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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룡 Mar 29. 2024

물을 마실 수 없다니...

뇌출혈 연하장애 재활기

지난 3주가 넘는 시간 동안 글을 올리지 않았다. 현시점, 필자는 재활병원을 퇴원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글을 올리지 않은 시간 동안 오랜만에 돌아온 집에서 변한 몸으로 원래 해오던 일상적인 것들에 다시 적응해야 했다. 정말 아주 사소한 것들을 까먹었더랬다. 이를테면 우리 집만의 마른 수건 접는 방법이 기억나지 않아 꽤 오래 수건을 손으로 쪼물딱거렸다. 어쨌든 수건을 만지작거리다 보니 기억이 났다. 뭐 별거 아니긴 하지만 막상 기억나지 않는 상황에 닥치면 생각보다 많이 답답하고 막막하다.


글을 쓰지 않았던 핑계는 이 정도로 하고 오늘은 대망의 연하장애에 관해 써보려고 한다. 사실 꽤 오래 글을 쓰지 못한 건 팔다리에 대해 썼던 지난 두 편의 글보다 이번이 가장 쓰기 어렵기 때문이다. 에피소드도 많고 어쩌면 제일 힘들기도 했다. 연하장애는 다른 말로 삼킴 장애라고 한다. 한마디로 삼키는 행위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독자들은 삼키는 게 대체 어떻게 어려워지는 건지 궁금해질 수도 있으니 간단히 설명해 보자면 물을 마실 때에 일반적으로 목에서 꿀꺽꿀꺽하고 넘기지 않는가? 이 "꿀꺽꿀꺽" 하고 움직이는 게 아주 어렵고 그래서 매우 느려진다. 이렇게 되면 점도가 높은 음식만을 간신히 삼킬 수 있고 만약 물같이 점도가 낮은 걸 먹다가 잘못하면 기도로 액체가 넘어가게 되면서 폐렴에 위험이 생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외관상 침 삼키는 것만 봐도 연하장애가 있는지 없는지, 얼마나 심한지 대충 판가름할 수 있다.


내가 내게 연하장애가 생겼구나 하고 느낀 건 중환자실에서부터 시작했다. 며칠간의 중환자실 생활을 마치고 집중치료실로 이동하려 할 때 아주 간단한 삼킴 테스트를 했다. 카스텔라, 요거트, 물 이 세 가지를 일회용 요거트 숟가락으로 한입씩 먹어보게 하는데 이때 나는 카스텔라와 요거트는 성공했으나 물을 실패했다. 앞에 두 가지는 꿀꺽 삼키는 게 가능했는데 물은 그냥 후룸라이드를 타고 내려가는 것처럼 삼켜지는 게 없이 식도로 직행해 버렸으니 그 결과 사레가 들렸다. 결과적으로 이 때문에 나는 콧줄을 단 채로 집중치료실로 이동하게 된다.  


집중치료실은 보호자와 함께 있을 수 있어 엄마와 재잘재잘 수다를 떨 수 있으니 비교적 덜 우울하다. 중환자실에서도 콧줄이 껴져 있다는 걸 인지하긴 했는데 제대로 느낀 건 집중치료실에서였다. 수액과 비슷하게 투명한 팩에 담긴 (아마도) 분홍색의 걸쭉한 액체가 나에겐 식사였다. 식판에 담긴 식사가 시간 맞춰 전달되는 거 마냥 나에겐 팩으로 전달됐다. 콧줄로 연결한 후 수액 맞는 것과 비슷하게 코로 팩에 담긴 액체가 넘어간다. 나는 의식이 너무도 또렷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 액체가 넘어가는 것을 너무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서 기분이 더욱 안 좋았다. 하... 어쩌면 입원 중에 내가 겪었던 수많은 일중에 가장 인상적인 기억이다. 콧줄 식사 중에 한 번씩 꿀꺽하고 침을 삼킬 때면 그 분홍색 액체의 향이 느껴지는데... 정말이지 으우엑이다.


콧줄을 빼야지만이 일반병실로 이동할 수 있었는데 그 과정도 얼마나 지난했는지... 아직도 떠올릴 때마다 너무나 생생하고 분명하다. 당시 식사뿐이 아니라 먹어야 하는 약들도 가루로 분쇄해 콧줄로 넘겼는데 이때는 당연히 약의 맛이 하나도 안 느껴진다. 내가 콧줄을 빼기로 한 날에 집중치료실 의료진이 실수로 아침약을 알약이 아니라 가루약으로 신청을 한 것이다. 나는 콧줄 밥에 연결되는 호스를 제거한 뒤 진짜 콧속에 들어가 있는 콧줄을 제거할 기대를 잔뜩 하고 기다렸는데 간호사분이 두 가지 선택지를 주셨다. 하나, 오늘 아침약은 무조건 가루약으로 먹어야만 하니 이걸 연하제를 탄 물에 섞어서 직접 먹거나. 둘, 오늘은 다시 콧줄로 먹고 다른 날 콧줄을 제거하는 것. 이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는데 그때 나는 콧줄에 너무 괴로웠던 터라 첫 번째를 선택했다.

이 선택은 내가 병원에서 제일 괴로웠던 기억 세 가지를 꼽으라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끔찍했다. 온갖 약을 분쇄한 가루를 연하제를 섞어 푸딩처럼 점도가 높아진 물에 섞어 숟가락으로 퍼먹는데 정말 악으로 깡으로 눈물과 구역질을 참고 한 컵을 비웠다. 이런 독기로 공부했으면 정말 서울대를 갔지 싶다. 어쨌든 성공하고 시원하게 콧줄을 빼고 일반병실로 이동했다.


일반병실에서는 연하식을 먹게 되는데 기본적으로 죽과 아주 작은 크기로 잘린 저자극 반찬, 연하제를 섞은 국물하나 가 나온다. 연하식에도 단계가 있는데 내가 있던 병원은 step1,2,3,으로 이루어졌던 것 같다. 이렇게 말고 또 작은 단위로 세세하게 나뉘는데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어쨌든 난 제일 낮은 것부터 시작했고 일주일 남짓 연하식을 먹었는데 처음엔 아주 묽은 죽이 나오다가 단계가 올라갈수록 죽이 점점 되직해진다.(점점 미세하게 되직하게 만든 죽이 나오는 과정이 신기했다.) 아! 그리고 입으로 하는 식사를 시작한 초기엔 침이 잘 나오지 않고 얼굴 근육도 많이 돌아오지 않아서 입안에서 씹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연하식을 먹을 초기엔 병원에서 제공하는 식사, 물 외엔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괴로움이 극에 달했으나 차차 과일부터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숟가락도 잘 안 쥐어지는 왼손으로 죽을 뜨고, 쳐진 왼쪽 입꼬리로 죽이 다 새어나가고, 이런 과정 끝에 난 거의 밥과 비슷할 정도의 되직한 죽을 먹을 수 있었으나... 최종보스는 물. 물. 물...!!! 생수를 마시는 것이었다. 수액을 맞더라도 입으로 섭취하는 물이 중요하다고 하여 연하제를 섞은 물도 열심히 떠먹었다. 연하제를 섞은 물이 대체 어떠냐고..? 쁘띠첼! 딱 쁘띠첼보다 약간 묽은 정도이다. 연하제를 섞는 비율에도 연하식처럼 단계가 있는데 맨 처음 단계가 저 정도이다.  


연하제를 끊으려면 생수에 약을 먹을 수 있어야 했는데 정말... 너무 끔찍하게 힘들었다. 연하제를 섞은 물에는 약을 넣고 떠먹으면 간단한데 생수에는 알약을 삼키려다가 약이 목에 걸리기도 했다. 나는 원래 약을 몇 개씩도 한 번에 삼켰었는데 처음엔 어이가 없었다. 초반엔 일단 빨대컵으로 물만 조금씩 마셔보고 약은 연하제와 함께 먹었다. 사실 물 마시는 것에 완전히 적응하는 데까지 거의 한 달 반이 걸렸다. 재활병원에 있을 때에도 아침에 일어나서 빨대컵으로 무심코 물을 마셨다가 사레들린 적이 더러 있었다. 연하제를 끊는 것 다음으로는 빨대컵을 끊는 것이 또 한 번의 고비였는데 이건 재활병원에서 연하치료를 한 번씩 받다 보니 퇴원 후 금방 바꿀 수 있었다.


수술한 지 세 달 정도 된 지금. 수술 전에 쓰던 텀블러로 물을 마시며 전보다 느리지만 천천히 어떤 음식이든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쌈이나 비빔밥 같은 건 아직 주의해서 먹고 끈적한 젤리 같은 건 잘 먹지 않는다.) 지금도 아주 살짝 입꼬리로 침이 새어 나올 때가 가끔 있는데 이 정도면 양반이다. 그러나 아직 몸이 많이 피로하거나 좀 과식할 경우에 삼키는 게 느려지고 힘들어지기도 한다. 콧줄 트라우마가 심해서 일반병실에서부터 퇴원 한지금까지 먹고 마시는 데에 매우 주의하고 있다. 연하장애 때문에 물을 마시지 못할 당시에 너무 괴로울 땐 벌컥벌컥 물 한잔을 비우는 상상을 하곤 했다. 이젠 정말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졌으나, 수술 후 집에 돌아와 항상 마시던 물컵에 물을 받아 처음으로 벌컥벌컥 마신 기억은 오래도록 잊기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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