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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Aug 20. 2024

결혼생활 종지부를 찍은 첫날

[연재] 120. 이혼 96일 차

120. 이혼 96일 차          



결혼생활 종지부를 찍은 첫날     


2014년 6월 4일 수요일 맑음


  그가 눈을 떴을 땐 침대 옆 협탁에 진토닉이 반쯤 남은 잔이 놓여있었다. 

  그대로 몸을 일으켜 아침을 시작했다. 오늘은 지방선거일로 서울시장,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 교육감, 비례대표 등 7건의 선거가 있는 날이다.      


  도로는 한적했다. 


  “투표하러 가자.”

  대치동쯤 지났을 때 여자에게 전화했다. 그렇게 여자가 외출을 준비하는 사이 지하 주차장으로 가서 볼보 승용차 배터리 교체작업을 시작했다. 배터리 전극 단자가 반대인 사실을 알 때도 이때였다. 게다가 눈도 어두워 작업하는데 힘들었다. 기존의 배터리를 떼어내고 새 배터리를 장착했다. 그러나 전극 단자가 헐거웠다. 제대로 조립하려면 사포나 줄을 이용해 단자 홈을 갉아내야 했기에, 찌그러진 곳을 판금을 하러 카센터 가는 길에 작업하기로 하고 원위치했다.      



  오래된 결혼생활의 종지부를 찍은 첫날이었다. 그들은 나란히 방현초등학교 과학실에 마련된 투표장으로 향했다.     


  “누굴 찍을 거야?”

  여자의 질문에 그가 “당연히 몽준이지. 박원순은 80년대 사고에 머물러있고 아주 교활해.”라고 대답했다. 그가 생각하는 박원순은 정체성도 당파성도 없는 서민 코스프레 하는 소시오패스 종자였다. 그러니 ‘21세기에 광화문 광장에 벼농사를 짓는 것’이라고 믿었다.      


  투표장엔 약간의 줄이 있었을 뿐 번잡하지 않았다. 투표용지는 서울시장을 포함해 세 장을 먼저 받아 투표하고 나중에 네 장을 더 받아 투표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투표를 마치고 나오며 “볼보 판금을 맡기고 안양 콩나물국 먹으러 가자.”라고 말했다.      


  그래서 여자가 볼보로 앞장서고 그가 뒤를 따라 서울고 근처에 있는 공업사를 찾아갔다. 볼보는 조수석뿐만 아니라 운전석도 약간 함몰되어 있었다. 정비사가 “한 60만 원 나옵니다.”라고 견적을 제시했다. 이에, 그가 “꺾이지 않았으니 그냥 뽑을 수 있죠?”라고 되물었는데, 둥그렇게 함몰되어 복원이 쉬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아닙니다. 분해하면 차량 가격 떨어져서 안 되고요, 판금 후 도색 해야 합니다.”였다. 이에, “이게 자차로 보험 처리되죠? 자기 부담금은 얼마나 나옵니까?”라고 물었다. 정비사가 “자기 부담금은 20만 원입니다. 보험 처리하게 되면 100만 원 정도 나와요. 그래도 할증은 없어요.”라고 말했다.     


  “아무리 할증이 없다고 해도 그렇게 부당이득을 보면 안 되죠?”     


  작업도 바로 되지 않는 데다, 수리 가격 또한 편할 대로 부르기에 맡기기를 포기했다. 수리업자가 “전화번호 주시면 연락드릴게요.”라고 말을 했으나 “명함을 주세요. 제 시간과 맞춰 입고시킬게요.”라고 말하며 명함을 챙겼다.      


  안양으로 향하는 글에 그가 “볼보와 벤츠가 들어오니 업자가 아주 호구로 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부자들이 그저 부자가 된 줄 알아. 아주 아무것도 모른 줄 안다니까. 이제 어느 정도 가격 알았으니 타고 다니다가 적당한 업소에 맡겨 수리해. 법원 가는 길 우측에도 한 곳이 있어.”라고 일러두었다.      


  안양 빌딩 건축 현장엔 계단 미장과 대리석 코킹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러니 들어가 볼 수 없었다. 그저 한 바퀴 둘러보고 [전주콩나물] 식당으로 향했다.     


  “어때? 맛있지?”     

  그가 맛있다고 말하며 ‘한번 데리고 오겠다’라는 약속을 지켰다. 식사하고 철물점에서 사포 한 장을 샀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다시 배터리 교체작업을 시작했다. 밝은 곳에서 작업하다 보니 단자가 반대로 된 것이 아니라 정상으로 주문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지하에서는 어두워 배터리 극성을 반대로 본 듯했다. 그걸 모르고 장착했다면 차량 손상으로 이어질 뻔했다. 교환 후 시동을 걸고 전압을 체크했다. 엔진은 너무 조용했는데, 그런 이유로 한 번 더, 시동키를 돌리기도 했다.     


  빌딩으로 돌아와 글을 쓰려고 했으나 피곤해서 그만두었다. 드럼도 치지 않았다. 그렇게 오후 시간을 보냈을 때 누가 문을 두드렸다.     


  “당진에 감정을 갔는데 챙겨주기에 가져왔습니다.”     


  베드로가 아이스박스를 들고 들어왔다. 내용물은 살아 있는 꽃게였다. “이걸 어떻게 먹으라고?”라고 말하며 인터넷 검색창에 ‘꽃게찜’을 검색했다. 그리고 연두색 냄비에 된장을 풀고 칫솔로 꽃게를 씻은 다음 찌기 시작했다. 아니 삶는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그런데 큰 문제는 없어 보이십니다?”     


  이혼이라는 큰 결정을 했음에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에 베드로가 물었다.    

  

  “결정한 것에 대해 다시 돌아보거나 후회한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지요. 앞으로 할 일만 생각합니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설픈 꽃게찜은 완성되었다. 이혼한 두 남자는 꽃게를 먹었고 그의 바지가 화제에 올랐다.     


  “어디서 이런 색깔의 바지를 샀습니까? 참 좋습니다.”
   “이거요? 저기 양복점에서 맞춘 겁니다.”     


  몇 시간 전, 밝은 갈색과 회색 맞춤 바지를 찾아왔고, 지금은 갈색의 바지를 입고 있다. 바지통이 매우 홀쭉해서 활동성은 꽝이지만 핏은 봐줄만했다. 그래서 그는 지하 홀로 내려가서 트라이 포트에 캐논 5D Mark3 카메라를 걸고 사진을 몇 장 찍어 기념했다.     


  오늘도 스터디는 있었다. 마지막 수업이었고, 다음 주부터는 각자 기말시험 준비하면 될 것이었다. 그가 지하철을 이용해 강남역으로 향했다.    

 

  “팀장님, 초췌해 보여요.”     


  1학년 학우들이 그를 보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의 얼굴이 피곤해 보였던 모양이다. 스터디에는, 그를 포함해 5명의 학우가 참가했고 뒤풀이는 30대 후반의 세 명만 남아 낙지볶음과 소주를 부었다. 자정이 다 될 무렵 자리를 파했는데, “내일 쉬어요~”라는 노 과장의 말에 그가 “한 잔 더 할래?”라고 뽐뿌 했다. 이에 노 과장이 옆에 앉은 ㅎㄹ학우에게 “신천에서 한잔하실래요?”라고 물어 함께 택시를 잡았다. 그렇게 세 사람은 빌딩 지하 홀에서 파티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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