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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 온 결 Jan 22. 2024

세 자매

당신은 사주팔자를 믿으시나요?


1981.05.21. 未시.      


이것은 나의 사주다.

나의 사주에는 "형제들과 멀리 떨어져 살면 그들과 사이가 좋다.  "이렇게 나온다. 사주 보며 가장 인상적인 글이었는데, 살다 보니 그 글이 항상 와닿는다. 멀리서 가끔 안부를 전하고 좋은 소식에 만나 밥 먹다 보니 자매들 사이가 여간 좋은 게 아니다. 카톡은 피할 길이 없어 만남보다는 더 자주 이야기하지만 말과 달리 글은 나의 상황을 조금 더 생각하고 이야기해 서로에게 예의를 차릴 수 있다. 만나면 그게 참 어려운데 말이다.      


나는 79년생 양띠 언니와 82년생 개띠 여동생이 있다. 

세 자매를 낳고 엄마는 시어머니 돌아가실 때까지 사랑받지 못한 며느리가 되었다. 엄마는 말하지 않았지만 어린 나의 기억에도 친할머니는 그렇게나 쌀쌀맞고 차갑게 엄마를 대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나 역시 할머니를 싫어했으니 말이다. 그 시절 아들은 하나 낳아야 하는데 딸만 셋이라는 말을 굳은살 배기 듯 듣고 살았을 엄마가 조금은 딱하다. 하지만 지금은 딸들이 엄마 아빠를 얼마나 살뜰하게 챙기는지 그 서러웠던 시절을 다 보상받고도 남는다. 아들이 있었으면 아빠 닮아서 엄마 고생만 시키고 결혼한다고 집안 등골 빼먹었을 거라는 상상의 못된 아들을 하나 만들어 세 딸들은 만나면 입 아프게 그러나 지루하지 않게 매번 있지도 않은 아들을 험담하며 즐겁게 이야기한다.      

 

언니는 성격이 이상하다.

아마도 이름에 我 ‘나 아’ 자가 들어가서 그런 거 같다. 두 살 많은 언니는 성격이 이상하지만 어릴 적 나의 우상이다. 공부도 잘하고 예뻐서 친척들을 만나면 항상 언니 칭찬으로 인사를 시작했다. 언니를 보며 코는 백만 불짜리요 눈은 오백만 불이다.라는 실없는 소리를 했던 친척 아저씨도 있었다.  언니는 그 백만 불, 오백만 불짜리를 수능 끝나고 강남 가서 다 갈아엎고 꿰매고 찢고 했다. 그 시절 엄마랑 동생도 다 같이 성형 수술을 했다. 그래서 가족모임을 하면 나 빼고 다들 닮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런 유전적이지 않은 인공적인 이유로 말이다. 그래서 한참 동안 그녀들은 나도 그 병원에서 눈 쌍꺼풀 만이라도 하고 오라고 성화였다. 식구들에게 달달 볶여 그래 나도 수술을 하겠노라 약속하고 집에서 수술비를 받아 외국으로 배낭여행을 가버렸다. 그 이후로 눈 수술하라는 말이 쏙 들어갔다. 지금 하라고 하면 당장 가서 눈도 찢고 쌍꺼풀도 하고 올 텐데 말이다. 그 당시에는 성형수술보다 배낭여행이 더 간절했던 거 같다.


그래도 이상한 성격을 감추고 결혼까지 성공한 언니는 인천 서구의 대장 아파트를 분양받아 아주 잘 살고 있다. 자신의 아파트가 최고라고 대장 대장 거리며 가족 채팅방에 아파트 시세를 틈틈이 올려준다. 아무도 관심 없지만 그녀 역시 지치지 않고 올려준다. 집안 식구들도 언니의 성격이 대단히 유별나다는 걸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언니를 데리고 가 준 형부에게 극빈대접을 한다. 형부는 우리 집의 VIP다. 저 성격을 어찌 보듬고 사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형부네 어머니 성격이 장난 아니란다. 여장부 같은 분이신데 아들은 그런 강한 어머니 품에서 자라 언니 정도 성격은 아주 가볍게 생각하는 거 같았다. 심지어 귀엽게 받아들이기도 하신다. 역시 귀한 형부다. 웬만해선 언니 잔소리에 남자 한 트럭은 도망갈 텐데 말이다.


그래도 생활력이 강한 사람이라 악착같이 모아 두 아이를 키워 방학 때마다 해외여행을 다니며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다. 타고난 성실함으로 공무원이 되어서 주말에도 부지런히 나가 아이들 학원비를 벌어오는 사람이다. 손재주가 많아 집안 식구들 네일아트며 파마 심지어 눈썹파마까지 직접 해준다. 명절에 만나면 모두가 뽀글 머리가 되어 돌아간다. 나 역시 지난주에 뽀글 머리가 되어 모자를 쓰고 다니고 있다. 파마를 한다는 거지 잘한다는 건 아니다. 재주가 많은 사람인데 집안에서 금전적으로 뒷받침해 줬다면 더 좋은 자리에서 빛나는 업적들을 쌓았을 것도 같다. 그 재주는 언니의 첫째 아들이 고스란히 물려받아 미래의 아티스트로 거듭날 거 같다. 조카가 그리는 그림이나 클레이로 만드는 장난감들을 보면 예술에 식견이 없는 나도 감탄할 정도다. 재능은 타고나는 거 같다.      


동생은 82년 개띠.

이름에 善 ‘착할 선’이 들어가 정말로 착하게 산다.

내가 돈 없어 여행을 못 가고 집에서 몸살이 났을 때에 금전적으로 지원해 준 사람이 동생이다. 그 당시 둘 다 대학생이라 돈 없기는 마찬가지였을텐데 한 푼 두 푼 모아둔 돈을 언니 여행경비로 선뜻 내어준 고마운 동생. 내가 작년에 집 지을 때, 정권이 바뀌고 모든 대출이 막혔을 때에도 동생이 차용증 하나로 돈 오천을 빌려줬다. 아니 이 녀석이 언제 이렇게 모았나 기특할 정도였다. 이자는 높이 받아갔지만 그래도 착한 거다. 돈 빌려주는 사람은 무조건 착하다. 


언니가 미술 쪽으로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면, 동생은 글 쓰는 쪽으로 재능이 있다. 그녀의 글을 따로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여기저기서 수상한 경력들이 꽤 된다. 무조건 상금이 있는 곳에서만 글을 쓰는 글쟁이지만 그래도 나름 뛰어난 실력을 갖춘듯하다. 언젠가 로또가 되면 직장 때려치우고 글 쓰며 살겠노라 했는데 로또 살 돈이 아까워서 사지 않는 사람이다. 그녀가 로또에 당첨될 확률은 ‘제로’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 앞으로도 결혼 생각은 없으시단다. 사주에 결혼하면 남자 먹여 살려야 하는 팔자라고 했단다. 그럼 왜 결혼해서 고생하느냐고 자기는 결혼하지 않겠노라 이야기했다. 그녀를 데리고 갈 눈먼 놈도 없으니 그녀의 다짐은 이루어지리라.


동생은 덩치가 크지만 체력은 약해서 버스 타고 명동만 다녀와도 코피가 난다. 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체력에 대해 잘 인지해서 움직임을 최소화하며 살고 있다. 회사와 집을 최단거리로 잡아서 걸어 다니고 집안에서도 움직임을 아껴 먹고 누워있기만 한다. 그러니 살이 찌지. 언니랑 가끔 동생 오피스텔에 가서 반찬 채워주고 오는데 살림이 너무 심플해서 안쓰럽긴 하다. 돈 아끼느라 아무것도 사지 않고 미니멀족으로 사는 동생. 그 돈 다 모아서 나 빌려주기도 하니 아끼는 일에 대해 뭐라 잔소리할 입장이 아니다. 가족들은 몸이 약한 막내 동생이 직장 다니며 사람구실 하는 것만으로도 눈감고 죽을 수 있다 이야기한다. 그만큼 막내딸에 대해 큰 기대 없이, 관심 없이 잘 보살펴주고 있다. 그녀 역시 남들의 과도한 관심과 연락에 대해 거부감을 느낀다.


일본의 은둔형 외톨이를 즐기는 그런 아이이다. 빨리 남은 삼천만 원을 갚고 잔소리를 시작하고 싶다.   

   

나는 둘째다.

어릴 적 이름을 한자로 적을 때면 언니와 동생 모두 定 ‘정할 정’을 쓰는데 나만 貞 '곧을 정‘을 썼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아빠는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하도 발로 차고 씩씩해서 아들인 줄 알았다고 한다. 엄마 아빠의 기대와 달리 내가 딸이라 실망한 마음에 출생신고도 미루고 안 했단다. 보다 못한 착한 아빠 친구가 동사무소에 가서 출생신고를 했는데, 착하기만 했던 그 친구는 내 이름의 '정'을 물어보지도 않고 아는 한자를 쓰셨나보다. 착하기만 하셨던 아빠 친구가 임의로 한자를 써서 나만 한자가 달랐던 것이다. 결혼할 때 날짜를 잡으러 철학관을 갔는데, 곧을정貞은 사람 이름에 쓰는 한자가 아니라며 이름을 바꾸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그 이후로 좋은 이름을 짓는 사람을 수소문해서 지금은 다른 이름으로 바꾸었다.


서온결.

집에 복이 많이 생기고 건강해지는 이름이란다. 이렇게 나는 이름을 두 개 가지게 되었다. 


둘째는 좋은 점이 많다.

언니가 있어 의지할 수 있고, 동생이 있어 그저 든든하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에도 요즘 말하는 왕따나 은따를 겪지 않은 것은 자매들이 친구가 되어 항상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외로움을 느낄 시간이 없었다. 언니랑 싸우면 동생한테 가서 언니 흉을 보고, 동생이랑 싸우면 언니한테 가서 또 흉보며 혼내주자 작전을 짜기도 했었다. 어릴 적 우리 세 자매는 매일같이 싸우고 화해하며 바쁘고 정신없이 지냈다.


나는 두 딸을 낳아 키우는데 이 녀석들도 커 가면서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며 살아가길 바라고 있다. 시댁에서는 둘째가 딸이라 대놓고 섭섭해하셨다. 시아버지는 아들 낳으면 벤츠 사주신다는 말도 하셨다. 벤츠보다 더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딸아이를 안으며 한없이 사랑을 전해준다.


남편과 나는 셋째 계획이 있다.

아들이 없어서 하나 더 낳아보자는 심산이 아니다. 우리는 항상 아이 셋을 낳아 키우자 이야기했었다. 남들은 셋째도 딸이면 어쩌냐 걱정하지만, 나는 오히려 자매들의 우애를 기대해 본다. 내가 그랬듯이, 우리가 그랬듯이 말이다.      


요즘 엔화가 싸서 모두들 일본 여행을 떠난다.

나도 금요일 밤 홈쇼핑에 나오는 일본 여행을 보며 우리 자매들 여행을 계획해 보았다. 짠순이 동생은 돈이 아까워서 안 갈 것이고, 언니도 주말에 아이들 학원비 벌어야 한다고 안 갈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우리 세 자매의 일본여행을 추진할 생각이다. 남편 몰래 모아둔 돈으로 올해 세 자매의 일본 벚꽃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우리는 한 번도 같이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여행 가서 싸우고 오겠지만, 그래도 젊은 날의 우리를 기억하기 위해 꼭 한 번은 떠나고 싶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 아래서, 세 자매가 일본 전통 옷을 입고 브이 하며 찍은 사진을 카카오 배경사진으로 올리는 날이 오기를 꿈꾸어본다. 비행기 타기 전, 공항 라운지에서부터 싸우고 있을 우리 세 자매의 모습이 벌써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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