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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만 Sep 02. 2024

전 처(妻)

[연재] 125. 이혼 101일 차

125. 이혼 101일 차          



전 처(妻)     


2014년 6월 9일 월요일 맑음      


  “이제는 (집에) 오려면 하루 전에 연락하라고.”

  여자의 말에 어색한 웃음이 흐른다. 그가 “알았다. 당연히 그래야지.”라고 대답했다. 이제는 전처가 되어버린 사이. 그러함에도 그는 밤에 택시를 타고 왔고, 새벽에 섹스까지 했다. 건조한 애무로 시작했으나 현란한 손기술에 여자는 연신 신음을 토했다.      


  “당신 거 넣어줘.”     

  허락받고 삽입했다. 그리고는 리듬을 타듯이 잔잔한 음악처럼 밀어붙이다 오르가슴을 느낄 때 사정했다. 그리고는 다시 곤한 잠에 빠졌다. 아침에 슬림 가운을 입은 여자를 뒤에서 껴안고 한 번 더 해보려 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렇게 여자는 골프장에 갈 준비 했다. 여자도 이혼했기에 더욱 떳떳하게 골프장에 가는 자유를 얻었다. 이혼은 이렇게 서로에게 자유와 애정을 가져다주었다.      


  지하철 2호선은 만원이었다. 빌딩으로 출근해서 세무 기장료를 송금하고 보험사 직원에게 면허증 번호와 계좌번호를 알려주었다. 보험사 직원이 “주행 거리가 나온 사진을 하나 보내 주셔야 합니다.”라고 말하기에 여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잠심 후 전화가 걸려 왔는데 “차를 바꿔 타고 골프장으로 가고 있어.”라고 말했다. 하여, 보험사 직원에게 “저녁에 처리될 것 같습니다.”라고 알려주었다. 보험사 직원이 “수리업체와 통화가 되었습니다. 고객님 계좌로 50만 원이 내일쯤 입금될 것입니다.”라며 사건의 종결을 알렸고, 수리업체도 계좌번호를 문자로 보내왔다.      


  ㅈㅎ이는 술을 많이 마시면 오줌을 싸는 버릇이 있는지 401호 바닥이 흥건했다. 이불도 세탁기로 세탁했는지 젖어 있었는데, 사정을 물을 수 없어서 다시 세탁하고 옥상에 널었다. 햇살이 너무 좋아서 빨래를 말리기에는 더없이 좋았으나,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싶었다.


   안양 빌딩 건축 현장에서 전 소장이 전화를 걸어와 “하남 타일업체에 함께 가셔요.”라고 말했다. 잠시 후, 전 소장의 X5를 타고 나타났다. 데후 밋션이 수리가 된 모양이었다. 조수석에 올라 하남 미사리에 있는 타일업체로 향했다. 창고형 타일업체에서는 키가 훤칠하고 수려한 외모의 젊은 여자 직원이 메모지를 들고 전 소장 뒤를 따랐다. 나이는 스물대여섯쯤, 날씬한 몸매에 갈색 안전화가 귀여웠다. 코는 필러를 한 것 같이 오뚝했고, 쌍꺼풀도 선명했다. 또 일도 어찌나 야무지게 잘하는지 이것저것 추천도 하고 단가도 알려주었다.      


  정작 그는 엘리베이터 전면 타일과 바닥타일, 주인 세대 현관 및 화장실 타일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화이트 톤을 고집했기에 밝은 색 계열로 선택했고, 거실 화장실 세면기는 기존의 제품이 아닌 볼 형태로 하기로 했는데, 방문객들에게 포인트가 되게 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리고 옥상 수영장 타일도 선택했다. 공사비는 준공 후 지급하기로 했으나 ‘이자를 부담하고 먼저 지급’ 받고자 하기에 “나쁘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고시원 공동주방에 가니 밥이, 서너 숟가락 남아 있었다. 일단 그것을 먹고 밥을 새로 지었다. 그리고 낮잠을 청했으나 배가 고파서 다시 일어났다. 새로 지어진 밥을 한 공기 퍼 와서 어제 남은 상추로 쌈을 싸 먹었다.     


  지하 홀로 내려가 드럼 연습을 하던 중 채무자 박 사장의 전화를 받았다.      


  “사장님, (토지주 아주머니가) 2억을 주면 소유권 이전을 해 주겠다고 하는데, 하시지요.”   

  

  토지 소유자가 받을 금액은 5억 원이다. 그런데 2억 원에 합의하자고 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박 사장의 제안은, 그에게 ‘2억 원을 더 주고 토지를 사 달라’라는 것이기에 실익이 없어서 거절했다. 근저당 설정된 토지는 내년에 경매절차를 통해 그가 낙찰받던지, 아니면 다른 건축업자가 낙찰받을 것이다. 그는 연체이자까지 회수하면 손해는 없으니 지금 나설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지 않아도 토지 소유자는 5월 28일 법원에서 부동산 경매 진행 관련 서류를 열람했다. 저들도 살 궁리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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