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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May 20. 2024

모국어는 차라리

<드라이브 마이 카>의 닿지 않는 언어에 대하여



모국어

모어(母語)의 기준으로 아래와 같은 기준이 제시된다.

            태어나서 처음 습득한 언어에 기반할 것(origin)          

            화자의 내적 정체성에 기반할 것(internal ID)          

            화자의 외적 정체성에 기반할 것(external ID)          

            화자가 가장 잘 아는 언어에 기반할 것(competence)          

            화자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언어에 기반할 것(function)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언어를 배워야 하는 당위에 놓입니다. 사람은 관계로 사회를 이루었고 그 거대한 관계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게 편승하려면 대화와 소통이 필요한데 그걸 가장 쉽게 할 수 있게 하는 도구가 바로 언어니까요.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배워 모든 언어체계에 기반이 되는 언어를 모국어라고 합니다. 아마 언어에 관련해선 일자 무식인 제게 한국어는 어떠한 반론을 제기할 수 없을 만큼 확실한 모국어겠네요.  혼자 살아가지 않고 우리에 속해야만 하는 우리는 필수적으로 모국어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고라니 선정 2023 최고의 책 제목


 뭐 사실 언어에 관한다기보단(아예 이야기를 안 할 수는 없겠지만) 공연예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만. 이 책을 보여준 사람과 이 책의 제목이 연결되면서 저한테 모국어라는 개념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표현과 발화 체계로의 나 그리고 제 주변 사람들의 모국어는 당연히 '한국어'겠지만. 만약 사유와 인식의 발생 체계로의 언어가 있다면. 그것도 하나의 모국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본인이 가장 잘 받아들일 수 있고 잘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언어. 가장 일차원적이고 솔직하고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무의식의 체계. 그렇기에 우리가 같은 언어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다른 의미를 찾아내고 갈등과 재생산이 이뤄질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입니다. 느끼고 표현하는 법이 전혀 다르니까요.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 중에서 








세명 다 일본어를 쓰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함에도 전혀 말이 통하질 않고 / 왼쪽에서부터 다카츠키, 가후쿠, 오토 







한국인 농아 이유나와 더 깊고 정확한 소통을 합니다.


다카츠키는 육체의 언어(섹스), 가후쿠는 침묵의 언어(감내), 오토는 비유(창작)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서로 모두 뜻하는 바는 비슷하나 전혀 서로에게 의미가 닿지 않습니다. 가후쿠는 오토의 말을 듣지 못해서 오토를 잃고(자살했습니다) 다카츠키의 말을 믿을 수 없어 그를 정신적 파국으로 밀어 붙입니다. 그들은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했지만. 말이 통하지 못해 서로를 파멸시킵니다. 반면 유나의 마음의 언어(공)는 가후쿠의 침묵의 언어와 연결점이 있는 듯했습니다. 서로 모국어는 전혀 다르지만 그제야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사키와 가후쿠가 서로에게 마음을 열수 있었던 것도 아마 모국어가 같았기 때문이겠죠,


사람들에겐 분명 자신에게 가장 편한 언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다르기에 같은 단어를 봐도 ('사랑', '우정', '용기'... 두 글자일수록 오해가 더 깊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생각하는 바가 다 다르고 느끼는 방식이 다른 거겠죠.






캬.


저도 분명 저만의 모국어가 있겠죠, 대충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든 언어 메커니즘이 한국어에 맞춰진 저는 영어로는 소설을 쓸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 쓰더라도...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겠죠. 모든 걸 한 번에 구성에서 쫙쫙 뽑아내는 천재과도 한 번에 10시간씩 앉아서 글을 쓰는 노력과도 아닌 잠깐의 번뜩임으로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글을 쓰는 저는 아무래도 더 모국어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별것 없는 재능을 살리고 남들과 다른 점을 하나라도 만들려면 솔직해지는 수밖에 없으니까요, 솔직해지는 것만큼 개성 있는 일은 없는 것 같네요.



저는 분위기와 흐름을 잘 읽습니다. 그래서 이해가 남들보다는 좀 빠른 편인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렇기에 오판도 많고 정보도 너무 과하게 들고 있습니다. 수많은 정보의 폭풍에서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언제나 '가장 합당하고 간결한' 뿐입니다. 그 무지몽매한 합리로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했네요. 그렇기에 글을 쓰다 보면 그런 말을 많이 듣습니다. 왜 이렇게 급하고 불친절하지? 상당히 잘 인식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고치기가 쉽지 않네요. 솔직해지면 솔직해질수록 더 급하고 불친절해집니다, 근데 그게 제가 인식하고 사유하는 방식이라... 어렵네요. 말을 길게 하지 못하는 것과 일맥 상통합니다. 합당하지도 않고 간결하지도 않은 건 1초도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글을 쓴다는 사람에겐 치명적인 단점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들이 훔친 것은, 함께한 시간이었다.' 캬~



 그래서 이런 냉철하고 이성적인 시선을 가졌음에도 입으로는 따뜻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히로카즈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모국어를 가지고 있는 건지. 한번 만나보고 싶네요.





이것도 그런데.... 포스터가 넘구려



글을 쓰면 쓸수록 제 모국어에 실망하는 하루입니다. 혐오스러운 정도는 절대 아니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죠. 나도 좀 살기 편한 모국어를 배웠으면 좋았을 텐데. 눈치만 보며 빌빌대는 삶은 그렇게 행복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뭐 어쩌겠나요. 그렇게 태어났다면 살아 보는 수밖에. 


제 모국어는 아무래도 과민인 것 같습니다만... 나름 의미가 있기를 바라며 최대한 친절하려 노력한 수밖에요. 그렇지 않으면 정말 아무런 가치가 없을 지도 모르니까.


제 모국어는 차라리 친절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말들로 말미암아 저까지 닿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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