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에는 콘크리트 타설 과정에서 펌프카라는 걸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레미콘에서 콘크리트가 나오고, 이걸 펌프카 후미에 있는 호퍼라는 곳에 넣으면 펌프를 작동시켜 붐(압송관)을 타고 원하는 곳에 콘크리트가 빠져나오게 된다. 이 압송관이 걸려있는 단단한 대를 "붐대"라고 하는데, 피해자는 이 붐대가 끊어지는 바람에 아래에 깔려 돌아가시게 되었다.
더 안타까운 점은 이 분이 부주의하게 붐대 아래를 거닐고 있던 것이 아니라, 잠깐 공사에 필요한 비닐을 펼치기 위해 붐대 아래를 지나가고 있던 중에 사고를 당했다는 점이다.
운이 없으려면 이렇게도 없는 것인가...
당연히 건설사와 장비회사도 난리가 났다.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현장이 멈추는 문제만 생기지 않는다. 우선 대표자부터 현장직원까지 경찰이나 노동청 조사를 받게 된다. 형사 절차를 어찌어찌 넘어가게 되더라도 민사 절차도 남는다. 당연히 피해자와 유족들만큼은 아니지만, 회사 관계자도 사고의 여파에서 쉽게 벗어날 수는 없다. 그래서 돈이 조금이라도 있는 회사들은 빠르게 합의부터 시도한다.
이 사건도 건설사가 돈이 좀 있어서 그런지 빠르게 합의를 봤다. 문제는 법률적인 부분을 잘 모르던 유가족들이 합의를 너무 대충 봤다는 점이었다.
건설사가 제시한 금액은 소득이 크지 않던 유가족들 입장에서 만만치 않게 큰 금액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여기다 장비회사로부터 받을 금액까지 고려하면 경제적인 문제는 당분간 해소될 것 같다고 생각하신 듯했다.
유가족이 필자를 찾아온 이유는, 돈이 없다면서 배 째라 하는 장비회사에 대해 법적인 조치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문제는 자료를 들춰보았을 때 장비회사에게 돈이 별로 없어 보였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여유가 있어 보였던 건설사는 통상받을 수 있는 손해배상액보다 적은 비용으로 상황을 마무리 지은 상태였다.
안타까운 마음에 혹시 유가족의 대리권 행사에 문제가 있어서 무효로 볼 사정은 없는지, 아니면 합의 문구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시간을 들여서 오랫동안 검토를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 가족은 결국 장비회사로부터 얼마 되지 않는 배상금만을 받을 수 있었다.
우선, 건설사를 상대로 합의 무효를 주장할 실익이 크지 않았다. 승소 가능성의 문제도 있었지만, 결국 소송비용이 발목을 잡았다. 혹여 패소라도 하게 되면 건설사의 소송비용도 물어줘야 할 텐데, 당장 경제력이 없는 유가족들은 소송을 하겠다는 결정을 내릴 여력이 없었다. 무조건 승소한다고 말해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까.
그다음, 장비회사는 합의 의지가 없었다. 돈이 없다는 장비회사 사장은 차라리 형사처벌받겠다고까지 말했다. 몇 차례 통화를 하면서 어찌어찌 사장을 합의 테이블에 앉힐 수 있었지만, 유가족들의 남편과 아버지를 죽인 그 파손된 차량의 판매대금이 곧 합의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을 생각할 때마다 씁쓸하다. 승소와 패소를 한 다양한 사건들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 사건은 항상 가시처럼 내 마음속에 드러나 있다.
도장을 찍기 전으로 시간을 돌려 내가 먼저 봐드릴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지금부터 제가 이 분들 대리를 하니까, 그전에 했던 합의 좀 물러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이 든다.
*공동불법행위 법리에 따른 검토를 하여 조치를 한 부분이 있으나 이 내용에서는 제외하였습니다. **의뢰인 등 사건 관계자 보호를 위해 내용은 일부 각색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