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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온 Feb 11. 2024

이 일을 30년 할 수 있을까?

Ep1. 1년 차가 된 대기업 제조업 신입사원

서울에서 자라 대학까지 나온 나는, 대기업 지방사업장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다.


지방에서 일하면 돈이 꽤 잘 모인다. 하루 3끼를 회사/기숙사에서 먹을 수 있고, 인터넷 쇼핑 외에는 돈을 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며 매달 월급은 통장에 쌓여갔다. 서울을 자주 왕복하다 보니 교통비는 많이 들어도 여행을 다니고, 맛있는 것을 사 먹을 정도는 되었다. 먹고살기 어렵다는 요즘 시대에 꾸준한 월급을 받는다는 것은 잘 생각해 보면 참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그렇지만 요즘 나는 예전만큼 일에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 일이 재미있지 않고 적당히 일하려는 내 모습을 느낄 때, 뭔가 슬펐다. 돈까지 받으며 하는 일인데도, 오히려 열정페이를 불태우던 나날보다 일에 만족감이 적다. 팀장님의 모습이 20년 뒤 "잘 풀렸을 때"의 모습이라 생각하니, 팀장이 되고 난 뒤의 나는, 내 업무가 만족스럽고 행복할까 의문이 들었다. 심지어 잘 안 풀리면 팀장조차 못 달고 회사에서 힘들게 붙어있는 모습일지도 모르니까.


내가 이 일을 열심히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좋은 성과를 내어 "회사"의 성장을 가져온다면, "나"에게는 어떤 성장과 변화가 있을까? 결국 이 낡디 낡은 공장 한복판에 먼지 날리는 사무실에서 계속 일하며 30년을 보내는 건 똑같지 않을까?


사람들은 원래 회사 다니면 다 그렇다고, 좋아서 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스스로 이유를 찾아다니고 있다. 나 스스로에게 왜, 무엇을 위해 회사를 다니냐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주변에 똑같은 질문을 했을 때, 단순한 '아이들 때문', '가족 때문', '돈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모두가 이 고민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당연하게 회사를 다니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회피도 꽤 했던 것 같다. 작년에는 다이어리를 아예 안 쓴 달도 많았고 취업 후부터 인스타 게시글도 없다. 답이 없는 문제를 고민하고 생각하면 힘드니까.. 생각을 기록하는 것을 멈췄던 것이다. 그건 오히려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사실 객관적으로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 자체도, 그리고 그렇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자체도, 누군가는 바라는 행복한 삶일 것이다. 그리고 취준 시절의 나는 이 삶을 간절히 바랐다. 부모님은 이런 삶을 평생 살아왔으며, 덕분에 나는 이렇게 자랄 수 있었다.


얼마 전, 팀장님과 점심 회식을 나왔던 어느 날, 그렇게 워커홀릭이셨던 팀장님의 입에서 "회사 밖에 나오면 이렇게 좋은데."라는 말을 들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밖을 바라보면서 툭 튀어나온 말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가서도 자기 전 일을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아서, 나는 팀장님이 정말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런 사람의 말이라, 더더욱 와닿았다. 직장인은 정말 다 똑같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직장인들은 누구나 일하기 싫고, 회사 밖에 나와 있는 시간은 행복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벌기 위해, 가족을 위해, 일을 한다. 다들 이런 생각을 하더라도 10년, 20년, 30년씩 직장생활을 해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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