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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걍단비 Jan 29. 2024

03. 출근은 계속되어야 한다 #01~02

20대를 바친 컨설팅 이야기

이것은 불굴의 출근 기록이다.



#1


“단비야. 회사 안 가도 되니?”

강렬한 아침 햇살에 정신이 반쯤 깨어있었는데, 엄마의 걱정 어린 한 마디가 들려오자마자 눈이 번쩍 떠졌다. 머리맡에 놓인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는 것은 자동반사에 가까웠다. 8시 40분. 출근 시간은 9시. 딱 20분 남았다. 끔찍한 두통을 느낀 건 그다음이었다.


아, 맞다. 나 어제 회식했지.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 기억할 겨를도 없었다. 울렁거리는 속과 깨질 것 같은 머리가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극단의 성비를 가진 직장 탓에 회식 자리에서 나는 항상 유일한 여자였고, 나는 지고 싶지 않다는 어리석은 자존심으로 한계까지 달리며 정신줄을 부여잡고 있다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기절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출근 못 할 정도로 마신 적은 없었는데, 어제는 조금 달랐다. 나의 입사 후 첫 보고, 즉 보고 데뷔전을 축하하는 회식 자리였기 때문이다. 보통 고객사 보고는 팀장이 담당하지만, 때에 따라 일부분을 시니어 컨설턴트가 맡기도 하는데, 어제가 바로 시니어 컨설턴트로서 내가 처음으로 보고를 진행한 날이었다.


그래도 출근까지 고작 20분 남다니, 심각하다. 집에서 회사까지 택시로 10분 거리라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10분 안에 대충 머리에 물만 적시고, 세수만 하고 나가자. 양치는 회사 가서 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화장실로 들어가는 순간, 지구가 한 바퀴 돌았다. 아니, 난 가만히 있는데 화장실 바닥이 내 얼굴로 돌진하더라니까. - 그럴 리가 없다. 내가 고꾸라진 거다.


이 숙취를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여느 직장인이라면 반차나 연차를 고민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회사는 그런 아량을 베풀지 않았다. 지금 회사에 못 가겠다고 연락을 하면 의심할 여지 없이 술병인 거다. 그럴 수는 없다. 이제까지 쌓아온 내 이미지. 일도 잘하고 술도 잘 마시는 사회적 나를 잃을 수는 없었다.


거짓말 안 하고 딱 죽을 것 같았지만 정신력으로 출근 준비를 했다. 당연히 10분보다 더 걸렸다. 집을 나서는 데 성공했지만 난관이 남아있었다. 엘리베이터, 그리고 택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짧은 시간 동안 멀미가 나서 내리자마자 아파트 1층에 몇 분을 앉아있었다, 그마저도 낭비할 시간이 없어 다시 몸을 일으켜 택시를 타러 갔다. 택시를 겨우 잡아타고 가는데, 덜컹거리는 차 때문인지 이대로라면 택시 기사님을 곤란하게 할 것 같아서 회사를 800m 앞에 남겨두고 내려 길가에 주저앉았다.


결과적으로 10분 거리인 출근길은 총 30분이 걸렸지만 회사까지 가는 동안 다행히 그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는 않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자랑스럽다.


사무실에 올라가서 가방만 두고 화장실 가서 속을 게워내야겠다. 팀장님이 혼내면 어떡하지? 죄송하다고 해야지, 라고 아픈 머리로 수만 가지의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21층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사무실에 도착해서 우리 팀 회의실 문을 열었을 때, 놀랍게도 아무도 없었다. 다른 팀에서 일하고 있는 동기가 내 꼴을 보고 킬킬거리며 지나갔다.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아 팀 단톡방을 열었다.


팀장님 [오늘 달렸으니 내일 오후 출근합시다. 다들 조심해서 들어가요~] 01:40am


아, 또 나만 못 봤지. 내가 이렇게 힘든데도 열심히 출근한 걸 회사의 사람들이 알아줘야 하는데.



#2


극한의 직장 생활을 중 나를 제일 괴롭힌 것 중은 야근도, 사람도 아닌 ‘허리'였다. 중학교 때부터 척추측만증을 앓고 있었는데, 그것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고등학교 때부터 허리 아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병원에서는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플 수밖에 없다며 좌식 생활을 지양하라고 했지만,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이 좌식 생활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을 한단 말인가. 하루 14시간, 15시간씩 앉아서 공부한 덕분에 고등학교 시절 이후 나의 요통은 만성이 되었다.


직장 생활이 시작된 이후, 요통은 더 심해졌다. 당연한 결과였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앉아 있는 게 고3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경각심을 느낀 것은 갓 2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다. 허리가 너무 아팠다. 너무 아픈데 평소와는 좀 다르게 아팠다. 왼쪽 다리가 찌릿찌릿하게 저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는 그냥 척추가 더 틀어졌나… 안일하게 생각했다. (사실 그것도 안일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찌릿찌릿함이 도를 넘어서 걸을 때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의 느낌이 다른 지경에 이르렀다. 일을 하면서도 몸을 가만히 못 놔두고 자꾸만 자세를 고쳐 앉는 나를 보고 팀장님이 왜 그러냐 물었을 때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제가 허리가 원래 좀 안 좋은데, 요즘 들어 왼쪽 다리가 좀 많이 저리네요.”

“너 그거 허리디스크 아냐?”


그때 나의 병명을 정확히 알았다. 허리디스크. 이게 허리디스크가 맞는지 확인하러 따로 병원에 갈 필요도 없었다. 그걸 내게 말해준 팀장님도, 옆 방에 계신 파트너님도, 다른 방에 있는 선배도, 이 업계 사람 셋 중 하나는 허리디스크를 겪고 있었으니까. 그래서일까? 나는 허리디스크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문제는 허리디스크라는 걸 인지하고 일주일 후에 일어났다. 다 같이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일어나는데 왼쪽 다리에 감각이 없었다. 안 그래도 이미 하루 종일 다리가 저렸었다. 당황했지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저… 허리가 좀 많이 아파서 근처 정형외과 좀 다녀오겠습니다.”


그날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어간 병원에서의 기억이 생생하다. 의사 선생님의 진료를 받고, 허리디스크가 확실해지고, 일시적으로 다리가 마비된 것을 풀어주기 위한 척추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했다.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있는데 들어온 의사 선생님이 물었다.


“척추 주사 맞아보셨어요?”

“아니요. 왜요?”

“아, 좀 많이 아파요. 그래도 맞고 나면 훨씬 괜찮아지실 거예요.”


그런 말이 있다. 병원에서 의사나 간호사가 하나도 안 아프다고 하면 좀 따끔한 수준이고, 조금 아프다고 말하면 진짜 많이 아프다는 거. 그날 나는 병원 침대에 누워 척추 주사를 맞으면서 정말 소리 내서 엉엉 울었다. 주사를 놓는 의사 선생님은 내가 아파서 그런 줄 알고 다 끝나 간다며 계속 달랬다. 실제로도 정말 많이 아팠지만, 그것보다 서러움이 더 컸다.


스물여덟 살 밖에 안 됐는데, 일하다가 다리가 안 움직여서 병원에 와서 이렇게나 비싸고 아픈 주사를 맞고 있어야 한다니. 반차, 연차를 내지도 못한 채로 야근 전 저녁 시간에.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받으면서도 자꾸만 눈물이 나와서 병원 수납을 할 때쯤에는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화장실에서 찬물로 세수하고는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새벽까지 끝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고, 다행히 병원에서 한 시간을 쓰고 나니 다리는 여전히 저렸지만 제법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으므로.






20대를 바친 컨설팅 이야기

단비

hidamb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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