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피아노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이고 때론 교과서 같기도 한 즉흥곡 2번, 3번은 독주회 프로그램이나 앙콜로도 자주 연주될 만큼 인기 있는 곡이다. 우선 2014년 한국을 처음 방문했던 네덜란드 훈남 피아니스트 유센Jussen형제 중 형 Arthur의 연주를 통해 외모만 보지 말고 연주를 들어보자.
(출처: Jussen Brothers YouTube)
Arthr Jussen (사진 Marco Borggreve, salzburgerfestspiele.at)
슈베르트가 1827년에 작곡한 네 개의 즉흥곡 Op 90(D 899)은 처음엔 출판업자 Tobias Haslinger에 의해 같은 해 공개되었다. 하지만 네 곡이 모두 출판된 것이 아닌 1번과 2번만 출판되었는데 3번, 4번은 슈베르트가사망하고 30년이나 지난 후에야 Tobias의 아들 Carl Haslinger에 의해 출판되었다.1) 이러한 사실은 그렇게 놀랄만한 것도 아니었다. 베토벤과 종종 비교되며 폄하되기까지 했던 슈베르트의 곡들은 생전엔 별로 찾지도 않다가 그가 사망하자 그제야 출판사들이 앞다퉈 출판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슈베르트의 작품들은 출판업자들에 의해 돈이 될 것 같은 작품들만 서둘러 찍어내기 급급하여 작품 번호(Opus-글쓴이)가 뒤죽박죽으로 붙여지기도 했다. 그러다 1897년 슈베르트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Breitkopf & härtel 출판사에서 선보인 '슈베르트 전집'을 통해 몇몇 오류를 바로잡으며 체계를 갖춰가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오스트리아 음악학자 오토 에리히 도이치Otto Erich Deutsch에 의해 작곡순서대로 정리된 슈베르트 작품들이 이니셜 D와 함께 1951년부터 공식적으로 출판되기 시작한다.2)
그런데 3번의 경우는 조금 특별한 출판 과정이 있다.
1827년 완성된 슈베르트의 자필악보에는 명백히 Gb Major로 4분의 2박자(별개로 알라 브레베Alla breve가 두 개 있다)로 표기되어 있는데 Tobias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그는 곡을 좀 더 쉽게 연주할 수 있도록 과감하게 4분의 4박자에 G Major로 연주해야 한다는 지시를 따로 적어 두었는데 급기야 그의 아들이 출판까지 해버렸다. 자필악보에 표기된 1, 2, 3, 4번 조성 관계를 비교해 보더라도 알 수 있듯 3번에 대한 이런 어처구니없는 도발을 슈베르트가 알았다면 싸다구를 그대로 날리지 않았을까?
즉흥곡 3번 슈베르트 자필 악보. 연필로 덧칠한 하나의 알라 브레베와 조성의 바뀜도 모자라 마디 추가까지 지시하고 있다(자료: 오스트리아 국립 도서관)
그럼 개정된 G Major의 즉흥곡 3번은 과연 어떻게 바뀌었을까?
아래의 연주를 통해 첫 음부터 한층 더 높아진 키로 연주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출처: Amedeo Lodi-Fè YouTube)
1857년 출판된 즉흥곡 3번의 초판 악보 (출처: https://imslp.org/)
그리고 한 번 바뀌었던 즉흥곡 3번이 다시 새롭게 바뀌는 연주가 있었으니 바로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가 편곡한 버전이다. 슈베르트와의 친분으로 작품들 중 100여 곡이나 편곡한 프란츠 리스트는 슈베르트 외에도 많은 작곡가의 곡들을 편곡한 것으로 유명했다. 리스트가 편곡한 슈베르트의 즉흥곡 2, 3번은 1868년 출판된다.3)
리스트가 편곡한 즉흥곡 3번 S 565b (출처: https://imslp.org/)
리스트는 슈베르트 즉흥곡 3, 4번이 출판되던 1857년의 자필 악보를 검토해 본 결과 아마 1, 2, 4번과의 조성차이에서도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어쨌든 리스트가 편곡한 곳을 살펴보자면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로는 본래 다섯 번째 마디의 왼손 세 번째 음이 Gb-Db이지만 F-D로 좀 더 풍성하고 입체감 있게 표현하는데(오른손도 1도 상행한다) 실제로 이 부분만 리스트 버전으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들도 있다.
화살표 끝이 가리키는 음을 보자. 왼쪽은 자필 악보를 바탕으로 한 원전판(Henle 출판사), 오른쪽은 리스트 편곡 버전
아래의 키신의 연주를 들어보면 다섯 번째 마디의 음정이 정확히 들리며 각각 재현부에서도 동일하게 연주하고 있다(영상 31, 32초 구간).
(출처: medici.tv YouTube)
두 번째 차이점은 재현부에 등장하는데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의 가장 큰 특징이었던 재현부에서 동일하게 전개되는 주제가 심심했는지 리스트는 과감하게 한 옥타브 높인 아르페지오로 편곡했다. 다소 과장된 느낌인데 차라리 하프였다면 어울리지 않았을까(실제로 리스트의 관현악곡들 중에는 하프의 비중이 높다). 이런 형태로 두 페이지 정도 연주되다 갑자기 본래 버전으로 돌아간다.
그럼 오리지널 버전도, 다섯 번째 마디의 변형된 버전도 들어봤으니 이번엔 찐 리스트 편곡 버전으로 들어볼까?
리스트 편곡 버전은 운 좋게도 1998년 하이페리온에서 출반한 레슬리 하워드Leslie Howard의 연주가 있다. 1997년 영국에서 녹음한 곡으로 하이페리온 홈페이지에서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 즉흥곡 2번과 더불어 대략 5파운드 정도 지불하고 직접 다운로드할 수 있다. 여담으로 방랑자 환상곡의 경우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아르페지오들을 마구 옥타브 연타로 편곡되어 듣다가 깜짝 놀라기도..
(음원 출처: https://www.hyperion-records.co.uk/)
그럼 다시 슈베르트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1888년에 출판된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 출판사의 슈베르트 전집 11권에 수록된 원전판(원전 악보Urtext-글쓴이)을 보자.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르텔에서 1986년 출판한 편집자 막스 파우어Max Pauer 편집본(음악춘추사 라이센스)
헨레출판사G.Henle Verlag는 당시 발터 기제킹Walter Gieseking의 운지법 외에 특별히 편집자 보고서는 없으며 각 트릴tr에 대한 연주 견해가 부록으로 실려 있다. 둘 다 공통점으로는 '당시에는 G Major로도 자주 연주된다'고 주석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이런 원전판에 대한 편집 작업을 가능하게 한 슈베르트의 자필악보가 잘 보관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슈베르트의 수많은 피아노 소나타들 중에는 자필 악보가 유실된 경우나 작곡 도중 갑자기 끊겨버린 유작도 상당히 많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D 625 소나타인데, 1악장은 재현부가 끊겨 있고 아다지오 악장이 출판 당시엔 유실되어 단일 곡으로 출판되거나 피날레 악장도 미완성으로 끝나는데 1990년대 들어 활발히 연구했던 두 명에 의해 마침내 세상에 완성된 악보를 내놓았다.
그들은 바로 피아니스트 파울 바두라-스코다Paul Badura-Skoda와 마르티누 티리모Martinu Tirimo로 각각 1997년 헨레에서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3권, 1998년 빈 원전판을 통해 슈베르트 전집 피아노 소나타 2권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D 625만 보더라도 1악장 코다 부분은 두권 모두 완전히 다른 전개를 띠고 있으며 둘 다 피아니스트답게 자신의 버전으로 녹음까지 하였다.
왼쪽은 헨레 원전판, 오른쪽은 빈 원전판(음악세계 라이센스)
끝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임동혁님의 슈베르트 즉흥곡 3번 연주. 과연 어떤 버전으로 연주했을까? 참고로 제일 처음 보여드린 아르투르 유센 연주는 슈베르트 자필 악보에 따른 오리지널 버전이다.
(출처: KBS 클래식 YouTube)
풋풋했던 우리 동혁님 (사진: 크레디아)
1) Tobias Haslinger (1787-1842)
오스트리아 작곡가이자 출판업자. 슈베르트가 작곡한 작품 90의 '즉흥곡'이라는 부제는 슈베르트가 아닌 토비아스 하슬링거에 의해 붙여졌다.
2)1897년 슈베르트 탄생 100주년에 출판된 슈베르트 전집은 이후 오토 에리히 도이치를 비롯한 전문적인 슈베르트 음악학자들에 의해 1963년 11월 국제 슈베르트 협회The International Schubert Society의 설립이 결성되고 1965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오토 에리히 도이치Otto Erich Deutsch(1883-1967)
3) 리스트의 작품번호는 영국의 음악학자 험프리 설Humphrey Searle(1915-1982)에 의해 S.로 정리되어 통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