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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 온 결 Jan 25. 2024

글쓰기 배우러 서점에 가요

아이를 업고 글쓰기 수업을 갑니다

화요일 아이 트니트니 수업, 수요일 영어스터디, 목요일 글쓰기수업, 목요일 아이 한의원


일주일 저의 고정 스케줄입니다.

첫째 어린이집 보내고 하원할 때까지 집에서 놀고먹는 엄마입니다. 놀고 먹는데 너무 바빠요. 백수가 과로사 한다고 집구석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해도해도 끝이없고 쉬는 시간도 없고 퇴근도 없는 블랙홀 같아요.


그 중에 제가 숨통을 트는 시간은 목요일 오후 1시에 이루어지는 글쓰기 수업 시간입니다. 목요일은 첫째 어린이집 보내고 둘째를 빠르게 재웁니다. 그래야

오전에 글을 정리해서 수업이 시작되는 1시 전까지 작가님에게 보낼 수 있거든요. 제 마음 같이않게 아이가 보채는 날이 있고, 너무 힘들어서 잠깐 눈 붙인다는게 1시가 다 될때까지 기절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긴장하고 정신 바짝 차린 저는 시계를 계속 보게 됩니다. 오늘은 AI 이미지를 찾는답시고 잠시 다른 사이트를 들어갔다가 답답이 AI와 실랑이하느라 오전 시간을 다 보냈습니다. 누구한테 하소연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럴싸한 이미지를 얻은것도 아니라 허망하게 날려버린 시간을 아까워하며 가방을 꾸렸습니다. 아이 분유, 아이 기저귀, 아이 간식과 쪽쪽이, 손수건 여분을 챙기니 이미 가방이 가득찼어요. 정작 가져가야 하는 노트북과 노트하나가 안들어갈 정도로 빵빵해진 가방을 야속하게 생각하며 노트북이랑 노트는 손에 쥐고 주차장으로 뛰어내려갔습니다. 아이를 태우기 전에 차에 시동을 켜고 따뜻하게 해두기 위함입니다. 이제 갓 백일 넘긴 아기를 차에 싣고 다니는게 미안해 아이가 타기 전, 차를 데워 그 미안한 마음을 숨기곤 합니다.


차에 시동을 켜두는 동안 낯가림이 시작된 아이는 엄마가 보이지 않아 울고 있어요. 우는 아이를 안고 토닥거리며 계단을 내려갑니다. 주택이라 계단이 많아요. 아기띠에 걸려 넘어지지않게 조심조심하며 내려갑니다. 그나마 얼마전에 구입한 어그 슬리퍼 덕분에 신발 신는 시간은 줄어들었어요. 아이를 안으면 운동화 발에 넣고 잘 끼워넣는 시간조차 길게 느껴지거든요. 때로는 양말 안신고 패스해도 어그 슬리퍼가 있어서 든든해요. 암튼 이 슬리퍼를 끌고 아이와 서점을 향해 달려갑니다.


초보가 초보를 싫어한다고 하죠? 초보 운전 딱지를 뒷 유리에 두개나 붙이고 다니는 저인데, 앞 차가 주차장 앞에서 꾸물댄다고 크락션을 울려댑니다. 크락션 울려댄 날은 제 스스로가 부끄러워 밤에 자리에 누우면 많이 반성해요. 부족한 인격의 나와 마주해야 하니깐요. “조금 더 기다려줄 수는 없었니? ”

스스로에게 물어봐요. 오늘도 부끄러운 짓을 하며 주차장 앞에서 꾸물대는 차를 지나 주차를 하고 아이랑 책방으로 올라갑니다.


유모차도 아이 다치지 말라고 시댁에서 제일 큰 스토케 사주시는 바람에 키작맘(키작은엄마)인 저는 저보다 커다란 유모차를 꺼내 펼쳐내고 아이를 태웁니다.

“미련하다 미련해~. 작은 유모차 하나 사면 될 것을…“

매번 커다란 유모차를 낑낑 꺼내며 생각해요.


이제 글쓰기 준비가 다 되었어요.

남들은 노트북과 커피 한잔 책상에 올리는것이 글쓰기의 시작이라면, 저는 유모차를 꺼내 아이를 태우는 것이 글쓰기 준비의 시작입니다. 이 체력전이 끝나면 글쓰기는 식은죽 먹기입니다. 서점으로 가는 건물 엘리베이터는 저를 항상 설레게 해요. 엘리베이터 방송이 영어로 나오는데 그 발음이 엄청 이국적이거든요. 언젠가 녹음해서 들려드리고 싶네요. 암튼 엘리베이터에서의 찰나의 시간동안 외국에 가 있는듯한 기분이 들어요. 엘리베이터는 앞으로 들어가서 뒤로 나가는 형태인데 이것 역시 ‘나니아 연대기’ 멋진 장면같아요. 옷장문을 열고 나갔을 때 차가운 설원이 펼쳐지는 몽환적인 장면처럼 차가운 회색 주차장애서 닫힌 문이 반대편 문이 열리면 따뜻한 벽돌로 이루어진 건물이 보여요.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최고그림책방”


제가 글쓰기를 배우는 작은 책방입니다. 탱크같은 아이의 유모차를 끌고 들어 가면 따뜻한 책들의 기운이 저를 맞이해요. 벽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억한다고 들었어요. 살인사건이 일어난 곳이 이유없이 스산한 기운을 갖는것은 벽이 그 일을 기억하고, 해가 잘 드는 카페의 테라스를 가면 별다른 일 없어도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그것도 그 카페의 벽이 사람들이 즐겁게 나누고 간 이야기들을 기억해서 그런거래요. 저는 그 벽의 이야기를 믿어요. 그래서 집에 들어가기

전에 안좋은 일이 있는 날에는 근처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잔 하고 들어가요. 나의 안좋은 기분을 집안으로 가지고 들어가기 싫어서요. 커피를 마시며 조금 풀어진 마음으로 집안에 들어가 좋은 기분을 벽들과 나눠요. 이 작은 책방의 기운은 정말 좋습니다. 기운이 없을 땐 기운을 채워주도 제가 기운이 넘치는 날에는 그곳에 저의 기쁨을 가득 부어놓고 나옵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남겨놓은 좋은 기운이 있는 공간이예요.


우리는 서로의 가벼운 안부를 물어요. 실은 우린 인스타 친구예요. 뭐하고 사는지 말하지 않아도 뻔히 다 알지만 가끔 만나는 친구보다 매일 보는 친구랑 할말이 더 많은거 아시나요? 짧은 안부는 글쓰기의 좋은 소재가 되기 좋아 급하게 메모를 해댑니다. 작가님은 작가님 노트에 저는 또 제 노트에 안부를 물으며 한 손으로는 계속 메모를 해요. 누군가 지나가며 본다면 참으로 재미난 모습일겁니다.


글쓰기 수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궁금하시죠?


작은 책방에서 시작된 글쓰기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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