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를 바친 컨설팅 이야기
운동과 처음 만난 것은 2016년 여름이었다. 나의 기나긴 대학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 컨설팅 회사에서의 첫 인턴 생활이 끝난 직후였다. 1월부터 6월까지, 6개월 간의 인턴 생활을 통해 내가 얻은 교훈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 나는 컨설팅이 꽤 잘 맞는구나. 두 번째, 이 체력으로 컨설턴트가 되었다가는 객사하겠구나. 오죽하면 인턴 기간을 끝마치며 팀원들과 가진 마지막 회식에서 대표님이 ‘인턴 기간 동안 제일 힘들었던 점이 뭐냐’고 물었을 때, ‘출퇴근 하는 거요’라고 대답했을 정도니까.
지금은 제도적으로 대부분의 회사에서 인턴의 야근을 막고 있지만, 그 때만 해도 인턴이란 정직원과 함께 야근하며 ‘이 회사에서 반드시 일하고 싶습니다!’하는 열정을 보여줘야 하는 위치였다. (내가 했던 인턴이 정직원 전환형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그래서 나는 졸업하기도 전에 매일 자정까지 일하는 인턴 생활을 겪으며 야근이 일상인 삶을 알아버린 거다. 근데 그게 결코 쉽지가 않았다.
학점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나쁜 편이었지만) 학교 생활도 나름 열심히 하고, 시험 기간엔 가끔 밤새 공부하기도 했는데, 회사 생활은 학교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주 5일 하는 출퇴근과 매일 12시까지 이어지는 야근에 내 체력이 버티지 못했다. 말 그대로 출퇴근이 힘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물 먹은 솜처럼 몸과 머리가 무거웠고, 밤에 집에 들어가면 화장도 못 지우고 잠 드는 날들이 이어졌다. 매일 같이 만나던 친구들과도, 나의 오랜 취미 중 하나였던 독서와도 멀어졌다. 회사 일 말고는 무언가를 할 물리적인 시간이 나지 않았다.
그 때까지 나는 운동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매년 있었던 체력장 마다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오래달리기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체육 시간마다 빠져나와 자습실에서 수능 공부를 했다. 그 땐 그게 용인되던 시절이었다. 대학생 때는 춤 동아리를 했었는데 남들만큼 열심히 연습하려고 힘든 걸 꾹 참고 연습하다가 호흡 곤란이 온 적도 있다. 한 마디로 그냥 저질 체력이었던 거다.
인턴이 끝나고 운동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선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사고회로의 결과였다.
이 일이 내게 잘 맞는다. 나는 앞으로도 이 일을 하고 싶다. 그런데 이 일을 하기에 내 체력은 너무 약하다. 그러면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체력을 길러야겠다.
인턴 생활을 통해 모아둔 월급을 들고 집 앞 헬스장에 찾아갔다. 처음 상담 받던 날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 다이어트 효과가 어떻고, 몸 선이 어떻고, 열심히 설명하는 트레이너 선생님 앞에서 나는 단호하게 얘기했다.
당시 트레이너 선생님의 평가를 빌리자면 내 몸 상태는 처참했다. 스쿼트는 3번만 반복해도 허벅지에 쥐가 나는 것 같아서 한 세트에 10개를 채우는 게 너무 큰 미션이였고, 1kg짜리 핑크덤벨은 들 때마다 10kg짜리인데 0이 빠져 있는 건 아닌지 확인했다. 총 20회의 1:1 수업을 받는 동안 웨이트 기구를 단 한 번도 만져보지 못했지만 항상 집에 돌아갈 때면 달달 떨리는 팔다리를 부여잡아야 했다.
운동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평소 먹던 양의 두 배로 밥을 퍼서 먹고 있으면 종종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럴 때마다 처음의 결심을 떠올렸다. 이렇게 힘들게 운동을 해서 길러진 체력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무사히’ 할 수 있게 된다면 정말 기쁠 것 같았다. 일하고 싶어서 체력을 기를 만큼 그 일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20회의 PT 수업이 끝날 때쯤 나는 수업이 없어도 혼자 헬스장에 출석 도장을 찍는 날이 늘었고, 유튜브 알고리즘은 운동 영상으로 가득 찼다. 그 무렵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가게 되었는데, 하필 거기서 또 운동에 진심인 룸메이트를 만나버렸다. 아침엔 러닝을 하고 점심엔 헬스장에 가고 저녁엔 수영장에 가는 룸메이트와 함께 다니다 보니 어느새 나도 튼튼한 다리와 듬직한 등빨을 가진 ‘운동에 진심인 애’가 되어 있었다.
학교에 다시 복학해 졸업반을 보내며 밥 먹듯이 밤샘 작업을 하는 학회 활동을 하면서 그 동안 운동으로 다져둔 체력이 빛을 발했다. 새벽까지 작업하고 술까지 마시고 들어가 다음 날 아침에 다시 나와도 예전처럼 피곤하지 않았다. 더 이상 과거의 저질 체력 강단비는 없었다. 그걸 느끼고 나니 운동이 더 재밌어졌다. 인터넷에서나 보던 ‘운동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진실임을 체득한 것이다. 그렇게 운동은 일상이 되었다.
취업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졸업 직전 인턴 생활을 한 곳에서 내가 들은 칭찬 중 가장 기분 좋았던 칭찬은 ‘너 진짜 맷집이 좋구나’였다. ‘아무리 늦게까지 야근을 해도 너는 참 멀쩡하구나’의 줄임말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운동을 해서 체력을 기르고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나의 목표를 훌륭하게 달성한 것이다.
처음 운동을 시작한지 이제 7년이 지났고, 나는 여전히 운동을 하고 있다. 가끔 조언을 구해오는 여자 후배들을 만나면 나는 꼭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운동을 시작하라’고 전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은 체력에서 나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20대를 바친 컨설팅 이야기
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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