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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티나무 Feb 19. 2024

<우리 시 다시 읽기> 박재삼, '수정가'

수정빛 임자? 수정빛 암자?

집을 치면, 정화수 잔잔한 위에 아침마다 새로 생기는 물방울의 신선한 우물집이었을레. 또한 윤이 나는 마루의, 그 끝에 평상의 갈앉은 뜨락의, 물 냄새 창창한 그런 집이었을레. 서방님은 바람 같단들 어느 때고 바람은 어려올 따름, 그 옆에 순순한 스러지는 물방울의 찬란한 춘향이 마음이 아니었을레.


하루에 몇 번쯤 푸른 산 언덕들을 눈 아래 보았을까나. 그러면 그때마다 일렁여 오는 푸른 그리움에 어울려, 흐느껴 물살 짓는 어깨가 얼마쯤 하였을까나. 진실로, 우리가 받들 산신령은 그 어디 있을까마는, 산과 언덕들의 만 리 같은 물살을 굽어보는, 춘향은 바람에 어울린 수정빛 임자가 아니었을까나.



··· 1연과 2연에 나타난 춘향과 이도령 간의 관계를 들여다 보자. 1연에서 춘향은 소극적 인물로 등장한다. ‘집’처럼 한 곳에 고정된 채 바람 앞에 순순히 스러지는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2연에서는 그리움을 해소하려고 하루에도 몇 번씩 푸른 산에 올라보는 적극성을 지닌다. 이러한 간절한 바람으로 춘향은 물이 결정을 이룬 수정(水晶)처럼 아름다운 빛의 임자가 된다. 그 아름다움은 한(恨)을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던 박재삼 시인만이 획득할 수 있는 보물이다. ···

- 네이버 블로그 ‘김권섭의 책책책' -


한 화자가 자기 감정을 절제한 채, 애틋했던 옛날 춘향의 사랑을 ‘집’과 ‘물’에 비유해 보는 내용으로 전개되는 작품입니다. 마치 앞에 사람을 둔 채 혼잣말을 하는 듯한 예스럽고 구수한 말투이지만, 그 비유에 담긴 춘향의 마음은 더 없이 순수하고 애상적입니다. 

사랑의 한(恨)이라는 정서가 참 아름다운 비유와 어조로 표현된 작품입니다.


1연에서 춘향은 집에, 춘향의 마음과 사랑은 물에 비유됩니다(집을 치며, 집으로 치자면, 집으로 비유하자면). 소원을 빌기 위해 떠 놓는 깨끗한 정화수를 담고 있는 우물, 우물을 지키기 위해 그 위를 가리고 있는 우물집이 춘향이고, 새벽 정화수는 지극히 순수한 춘향의 마음이고 사랑일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 윤이 나는 마루와 평상, 그 주변에 차분히 뜨락이 깔린 한옥의 격조를 가진 춘향에게서는, 늘 정화수의 맑고 깨끗한 물냄새가 짙게 배어 나왔을 것이라도 합니다.

사람들은 서방님은 바람처럼 떠도는 사람이라 믿지 말라지만(서방님은 바람 같단들), 춘향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서방님은 늘 바람처럼 슬그머니 왔다가는(어려올 따름, 어리어 올 따름) 그렇게 떠나 버린다는 것을. 그래도 서방님이 옆에 머무는 그때가 되면, 그 동안의 응어리진 그리움과 서러움이 모두 사라져 버리는 춘향의 마음은, 맑고 아름다운 정화수의 물방울과 같을 것이라고 합니다.


2연은 서방님을 향한 춘향의 사무치는 그리움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높은 고개 위에 산신각과 같은 암자가 자리잡고 있다면, 산신령이 머무는 집은 아닐 것이랍니다(우리가 받들 산신령은 그 어디 있을까마는). 그 집은 바람처럼 떠도는 임을 그리워하면서(바람에 어울린), 언젠가는 다시 어려올(찾아 올) 임을 기다리는, 맑고 곱고 굳은 춘향의 마음처럼 지어진 수정빛의 암자일 것이라고 합니다.

수정빛 암자인 춘향은, 늘 푸른 산 언덕들을 내려다 봅니다. 산 줄기들의 흐름은 임을 향한 끝 없는 그리움의 물결처럼 출렁이면서 만리를 가고, 그리움에 흐느끼는 춘향의 어깨도 그 물살처럼 그렇게 출렁였을 것이랍니다.


기존 해설에서 걸리는 몇 가지를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1연에서 춘향에 비유되는 집은 ‘우물집’ 하나가 아니라, ‘우물집’과 ‘그런 집’ 둘이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우물을 가리기 위한 ‘우물집’에 ‘마루, 평상, 뜨락’이 있을 리가 없으니, ‘우물집’과 ‘그런 집’은 서로 다른 집입니다.

둘째, ‘바람은 어려올 따름’의 ‘어려올’은 일반적인 해설처럼 ‘이도령은 어려운 사람’이라는 뜻이 아닌 듯합니다. 어렵기 때문에 춘향의 마음이 ‘그 옆에 순순’하게 ‘스러진다’는 말은 작품의 흐름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 시구는 ‘바람은 어리어 올 따름’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사전에는 ‘어리다’에 ‘어떤 현상, 기운, 추억 따위가 배어 있거나 은근히 드러나다‘, ‘빛이나 그림자, 모습 따위가 희미하게 비치다’는 뜻이 있다고 하는데, 이 두 범주 사이에 있는 어떤 의미로 쓰이고 있는 말이 아닌가 합니다.

셋째, ‘수정빛 임자’를 ‘수정빛의 주인’이라는 해설도 이상합니다. 그래서 ‘수정빛 암자(庵子)’의 오식(誤植)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앞 연에서 춘향이 집으로 비유되어 있는데, ‘산신령’을 모신다는 산신각(암자)도 일종의 집일 뿐더러 그 산신각이 대부분 고개마루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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