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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환 Jan 31. 2024

놀이가 필요하다

보는 것을 하는 것보다 즐기는 사람이 많아졌다. 스포츠를 직접 하는 사람은 줄어들고 보는 사람은 날로 늘어난다. 연애를 직접 하지 않고 타인의 연애를 훔쳐보고 평가한다. 어린이들은 더 이상 부모 몰래 컴퓨터 게임하지 않고 게임 영상을 본다. 몸·놀림에서 눈·놀림으로 놀이와 유흥의 문화가 바뀌고 있다. ‘놀이하기’에서 ‘놀이보기’로 트렌드가 변해간다.1)


놀이하기는 그 순간 온 힘을 쏟아 집중해야 한다. 도중에 섣불리 멈출 수 없다. 건성건성 한 태도는 유희를 감소시킨다. 놀이보기 마음가짐으로 임하는 놀이하기는 자신을 포함하여 놀이에 참여하는 모두에게 - 팀이 존재한다면 우리팀뿐만 아니라 상대팀에게도 - 결례이다. 모든 참여자의 열정을 요구하는 놀이하기의 유희는 과정 속에 스며들어 있다. 학창 시절 줄다리기 경험은 승패 여부가 아닌 함께 웃고 즐겼던 추억으로 남아 있다.

놀이보기는 그저 관찰차적 태도로 바라보면 충분하다. 언제든 쉽게 멈출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그만둘 수 있는 특징은 아이러니하게 끝없는 연속으로 이어진다. 불명확한 끝맺음으로 적정한 ‘때’의 감각이 사라진다. 멈출 수 없는 놀이는 스스로를 갉아먹는 중독일 뿐이다. 또한 놀이보기의 유희는 대개 놀이하는 타자에게 달려있다. 뒤엉킨 시간 감각 속 타자는 흐리멍덩한 눈빛 아래 노출의 대상으로, 놀이보기를 즐기는 자들은 관음증 환자로 전락한다. 관음증 환자는 침대 속 가련한 안락을 추구하며 진정한 유희를 반납한다.

놀이하기는 기존의 나를 부정시키는 경험이다. 경험은 똑같이 반복할 수 없기에 고유한 추억이 되고 함께 했던 타자는 대체불가능한 존재가 된다. 타자와의 상호작용이 필수인 놀이하기는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자기 객관화를 주문한다. 놀이 과정에서 내 마음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없음을 깨달으며, 무엇이 어느 수준까지 허용되는지를 감각적으로 습득한다. 혼자 하는 놀이조차도 누군가를 보고 배우거나 누군가로부터 도움받아야 한다. 반면 놀이보기는 단순한 체험이다. 기존의 나를 긍정하기에 똑같은 반복의 축적이다. 켜켜이 쌓인 긍정성의 반복은 자기 몸 하나를 가누지 못하는 비만으로 이어진다.

놀이보기의 무절제한 증식으로 사회가 탁해진다. 놀이보기 중독자는 놀이의 진정한 유희와 현실 고증을 알 길 없다. 정의의 사도를 자처하는 시선 끝, 타자는 공감은커녕 비판의 과녁일 뿐이다. 또한 직접 놀이하지 않으니 무엇이 어디까지 수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현실 감각이 생기지 않는다. ‘common sense’에 관한 합의가 생기지 않으니 사회는 수많은 관찰자 저마다의 가변적 잣대로 쪼개진다.


개개인의 삶은 절제된 NPC의 온도가 전부가 되고 현실 세계는 가상보다 더 가상적으로 변해간다. 세계 곳곳의 무자비한 정의로운 전쟁, 이재명 살인 미수 사건, 배현진 의원 피습 사건 등 현실 세계를 뒤흔드는 사건은 놀이보기 불감증 환자에게는 단지 가상의 이벤트일 뿐이다. 특히 만인이 만인을 철저히 감시하는 한국에서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터져도 크게 놀랍지 않은, ‘아… 또 터졌구나’ 체념의 한숨이 늘어난다.

현대 사회에서 힘은 더 이상 누군가를 죽이거나 위협하는 폭력이 아니다. 물리적 폭력으로 누군가를 쉽게 해칠 수 있고 SNS로 사회적 죽임을 가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진정한 힘은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능력이다. 싸늘한 훑어보기인 놀이보기를 넘어서서, 주위를 돌러-보고, 누군가에게 직접 들러-보고, 함께 웃으며 돌아-보는 놀이하기가 필요하다.2) 물론 지친 하루 끝 놀이보기는 쉼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타인과의 연대와 사랑 속에서 이루어지는 놀이하기가 ‘지금, 여기’ 곳곳에서 절실히 필요하다. 가상보다 더 가상 같은 한국 사회에 익숙해지면 안 된다. 놀이보기와 놀이하기의 교차로에서 한국을 절묘하게 뒤덮은 가상의 베일을 벗기고 진정한 유희를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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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구용, “관음의 정치와 A씨”,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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