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거리 두기가 필요한 사람도 있다
설 연휴에 본가를 가지 않은 이유
지난 설 연휴에 나는 본가에 가지 않았다. 아빠를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늘 고민한다. 가족이란 뭘까? 신경 쓰기 싫은데 그대로 지나갈 수도 없다. 작년에는 본가에 망가진 싱크대를 교체하는 데에 많은 돈이 들었다. 이제 겨우 20대 초중반인 자매가 벌써부터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산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데 누군가 내 발목을 잡아 묶어두는 느낌에 가끔 우울이 찾아온다.
내가 막 사회에 독립을 했을 때도, 운전을 시작했을 때에도, 최근 교정 비용까지 나는 부모님이 아니라 언니에게 도움을 받았다. 3년 동안 빌린 돈이 무려 약 1,500만 원이었다.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고 해도 겨우 3살 차이인데 언니는 부모님 보다 더 부모님 같았고, 더 의지가 되었다. 그만큼 부모님에게 지원받은 것도 없었으며 기대하지도 않았다.
어린 시절 내 환경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누가 봐도 가난한 집 애였다. 학교 선생님이 뭐 하나 더 챙겨주신다거나 하는. 아빠는 매일 술을 먹었다. 멀쩡한 아빠는 무뚝뚝하고 말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술에 취하면 새벽 내내 말을 했다. 어쩌다가는 엄마에게 소리 지르고 욕을 하기도 했다. 신체적 폭력은 없었다. 우리 집에서 살아본 적 없는 사람들은 그냥 부부 싸움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신체적 폭력만 없었을 뿐, 가정폭력을 당한 거뿐이다. 차라리 때리거나, 술 안 먹었을 때도 언어폭력을 했다면 완전히 연을 끊어낼 수 있었을 텐데. 아빠의 일방적인 화풀이와 폭력은 내가 독립할 때까지 나아지지 않았다.
객관적인 사실만 보자. 아빠는 나를 사랑한다. 나를 성희롱하기도 했다. 아빠라서 괜찮다며 계속 놀렸다. 나는 화를 내고 짜증을 냈다. 중학교 3학년 때 나에게 실수한 이후로 더 이상 그러지는 않았다. 아빠에 대한 양가감정은 깊어지고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정말로 실수일까? 그럴 수 있는 걸까? 분명 나를 사랑하는 아빠고 방법이 잘못되었을 음을 알지만 나의 성장하는 한 부분을 지켜보면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불쾌하게 만들고 의심하게 만든다. 미디어에서 아버지가 아이에게 스킨십하는 장면이 불편하다. 언제부턴가 나는 아빠 옆자리를 피했고 짜증 내고 화만 냈다. 보기만 하면 내 안에 어떤 화가 계속 일렁여서, 좋은 말도 좋은 태도도 나오지 못했다. 아빠는 불쌍한 사람이기도 했다. 무뚝뚝하고 거절을 잘 못하는 아빠는 술에 취하면 놀리는 걸 좋아하고 말이 많으며 하소연에 가까운 화풀이를 한다. 어릴 때는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엔 엄마에게, 엄마가 없으면 엄마를 찾고 엄마가 있으면 나가라고 화를 냈다. 그렇게 엄마가 집에 없던 날은, 엄마에게 전화하라며 잠을 깨우고 화를 내기도 했다. 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던 아빠. 새벽 내내 말을 걸고 하소연하던 아빠. 나한테 술을 먹은 아빠와 안 먹은 아빠는 다른 사람같이 느껴져서 내가 누굴 미워하고 누굴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나는 아빠를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
상담 선생님이 누가 들어도 그건 성추행이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 새삼 나를 깨닫게 했다. 나는 아빠의 "의도"에 초점을 맞추고 나 자신을 성추행 피해자로 인식하지 않았던 거 같다. 술 먹고 한 실수라니까. 가끔은 느껴졌던 아빠의 정은 분명했으니까. 언니는 아빠가 불쌍하게 느껴지는 게 크다고 한다. 나를 충분히 이해한다고 하고 아빠가 잘못한 게 맞고 너는 잘못한 게 없다고 말해줬지만 사실은 위로가 되진 않았다. 아빠의 의도가 그런 게 아닌 걸 알잖아. 알아. 알지. 나는 이해할 수 없을 뿐이야.
그냥 그 실수 한 번이었으면, 아니면 그 실수를 하지 않았더라면. 아빠와 사이가 이렇게까지 틀어지지 않았을까. 아빠의 의도와 상관없이 나에게 했었던 지속적인 성희롱은 아빠의 실수를 뒷받침하고 더 큰일로 느껴지게 했을 것이다. 아빠를 더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상담 선생님이 무서웠겠다고 말씀하신 게 이해가 됐다.
엄마, 아빠와 가끔 얼굴을 본다. 내키지는 않지만 아빠가 필요한 일이 생기면 부탁은 해본다. 아빠가 운전연습을 도와줬을 때 아빠의 표정을 보고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빠는 무슨 생각 중일까. 사실은 귀찮아하고 있는 거 아닐까. 거절을 못 해서 마지못해 해주고 있는 거 아닐까. 아빠라는 책임감으로 마지못해 나를 대하고 있는 거 아닐까. 아빠의 진심은 도대체 뭘까? 독립한 딸에게 전화 한번 하지 않지만 본가에 가면 반가운 티를 낸다. 그리고 나는 아빠를 거부한다. 아빠와 잘 지내는 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