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별의 지도를 건너다

1장- 서울, 떠나기 전

by 서 온 결

"온결야, 넌 네 별이 어디 있는지 궁금하지 않아?"


수현이 찻잔을 손바닥으로 덥석 감싸 쥐고, 노트북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렸다.

세계지도가 펼쳐져 있고 그 위에 가느다란 선들이 고샅길처럼 얽혀 있었다.

붉디붉은 선, 이내 푸르게 스며드는 선, 금빛이 어슴푸레 감도는 선.

마치 사람살이의 들숨날숨이 지구 위에 줄지어 찍힌듯했다.

그 선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민서는 어쩌면 지금, 자신이 풀 지 못하는 엉망이 된 실목걸이 같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처럼 말이다.


"이게 뭐라고 했지?"

"아스트로카토그래피. 네가 태어난 찰나의 하늘을 지도 위로 끌어내린 거야. 이 선들이 너를 이끌 장소들 이래."

"운명을 지도로 말한다고?"

"그래. 여기 봐, 금성라인. 일본을 가로지르네. 아름다움, 관계, 기쁨. 네 마음이 달보드레해질 곳이야."


(수현이의 달보드레하다는 표현에 입가에 웃음이 나왔다.

수현이는 어린 시절부터 외할머니랑 함께 지냈다. 그 외할머니가 국어를 사랑하는 분이셨는데, 어디 교수님이라고 얼핏 들었던 거 같다. 그 영향으로 수현이의 말속에는 항상 우리말이 사랑스럽게 섞여 있었다. 다른 친구들이 '스위트하다'는 표현을 할 때, 수현이는 '달보드레하다'는 표현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런 그녀의 말솜씨가 좋아 아마도 더 가까이 지냈던 거 같다. 우리말을 멋지게 사용하는 그녀를 볼 때마다 외국에서 유학을 하고 온 친구들보다 훨씬 근사하게 보였다. 몇몇 친구들은 할머니 표현이라고 놀려댔지만 말이다.

어쨌든, 나는 그녀의 봄 햇살 같은 표현들을 들을 때마다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순우리말은 마음 안에서 뭔가 힘이 솟는 말이다. )


나는 화면을 오래 들여다보다가, 책상 모서리에 놓인 오래된 레고를 만지작거렸다.

빨간 머리로 염색한 짧은 머리, 노란 배낭을 짊어지고 빨간 운동화를 신은 레고다.

레고 스토어에서 아이들과 함께 쭈그리고 앉아 나만의 레고를 꾸며 온 것이다. 아마도 내가 꿈꾸는 모습을 만들어 온 것 같다. 오래된 레고라 그 꿈이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말이다.

배낭을 짊어진 레고를 들고 모니터 가까이 걸어가는 흉내를 내본다.

순간, 나를 이끄는 장소들로 가야겠다는 강한 충동이 일어났다. 얼른 빨간 운동화부터 사야겠다!!!


언제부터일까, 길은 늘 나를 어딘가로 부르곤 했다.

레고를 수현이 얼굴 가까이에 대고 인형극을 하듯이 말했다.


"도쿄부터 가볼까."

내가 속삭이듯 말하자, 수현은 웃었다.

"그래, 네 금성라인의 첫 장. 네가 네가 되는 곳."

수현의 최신 핸드폰에서 케이팝 피아노 리믹스가 잔물결처럼 흘러나왔다.

소리가 방 안 공기를 눌러 매만지며 퍼졌다.

"근데... 무섭진 않아?"

수현이 물었다.

"무서워. 그래서 가볼래. 두려움의 결을 손끝으로 만져보고 싶어.

말은 담백했으나, 가슴속에서는 벌써 바람이 길을 냈다.

야간버스, 터미널, 공항의 푸른 조명, 탑승구 앞 고요.

삶이 이윽고 새로운 쪽으로 고개를 드는 소리였다.


밤이 깊어 창밖 골목이 검푸르게 가라앉자, 수현이 다시 말했다.

"온결야, 기억해. 지도는 길을 가리키지만, 길은 네 발로 만든다."

"응. 내 발로."

우리는 찻잔에 남은 미지근한 온기를 함께 나눠 마셨다.

떠남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