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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석함 변호사 Feb 09. 2024

목숨값 흥정

사고와 목숨에 관한 이야기 - 2

건설현장에서 또 사람이 죽었다. 사고는 항타기가 현장에 설치된 경사로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발생했다. 근로자는 미끄러진 내려온 항타기에 목이 눌려 즉사했다.


돌아가신 분에게 가족이라고는 부인과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들이 전부였다. 부인은 대형마트 직원이었는데 약간의 생활비를 버는 것이 수입의 전부였다. 생계를 책임지던 가장이 한 순간에, 허망하게 가족을 떠나버린 것이었다.


산업재해와 관련된 사건을 할 때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느끼는 것 하나가 있다면, "산재 보험"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산재를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와 같은 복잡한 이야기는 천천히 하더라도, 일단 이 사건의 경우에는 고용주가 사고를 바로 인정하고 산재 처리에 협조적이어서 산재 보험에 따라 유가족들에게 유족연금이 지급되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부인은 사고의 책임자들이 죄값을 치르고, 가족들의 고통에 상응하는 보상을 원했다. 유족연금은 앞으로 살아가야 할 가족의 정당한 몫이지, 죽은 남편이자 아버지의 목숨 값이 될 수 없었다. 특히 아내 분의 뜻이 무척 확고했다.


이 사건은 지역신문사에 기사까지 떴던 사고였기 때문에 유가족이 따로 고소를 하기도 전에 일사천리로 수사가 진행되었다. 피의자 측에서도 형사 처벌을 최대한 피하고자 합의를 보자고 연락해왔다.


시작은 전통적인 손해사정으로 시작되었다. 적극 손해와 소극손해, 위자료를 계산하고, 그리고 여기서 유족급여를 공제하고.......


합의금을 최대한 많이 받기 위해서 손해사정을 대충하고 소위 블러핑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최대한 공정한 금액을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합의는 핑퐁처럼 서로의 의사를 주고 받는 과정이지만, 상대방이 이를 수용하지 못한다면 결국 소송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소송으로 해결하는 것이 꼭 만능이지도 않고, 소송 진행이 유가족들의 고통을 연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그렇기에 합의를 할 때도 진정성 있게 접근한다. 최소한 산재에서는 그렇게 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이 사건은 소위 "배째라" 사건이 되어버렸다. 자신들이 합의보자고 연락해와놓고는, "그런 큰 금액이 말이 되느냐, 유족급여도 받지 않았느냐"면서 제시한 합의금을 50% 넘게 깎으려 들었다.


돈이 진짜 없으니, 자신들이 제시한 금액 아니면 합의 안보겠다고 했다. 자기들은 "진짜" 돈이 없다고....




결국 가압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 대한 공적 자료를 비롯해서 온갖 정보를 뒤져보았다. 그렇게 해서 회사 소유의 토지를 찾았었지만 이미 사고 발생 몇 달 전에 신탁을 해둔 것이어서 건드릴 수 없었다. 채권 가압류는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지만 부동산 가압류가 어려우니 어쩔 수가 없었다.


이 회사는 돌아가신 분이 작업하던 현장 외에도 다른 건설 현장에서 시공사로서 작업이 있었는데, 바로 이 건설 현장을 홍보하면서 지어질 건물 분양 홍보를 하던 한 인터넷 사이트로부터 시행사인 금융회사 정보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걸 토대로 시행사를 제3채무자로 하는 채권 가압류를 하였다. 법원에서는 채권 가압류를 쉽게 받아주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엔 달랐다. 피해와 금액이 명확했기 때문에 보정명령 하나 없이 바로 가압류가 이루어졌다.


이렇게 되자 돈이 없다면서 자신들이 제시했던 합의안만 고집하던 회사에서 바로 합의를 하자고 연락이 왔다. 조건은 단 하나. 가압류 해제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제시한 합의금을 거의 그대로 받을 수 있었다.


수 차례 전화 통화를 하고 자료를 찾던 노력 끝에 합의서에 도장을 찍을 수 있었다.


합의서 작성을 위해 모인 날에도 회사 관계자의 태도는 여전히 딱딱했지만, 그래도 입금 약속은 정확히 지켜주었다. 최소한, 의뢰인의 어린 아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는, 경제적인 부담을 좀 덜었기를...




나의 경험에 비춘 것 뿐이지만, 위와 같은 손해배상 사건은 회사 측이 먼저 최대한 성의를 보이면서 자신들의 사정을 피해자들에게 진솔하게 설명하는 편이 수월하게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사고 처리 또한 회사 경영의 일환으로 숫자로서만 접근하는 태도는 분명하게 티가 났고 결과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가장 최악이 단순 명료하게 "돈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인륜적으로도, 합의 전략으로도 좋지 않았다.


이 회사도 주구장착 돈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하지만 진짜 돈이 없었을까?



*의뢰인 등 사건 관계자 보호를 위해 내용은 일부 각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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