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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ELJAZZ May 19. 2024

일주일의 점심시간

응원을 주제로 냈던 공모전 탈락한 원고..

아직도 '안'과 내가 점심을 먹던 카페의 온도가 생생하다. 커피와 토마토수프가 맛있는 카페였다. 안이 나와 같이 점심을 먹기 위해 내가 다니던 직장으로 온 일주일간, 우리는 그곳에 두세 번 들렸다. 다시 생각해 보자면, 밖에 부는 찬바람과는 상관없이 온기가 머무르던 그곳에서, 나는 따뜻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주변을 보지 못하고 나만 추울 뿐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따뜻하지 못했었고, 이는 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안은 나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아마 내 표정이 어색하여 그랬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무표정했다. 무감하였고, 무기력하였다. 행복하지 않았고, 밝지 않았고, 심지어는 정상적인 상태도 아니었다. 만성이 되어버린 우울증이 격하게 나를 괴롭히던 그 시기에, 우리는 그 카페에 들렸었다.

안은 서대문 쪽에서 일했다. 오전에만 사무실에 출근하고, 이후 저녁에 재택근무를 하는 안의 스케줄 상 오후는 널널하였다. 그렇지만 나는 동대문 너머에서 일했다. 잠시 휴학을 하고 직장에 다니던 시기였다. 그는 내가 퇴사하기 일주일 전부터 나와 함께 점심을 먹으러 내 직장으로 오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오후에 남는 시간이 있어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안은 나를 위해 희생했다. 안은 나를 위해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수십 분을 써야만 했다. 무기력에 침잠하고 있는 나를 위해 재롱도 떨어주어야 했으며,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표정을 하는 나의 눈치를 보느라 진땀을 빼야만 했다. 그렇지만 안은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나를 위해 와 주었다. 나는 내기 어려운 용기였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하천가를 따라 걸었다. 안과 나는 내가 퇴사하고 나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얘기하고는 했다. 퇴사라는 개념이 내게 와닿지 않을 때였다. 퇴사는 저 멀리 있었다. 고작 일주일도 안남았었지만, 나는 깊은 무기력에 잠겨 시간을 상실하였다. 나는 미래를 꿈꾸지 못했고, 그저 숨 쉴 구멍을 찾아 헤맬 뿐이었다. 마치 숨을 참고 심해에 처박힌 사람처럼, 나는 고작 한 숨의 공기가 필요했다.

생각해 보면 안은 나의 마지막 버팀목이었다. 극한으로 몰려있다고 느끼던 그 시절에 안이 보여준 호의가 없었다면, 나는 다시 회복할 용기를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안이 나와 함께 했던 시간은 고작 점심시간이 아니라, 나에게 삶이 아직은 따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간이었다. 그 덕에 나는 무사히 퇴사할 수 있었다. 비록 도망치듯 나왔다는 게 부끄러웠지만, 나는 해야 할 일이 많았다.

퇴사한 후에 늘어난 시간을 활용하여 정신과를 자주 다니고, 친구들을 만났다. 해가 떠 있을 동안 사무실에 박혀 있는 일상이 바뀌고 나니, 점차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걱정시켰던 많은 이들이 내가 변하는 걸 지켜보았고, 많은 사람들이 응원해 주어 온전히 회복에 집중할 수 있었다.

몇 개월이 지나고 나서, 나는 완전히 회복했다. 한때는 입원 권유를 받을 만큼 심각했던 우울증이, 이제는 상담과 소량의 약만으로 대처할 수 있는 수준으로 완화되었다. 나는 다시 운동하러 헬스장에 가고, 햇빛을 쬐며 산책을 하고, 그리고 학교에 돌아와 펜을 쥐었다. 나는 강의를 듣고, 책을 읽고, 시간이 나면 글을 쓰며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생존에 급급하던 예전과는 다르게 나와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 모든 짐을 내가 지고 있던 것만 같았던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가끔 내 경험을 토대로 주변의 친구들에게 상담을 해주고, 너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응원해 줄 힘이 생겼다.

나는 결국 올라온 것이다.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고 크게 숨을 쉬었다. 높아 보이던 산을 올라와 내가 올라온 길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영영 이루지 못했을 단계이다. 그렇지만 나의 등 뒤에는 나를 밀어주던 사람이 있었다. 수면 위로 올라가도록 나를 위로 밀어주던 사람, 산을 오르도록 내 가방을 들어준 사람, 내 소중한 친구 안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회복하였다. 고마울 따름이다. 그가 없었더라면,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응원은 힘이 있다. 안이 나에게 베푼 호의 덕분에 나는 그 힘을 절실히 깨달았다. 예전의 나는 응원이 힘이 없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전해준다고, 누군가를 위해 위로해 준다고 해서 현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만한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현실은 각박한 법이다. 내가 마주했던 현실도 높은 벽이었다. 그 벽을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안의 도움 덕분이었다. 같이 밥을 먹어줬을 뿐만이 아니었고, 힘내라고 말 한마디 해줬을 뿐만도 아니었다. 진심으로 호혜를 베푼 안 덕분에 나는 높은 벽을 같이 올라갈 수 있었다. 담쟁이처럼 서서히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안의 현실도 힘들었을 것이다. 안 또한 다른 이에게 호의를 베풀 기력이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은 나를 위해 시간을 썼고, 감정을 소모하였다. 그의 희생 덕분에 나는 다시 뿌리를 내릴 수 있었고,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연대하여 같이 올라갈 수 있었다.

예전에는 인생은 혼자 사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누가 주변에 있든 선택은 혼자 해야 하는 것이고, 시련은 혼자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이 내 생각을 바꿔놓았다. 내 현실에 호혜의 감각이 덧씌워졌다. 타인을 위해 응원해 주고, 따뜻하게 말 한마디 해주고, 시간을 보내주는 서로에 대한 호혜가, 우리의 현실이 메마르지 않도록 지탱해 주고 있었다. 안은 이를 이미 알았다. 안은 이를 알고 있었기에 나를 토마토수프와 커피가 맛있던 그 카페로 데려갔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그때의 점심시간을 떠올릴 때 생생히 느껴지는 따뜻한 감각이다.


교보문고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에 냈던 글. 떨어졌습니다 ㅜㅜ 주제는 '응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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