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121. 이혼 97일 차
121. 이혼 97일 차
낯선 도시
2014년 6월 5일 목요일 흐림
빨간 스포츠카 한 대가 면목동을 향해 달리는 중이다.
“어, 지하로만 다녀서 그런지 도시가 낯설다.”
그만그만한 회색의 작은 건물들이 스치듯 지나가는데, 조수석에 앉은 노 과장이 힘없이 내뱉으며 “거리도, 간판도, 풍경도 낯서네요~”라고 덧붙였다.
이에 핸들을 잡은 그가 “낯선 도시?”라고 질문하듯 말하며 “그 좋다. 로드무비네. 여 위에 고프로 한 대 달고 쫘악 찍으면 10분짜리 영화다. 나는 오늘 스포츠카 시트 깊숙이 몸을 묻었다. 차는 도로를 질주했고 도시의 풍경들은 낯설게 다가왔다. 나는 도시에 살면서도 도시에 살지 않는 이방인인 듯하다. 지하에서 지하로 다니는 나는. 그래서 반지하 방바닥에서 기어가는 바퀴벌레 딱 때려잡고 성공을 다짐하는 거.”라고 읊었다. 이에 노 과장이 “아, 너무 우울한데요.”라고 말했다.
노 과장을 처음 만난 곳은 미디어영상학과 M.T에서였다. 신입생인 그들은 새벽까지 술을 마셨었다. 그리고 스터디까지 함께 하고 있다. 어제 지하 홀에서 늦게까지 술을 마셨으므로 401호 원룸에서 자도록 했었다.
아침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문을 열었더니 노 과장이 “일어나서 깜짝 놀랐어요.”라고 말했다. 그가 “술 먹고 자기 집이 아닐 때 순간 멘붕을 겪게 되지. 하하.”라고 웃었다. 이어, 노 과장이 “식사하셔야죠?”라고 물었다. “해장국 먹게? 좀 기다려.”라고 말하고 샤워 후 보라색 셔츠를 꺼내 입고 내려갔다.
“저만 안 씻었네요?”
그러고 보니 노 과장은 어제부터 완전 생얼이고, 목이 늘어진 셔츠를 입었었다. 열심히 직장에서 일하고 온 복장 그대로였다. 직책은 3D 건축디자인회사 과장이다.
“선지해장국 먹을 줄 알아?”
해장국을 먹으며 영화 이야기, 늙어가는 이야기를 하고,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식당을 나왔다. 그리고 헤어졌다. 이때, 지하철역으로 가는 노 과장이 초췌해 보였기에 “태워다 줄까?”라고 물었고, 그렇게 되어 벤츠 SLK 로드스터 조수석에 앉게 되었다.
“외국 여행 갔을 때 스포츠가 앞에서 사진 찍고 그랬어요.”
“그래? 그때 사진을 찍었기에 오늘 탈 수 있는 거야.”
“에? 그래요? 어쨌거나 동네가 환해지네요.”
스포츠카는 낯선 도시를 달려 사가정역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다시 한강을 건넜다. 403호 아저씨가 에어컨 설치 문제로 전화할 때도 이때였다. 그래서 원치 않게 타인의 살림살이를 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많이 가지고 사는구나.’
넓은 현관 입구부터 거실, 각 방은 행거로 연결되어 있고, 거기에는 옷가지들이 걸려있었다. 짐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 짐들에 비해 그가 가진 것은 아마존강 어느 부족의 살림살이에 불과할 정도였다.
그가 에어컨 배관 업자에게 천공할 위치를 알려주었다. 업자는 임차인들에게도 배관 설치에 대해 설명하고 비용도 말했다. 부부는 아주 난감한 표정을 지었는데 그 이유는 50만 원이나 되는 배관 및 설치비용이었다.
ㅇㅇ은행에 보낼 등기우편을 들고 우체국을 찾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미용실에 들렀다. 기존에 이용하던 2층의 미용실이 아닌 다른 곳이었다. 바꾼 이유는 단순했는데, 미용실 원장인 남자의 표정이 밝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원장은 빌딩 근처에서 살았는데, 우울한 표정으로 다녔다. [ㅇㅇ펌] 미용실 입구에는 ‘락앤락 정품 물통 1,000원’이라고 써 놓고 물통을 팔았다. 그가 하나를 집었다.
“정품이에요.”
미용실 안에서 원장으로 추정되는 풍만한 육체의 여자가 나오며 말했다.
“예뻐서요. 커트는 얼마입니까?”
그렇게 되어 물통 하나 들고 미용실로 들어가 이발했다.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느낀 것이 있었는데, ‘얼굴색이 검어졌다’라는 것이었다. 술을 자주 마신 탓에 간이 피로하다고 생각했다. 커트를 마치고 화장품 가게에서 왁스와 스프레이도 샀다. 머리카락이 가늘고 힘이 없기에 왁스를 발라줄 요량이었다.
빌딩으로 돌아와 2, 3층 고시원 복도 청소하고 음식물 쓰레기도 버렸다. 그리고 펜트하우스 냉장고를 열어 오래된 반찬들도 버리고, 용기도 세척해 쇼핑백에 담았다. 베드로가 방문할 때도 이때였다. “이거 심심할 때 드세요.”라고 말하며 참외 몇 개를 두고 돌아갔는데, 그게 저녁 식사가 되었다.
과일로 빈속을 채우며 ㅇㅇ은행 이자를 보내고, 세금 원천징수 목록을 만들어 세무사에게 메일로 보냈다. 시계를 보니 다섯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퇴근을 서둘렀다. 여자(전처)가 어디로 조문을 가야 하므로 혼자 있을 딸을 염려해 “집에 와서 자”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또, 볼보 프런트 펜더 양쪽이 찌그러진 부분을 수리해야 하므로 차를 바꿔 타고 와야 했다. 그러기 위해 몇 시간 전, 찌그러진 곳을 펴 주는 ‘덴트’라는 수리를 하기 위해 가락동에 있는 업체에 사진을 메일로 전송했었다.
“70만 원 정도 나올 것 같습니다. 하루 걸리고요.”
도색하고 싶지 않아서 덴트 업체를 찾았고, 그렇게 약속받았다. 그래서 내일 입고시키려고 하는데, 행전안전부가 주최하는 안전 운전 ucc 카센터 씬이 필요했으므로 수리하는 영상을 촬영하기로 했다.
“차 팔리지 않았습니까?”
집으로 퇴근하는 길에 양재동쯤에서 랭글러 루비콘에 관심 있는 수컷의 전화를 받았다. 랭글러 루비콘에 대해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수컷이었기에 기꺼이 “이 차는 험로를 위해 태어났기에 운전자에 대한 배려가 적습니다. 그러나 험한 길에서는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것입니다. 겨울에 사냥을 가보면 무쏘는 못 나오는 길을 랭글러는 나옵니다. 그래서 제 차 트렁크에는 구난 와이어가 들어 있습니다. 남의 차를 끌어내 주려는 것이지요.’라고 구라 초식을 펼쳤다. 그러자 수컷이 흥분해서 “지금 가면 볼 수 있습니까? 집 근처라서요.”라고 물었는데, 다행히 송파구에 서식하는 수컷이었다. 그가 “랭글러는 방배동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있습니다. 내일은 다른 차를 타야 하므로 문자를 보내면 시간 내서 송파로 타고 갔을 때 답장을 보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가격은 3,100만 원에서 깍지는 않았는데, 그저 관심병 종자로 느껴졌다.
여자는 그가 집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친구들과 승용차 두 대로 남도로 떠났다. 허기를 느껴 냉장고를 뒤져보니 3일 날 사온 참치회가 남아 있었다. 해동해 두고 소주 두 병을 사 돌아왔다. 그가 블로그에 오픈한 방송대 중간시험 성적표를 보고 강 교수가 문자질할 때도 이때였다.
“형님 장학금도 받겠는데요! 내 옛날이 생각납니다.”
“하하 신발과 바지 색깔, 그리고 마이, 선글라스가 약간 실내에서는 일반 안경으로, 나머지는 좋아요, 신발에 돈 좀, 들인 듯, 선글라스가 약간 흐려서 이상해 보임(사진에서)”
그가 통화버튼을 눌렀다.
“퇴근 안 하냐?”
“하는 길입니다. 술 적게 드시고 운동해야 해요?”
“전처 집에 와 있다. 고향 동창 조문 가서 오늘은 여기서 자야 한다.”
“참, 알 수 없는 부부예요. 형수님은 그러면서 왜 그랬대요?”
“어리바리 게기다 이혼당하고 섹파 처지로 전락한 거지.”
“그러게, 말입니다. 모양 빠지고 그게, 뭐예요. 하하.”
전화를 끊고 참치를 안주 삼아 소주 한 병을 비우고 노트북 전원을 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