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 다시 읽기> 황인숙 ‘강’
웬 심장사상충일까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 화자는 자신에게 심경 토로를 하는 화자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다. 4-6행에서는 ‘심장의 벌레’, ‘옷장의 나방’, ’찬장의 거미줄‘, ’터지는 복장‘ 등 당신이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들로 나에게 어떠한 영향도 미치치 말 것을 요구한다. ··· 이 시는 나와 상대의 괴로움은 각자가 책임져야 할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고독한 존재임을 주제화한다. ···
- 권영민 ‘한국현대문학대사전’ -
황인숙 시인의 대표 명작입니다.
이 시에서, ‘당신’이 ‘나’에게 쏟아 붓는 말들의 의미는 비교적 명확합니다. ‘당신’의 고통과 삶의 어려움이라는 해석에 이의를 가질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4-6행 ‘심장의 벌레’, ‘옷장의 나방’, ‘찬장의 거미줄‘의 경우는, 위의 해설처럼 ’부정적인 감정들‘이 아니라 구체적 사물의 나열입니다. 게다가 동격으로 나열된 세 사물 중 ’심장‘은 ’옷장, 찬장‘과는 다른 성격의 시어입니다. 그 ’심장‘에 ’벌레‘라면, 심장사상충일 리는 없을 테니, ’옷장의 나방‘이나 ’찬장의 거미줄‘과 대등한 위상의 실체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해설에도 이 ’심장의 벌레‘에 대해서는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 본 것이 ’신장(신발장[신짱])의 벌레‘입니다. ’신장‘이 시집을 출간할 때, ’심장‘으로 오식(誤植)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그렇게 보면, 이 시의 제재는 부부싸움입니다. 자기 집의 '옷장의 나방'이나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침'과 '피'를 토하며 '나'에게 말할 만한 사람은 가족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밖에서 힘든 일을 겪고 돌아온 남편이, 아내에게 퍼 붓습니다.
내가 오늘 밖에서 얼마나 힘들고 괴롭고 미칠 듯한 일을 겪었는지 아는가. 그런데 당신은 집에서 무얼 했는지, 신발장에서는 벌레가 기어다니고, 옷장에는 나방이 있고, 찬장에는 거미줄이 끼었으니, 도대체 살림을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복장이 터질 지경이다. 나는 하는 일마다 어긋나서 애간장은 타고 머리는 뽀개질 것 같은데도, 먹고 살기 위해 치사하고 우스운 꼴을 무릅쓰고 애쓰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아내에게도 그의 삶은 외롭고 어렵고 고통스럽고 치사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고독과 고통과 번민과 갈등, 치욕 가운데서 살아갑니다. 남의 일방적인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을 할 수 있는 여유나 아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말합니다. 당신의 고통과 고독은 당신이 ‘강’에 가서 하소연하라고 말입니다.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아내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고통과 고독은 삶의 근원적 문제이기 때문에 자신이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그 ‘강’에서 ‘눈도 마주치지 말자.’고 말합니다. 감정의 골도 보이고, 홀로 본연의 고독과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는 인생의 처절함이 느껴집니다.
‘심장’을 ‘신장’으로 이해하고, 상황을 부부싸움으로 해석했다고 해서, 작품의 상징성과 함축성이 훼손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가족, 회사동료, 친구, 연인 등 모든 인간 관계의 본질을 주제로 다룬다 하더라도, 그 제재는 구체적인 현실이라야 공감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문학의 형상화(形象化)라고 합니다.
* 나는 ‘심장’이 ‘신장’의 오식(誤植)이라고 확신하고 있지만, 원작이 ‘심장’이라면 황인숙 시인에게 대단히 죄송한 일입니다. 실제로 그렇다면 그저 필자의 ‘상상놀이’로 가볍게 넘겨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