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금인형 Feb 02. 2024

사는 것이 초콜릿보다 달콤하다는 것

하루 한 줄, 하루 한 대사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 속 명대사

"사는 것이 초콜릿보다 달콤하다는 것"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사는 것이 초콜릿보다 달콤하다는 것."


정말 사는 건 달콤한 걸까?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황정민은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라고 이야기하는데. 누구 말이 맞는 걸까? 도대체 달콤하게 산다는 건 어떻게 사는 걸까? 


윌리 웡카가 만든 초콜릿 공장은 달콤함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곳에 방문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주인인 웡카조차 씁쓸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능력이 있으면 있는 데로, 돈이 많은 데로, 그리고 가난하면 가난한 데로 달콤한 인생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다. 물론 결말에는 '그들은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마무리되지만. 그건 뭐 가족 영화가 원래 그런 거고. 


그나저나 가난한 사람이 착하다는 설정은 이제 지겹다. 하도 이런 설정이 많다 보니 '가난한 사람들이 착한 것'이 아니라 '착한 사람이 가난한 것'처럼 보인다. 많은 작품에서 가난한 착한 영혼은 자신의 힘으로 가난에서 벗어나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성경에 "심령(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나와있다지만, 마음이 가난한 것이지 실제로 재력이 가난한 사람이 아니지 않나.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라고 하신 말씀도 따져보면 단순히 돈이 많은 사람을 칭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우상으로 여기는 사람을 이야기한다고 배웠다.


갑자기 가난한 사람이 착하고 착하지 않고를 논하는 이야기로 흘렀지만, 이 시리즈가 원래 생각의 흐름대로 쓰는 글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원래 주제로 돌아가보자. 

 

사는 것이 달콤하다는 건 뭘까?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이 먹는 초콜릿이 훨씬 달콤하지 않을까? 매일 초콜릿을 먹고사는 사람보다 1년에 한 번, 그것도 친구가 먹고 있는 것을 한 조각 얻어먹는 것이 훨씬 달콤할 것 같다.  그리고 그 달콤함이 뇌리에 깊숙이 박혀 거의 평생 동안 기억될지 모른다. 그러다 돈을 벌기 시작하고 매일 초콜릿을 먹을 수 있는 어른이 되면 그 달콤함도 익숙함이 되는 것 같다.


인생을 정말 달콤하게 살려면 가난이 아니라도 뭔가 시련을 먼저 맛봐야 하는 것 같다. 수박을 먹을 때 소금을 뿌리면 더 단 것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인간은 짠맛이 단맛에 비해 뇌에 전달되는 효과가 빠르기 때문에 짠맛 다음에 오는 단맛이 더욱 달게 느껴진다. 시련도 행복보다 더 빨리,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래서 시련 후 맞이하는 행복은 어느 때보다 달콤하게 느껴지는 거다. 


황정민은 시련 뒤에 오는 행복을 맛보지 못했을 뿐이고, 찰리는 고통 뒤에 행복을 찾았기 때문에 사는 것이 초콜릿 보다 달콤하다고 말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니 지금 시련에 빠져 있다면 뒤에 올 행복이 몇 배 더 달콤할 것이라 기대해 보는 것이 어떨까. 희망고문일지 모른다고? 포레스트 검프의 어머니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가. 초콜릿 박스 어딘가에는 정말 달콤한 초콜릿이 숨어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당뇨, 칼로리 같은 것 걱정하지 말고 초콜릿은 꼭 박스채 다 먹는 습관을 갖자.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 무엇을 집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



매거진의 이전글 네가 가면, 우리도 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