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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적인 도깨비 Mar 09. 2024

결국 뚜껑을 열지 못했던 막걸리

 김려령 작가의 [그녀]는 주니어논술 2008년 7월호 [유쾌한 초상집]을 전면 개작한 단편이다. 특별할 것은 없고 시골에서 벌어진 상갓집 풍경을 소박하고 재미나게 엮은 이야기인데, 읽다 보니 문득 돌아가신 장인어른이 생각났다.   

 

 장인어른은 평소 막걸리를 즐겨 드셨다.

그것도 다른 막걸리는 드시지 않으셨고 줄곧 '생탁'만 고집하셨다. 동네 슈퍼에 들러서 그냥 집에서 드시거나 단골 식당에서 딱 한 병씩을 걸치시고 들어가신다.

여름날 늦은 저녁, 바람도 없는 날. 골목 곳곳 갈라진 시멘트 바닥에 깊게 베인 뜨거운 열기만이 느껴질 때. 녹색 염색이 제법 빠진 반팔 티셔츠를 짙은 고동색 정장바지 안에 반듯하게 넣어 입으시고는 생탁을 한 병 사 오신다. 그리곤 군살 하나 없는 까무잡잡한 손으로 뚜껑을 먼저 열고 다시 잠근다. 몇 번 흔들어서 비집어 올라오는 탄산을 뱉어내게 하고는 그제야 뚜껑을 연다. 

생탁. 예전에는 병 색깔이 라벨과 같은 색상이었다(사진: 부산합동양조)

 그날도, 그렇게 좋아하시는 생탁을 제법 얼큰하게 드셨다. 그러다 귀가 중 몸의 중심을 잃고 넘어지셨는데 그 충격으로 의식을 완전히 잃으셨다.

 밝지도 않은 형광등인데 중환자실이라 그런지 주름이 더 깊이 파여 보인다. 장인어른은 더 핼쑥해진 모습으로 의식 없이 누워 계셨다. 병원이름이 깨알같이 박힌 베개와 이불, 헐렁한 환자복이 까무잡잡한 피부와 대조되어 더욱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내 컴컴한 마음이 들었다.


'뭘 해드리면 좋아하실까..' 


 입원하신 지 둘째 날, 나는 병원 근처 담배간판이 더 크게 느껴지는 구멍가게에 들러 생탁 한 병을 샀다. 마구잡이로 구겨진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 다시 중환자실을 찾았다. 여전히 아무런 표정 없이 깊은 잠을 청하고 계시는 장인어른의 모습이 보였다. 며칠 만인데도 누워계시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보인다. 

오른손을 이불속에서 꺼냈고, 생탁을 손에 쥐어드렸다. 

평상시 같으면 마다하지 않으시고 능숙한 솜씨로 막걸리 병을 뒤집어 몇 번 돌리시곤 바로잡은 뒤 뚜껑을 여셨을 텐데, 두 번 다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손을  잡은 채 언제든 꺼내 드시라고 말씀드리고는 각자 자신과엄숙한 전쟁을 치르고 계실 여러 환자들을 뒤로하고 중환자실을 나왔다.


 다음 날 새벽이 되자 장인어른은 고인이 되셨다.

그렇게 좋아하시던 생탁을 보자 이내 편안한 마음이 드셨던 걸까.


 핸드폰에는 아직 장인어른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다. 

'술그만드세요장인어른'으로 살아계실 때부터 입력해 두었다. 어쩌다 다른 전화번호를 찾다 스크롤 중에 보이면 한 번씩 통화버튼을 눌러본다.


다행히 아무도 받지 않았다.

김려령 소설집 [샹들리에. 창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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