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줄, 하루 한 대사
"너 고아지?
네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고, 네가 뭘 느끼고 어떤 앤지 올리버 트위스트만 읽어보면 다 알 수 있을까?
그게 널 다 설명할 수 있어?
솔직히, 젠장 그따위 난 알 바 없어. 어차피 너에게 들을 게 없으니까.
책 따위에서 뭐라든 필요 없어.
우선 네 스스로에 대해 말해야 돼. 자신이 누군지 말이야."
굿 윌 헌팅에는 좋은 대사와 장면이 수없이 많다. 그중에서 내가 뽑은 곳은 바로 여기다. 숀이 윌에게 일침 하는 순간. 좋은 머리와 지식 만으로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윌이 아무 말도 못 하던 그 순간 말이다. 숀은 이 대사 앞에도 미켈란젤로, 여자, 전쟁, 사랑에 대해 예를 들면서 윌을 압박한다.
우리는 책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한다. 요즘에는 영상물이 책을 대체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책이 가진 힘을 무시할 순 없다. 다만, 책에 대한 맹신이 과한 나머지 그 속에 모든 정답이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 권을 읽어서 부족하면 두 권을 읽고 또 세 권을 읽고... 그러면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 속에서 해준 이야기대로 살면 성공할 것으로 착각하고는 한다. 컨설팅 기업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난 컨설팅하면서 이런저런 책 속 지식을 강조하는 걸 극도로 꺼린다.
20~30대까지 음악 동아리 활동을 정말 열심히 했다. 음악을 좋아하는 마니아들이 모여있는 그룹이라 다들 팝 지식이 어마어마했다. 모임에 나가면 다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뽐내느라 밤새는 줄 모르고 떠들었던 시절이었다.
그중에 1970년부터 2000년 초반까지 빌보드 차트를 줄줄 꾀고 있는 형님이 한 분 계셨다. 몇 년도 몇 월에는 어떤 곡이 1등을 했고 당시에는 어떤 앨범이 상위권에 있었다는 걸 줄줄이 읊어댔다. 락 밴드 멤버들을 연도별로 다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다들 그 형님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부러워하고 감탄했다. 그 형님이 가진 책을 얻어보려고 아양을 떨기도 했다.
그런데 그 형님은 빌보드 잡지 등 팝에 관한 책을 열심히 읽고 외우기만 했지 음반을 듣는 것에는 소홀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이야기를 나누다 "집에 CD가 20장도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당시는 음악을 스트리밍으로 듣던 시기가 아니었다. CD, LP, TAPE으로만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 물론 라디오도 있었지만. 결국 그 형님은 지식만 전문가였지 음악을 제대로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던 거다. 실제로 음악에 대한 감상을 나누다 보니 안 들어본 티가 났다. 결국 곁에 있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더니 어느 순간 모임에서 자취를 감췄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진행자인 배철수 DJ는 오후 6시 방송임에도 점심시간 이전에 방송국에 도착한다. 그날 방송할 음악을 고르고 대본을 숙지하는 것과 함께 음악을 듣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한다. 자신도 모르는 곡을 청취자에게 소개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했다. 직접 들은 말이다.
음악이든 영화든 요즘은 얼마든지 글로 감상할 수 있다. 곡의 플레이즈는 어떻고 악기 편성은 어떠하며 편곡자는 어떤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곡을 만들었다는 것은 조금만 검색해 보면 나온다. 하지만, 그게 내가 듣고 느끼는 감상을 아닐 거다. 모든 사람이 다 좋다고 해도 나는 맘에 들지 않을 수가 있다. 그 반대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빌보드 1위 한 곡, 그래미에서 Song of the year를 받은 곡도 내겐 소음일 수도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잘 사는 법, 돈 버는 법, 연애를 잘하는 법 등 책만 읽으면 얼마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책을 많이 읽으면야 도움은 되겠지만, 또 남에게 지식을 뽐낼 수는 있겠지만, 인생은 머릿속에 있는 지식만으로 살아가는 곳이 아니다. 책에서 뭐라든 신경 쓰지 말자. 자신만의 리스트를 만들어 보자. 내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