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이 바뀌었다
가사도우미를 구하는 글을 올린지 한달이 지났습니다. 약속한 사람들은 오지 않았구요.
그래서 계획을 바꾸었습니다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야겠다"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면 창피해서라도 집을 좀 치우지 않을까 싶은 사면초가의 마음으로 계획을 바꾸어 보았습니다. 영어스터디 멤버인 안나(한글이름도 안나)와 그녀의 두 아들을 주말에 초대했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돌아가는 길에 우리집에 잠시 들르라 이야기했습니다. 그녀는 아이들과 빈 손으로 왔음에 부끄러워했지만, 청소도 안하고 친구를 부른 제가 오히려 더 부끄러웠습니다. 그래도 귀한 손님 오는 날이라 현관부터 대문까지 계단을 쓸었습니다. 차라리 부엌이나 거실을 정리할것이지 티도 안나는 계단을 쓸고 있는 제 자신이 조금 부족하다 여겨졌지만 멈출 수 없었습니다.
계단 청소를 하겠다고 생각한 뒤 빗자루를 한번 잡으면 그 끝에 다다를 때까지 멈출 수 없습니다. 저도 모르는 어떠한 힘에 이끌려 끝까지 해내야하는 마법의 힘을 계단이 가지고 있는듯 합니다. 청소한 나만 알 수 있는 깨끗함을 느끼고 뿌듯해 할 즈음에 그녀와 그녀의 아이들이 도착했습니다.
영광의 빗자루를 흔들며 주차장 앞에서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수신호로 주차를 도왔습니다. 저혼자 신나해하는 모습을 앞집 개 두마리만 꼬리를 흔들며 바라봐주었어요. 그 녀석들에게 설날에 뼈다귀모양 간식을 가져다 줄 생각입니다. 저를 응원하는 눈빛이었거든요.
암튼 깨끗한 계단을 소개하며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올라갔습니다.
전원주택의 자랑이자 돈먹는 애물단지 정원을 소개하고 현관을 열어주었습니다. 집을 설계할 때 전실이라 불리는 현관을 방만하게 크게 만들었습니다. 외국에서 부잣집 사람들이 응접실이라고 만든 공간을 따라한답시고 만들었는데 아주 커다란 신발장이 되어버렸어요. 공간 활용 실패지만 처음 오는 사람들은
"현관이 이렇게 넓다고?"
놀라워 합니다. 일단, 현관에서 기선을 제압하는 대기업 마케팅을 따라한 거라고 어색한 핑계를 가져다 댑니다. 중문을 여는 순간부터 아주 놀라운 집 소개를 하게 됩니다.
중문을 열고 오른쪽으로 거실과 부엌이 보이는데 거실에 단차를 주어 계단 두개를 내려가야 합니다. 이 역시 외국 부잣집에서 높은 천장을 사용하고 앞으로 보이는 정원과 하늘을 더 즐기기 위해 만든 구조같습니다. 남편이 강력하게 밀고 나간 구조인데 아이를 낳은 산모의 발목이 시큰거리기 시작해요. 남편은 십여년 후에는 막아버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렇게 아이들이 반할만한 재미난 구조의집을 치우지않고 민낯으로 보여주었어요. 원래의 계획은 손님이 오기 전에 좀 치워야 하는 것인데 엉뚱하게 계단만 청소했으니 실패라 생각했습니다.
우리집에서 나가 내 흉보지 않을 친구라 부끄럽지 않게 초대해 따뜻한 호박죽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이층에 올라가 장난감 가지고 신나게 놀았구요. 다음에 오면 예쁘게 치워놓기로 약속하고 그들을 보내주었습니다. 차고문이 열리는 순간에는 친구 아들이 소리도 질렀습니다. 이런 맛으로 차고 문을 열고 닫습니다. 개인 차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 순간의 기분을 조금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집에 가는 길에 친구가 보낸 카톡입니다.
"애들이 작가이모집이 우주보다 멋있대요~~~"
남편에게 자랑했습니다. 남편은 우주에 쓰레기가 많아 문제가 심각하다는데 그 아이가 지저분한 우리 집을 빗대어 표현한거 같다고 했습니다. 정리 못하는 아내를 여러방면으로 웃기려고 재미난 말을 많이 하는 남편입니다.
저는 우주보다 멋진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집순이가 아니라 집에 정도 없고 시간나면 밖으로 나갈 궁리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우주보다 멋진 집이라 이야기해주니 갑자기 제가 있는 이 공간이 멋지게 느껴지더군요. 밤에 책을 뒤로하고, 글쓰기를 뒤로하고 부엌을 정리했습니다.
밤에 정리해도 아침에 아이 등원하고 나면 다시 의미없어지는 공간이지만 나의 우주라는 생각에 그 정리하는 밤시간이 즐겁게 느껴졌습니다.
나의 우주를 사랑하고 더 열심히 정리해야할 거 같습니다.
당신의 우주는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