔을 부딪히고 다시 초밥을 먹기 시작하였다. 다시 분위기가 풀어지고 있었다. 김수원 형의 표정은 미묘했다. 그는 무언가 걸린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초밥을 먹었다. 나는 그저 그의 목에 초밥이 걸린 것이 아니기를 기도해줄 뿐이었다. 초밥 회식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고, 또 며칠이 지났다. 나는 이제 운동을 그만두었다. 어차피 나는 근육이 많은 편이었고, 유지만 하면 될 것이라는 것이 내 의견이었다. 담배는 다시 왕성하게 피우기 시작하였다. 어차피 같이 담배피는 여자를 만나는 것이 더 좋은 방향일 것이라는 내 머릿속 소크라테스 형의 의견이 있었다. 나는 일부러 서울특별빌라를 어슬렁거리며 야외에서 담배를 폈다. 그의 여자친구를 마주치기를 기대하며 사바나 초원의 하이에나처럼 서울특별빌라를 돌아다녔다.
그의 여자친구를 발견하기는 쉬웠다. 나는 어차피 날백수 새끼였고, 남는 것이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의 여자친구는 그의 집에 같이 사는 것이 분명했다. 편의점, 서울특별빌라 앞 작은 마당, 복도를 돌아다녔다. 나는 곧 그의 여자친구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수원이 형 보러 가시나봐요.” 내가 말했다. 엘리베이터는 5층에서 멈출 것이므로 나는 최대한 빨리 이야기해야 했다. 불리한 조건이었지만 나는 자신있었다.
“아 네, 맞아요.” 그녀는 단답으로 대답하였다.
“혹시 그거 아세요?”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했다. 시간이 촉박했다.
“네?”
“수원이 형이.... 사실..”
"잠깐만요."그녀가 내 말을 끊었다. 그리고 떨면서 이야기했다. 사색이 된 상태였다. 큰 용기를 내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죄송한데, 수원이 뒷담화는 하지 말아주세요. 철민 씨 수원이한테 듣기로 그렇게 평판이 좋은 사람은 아니시던데, 수원이 뒷담화를 왜 저한테 하세요? 그리고 수원이가 철민 씨랑 얘기하지말래요.”
나는 짜증이 났다. 여우같은 자식이 철장에 갇혀도 수를 찾아낸 것이다. 어차피 그의 여자친구는 무조건 그를 믿을 것이고, 실내 흡연으로 이미 평판이 깎여버린 나를 믿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망각하고 그녀에게 말을 건 것이다. 그리고 박수원 그 새끼의 대처 능력도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여우는 철장에 갇혀도 굴을 파고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는 미리 여자친구를 단속시켰다. 뻔한 수였다. 그렇지만 나는 그에게 체크메이트를 먹였다는 희열에 그가 이런 수를 둘 수도 있다는 것을 망각하였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그녀가 쌩 가버렸다. 나는 무엇을 위하여 신년계획을 세우고 금연을 하였던가. 나는 무엇을 위해 도파민 디톡스라는 것을 하려고 했던 것인가? 짜릿한 이 순간을 즐기기 위하여 스터디를 만든 것이었나. 스스로도 헷갈리기 시작하였다. 지난 두 달이 순식간에 무색해졌다. 다시금 나는 방황의 종점에 온 기분이 들었다. 엘리베이터에 혼자 남은 채였다.
그때였다. 그녀가 돌아왔다. 혹시 내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난 것일까? 나는 순간 희망에 찼다. 그렇지만 내가 들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그녀 또한 여우였던 것이다. 소심하지만, 할 말은 다 하는 못된 여우.
"아 그리고, 김치볶음밥. 다 제가 한거에요. 그냥 그렇다고요."
아주 엿같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