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에게 나의 집구석을 보여준다는것
“안녕하세요, 오늘 아침에 차가 수리 들어가서 죄송하지만 오늘 못 갈 거 같아요. 차후에 다시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럼 미리 연락을 주시지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이 다 되어서야 못온다고 메시지 하나 보내다니...당장 오늘이 남편 생일이라 갈비찜이며 잡채 만들 재료들을 다 사서 유모차에 싣고 다녔구만!!! 너무 힘이 빠진다. 이 재료들을 다 어쩐담.
이렇게 힘빠지는 일이 처음은 아니다.
전원주택 가사도우미를 구하기 위해 먼저 김포에서 제일이라 하는 맘카페에 구인광고를 올렸다. 시세를 확인해보니 3시간에 5만원이면 적당하다 생각되었다. 그리고 최저 시급보다야 높으니 괜찮은 거래라 확신했다. 그리고 솔직히 청소 3시간이나 할 것도 없다. 쓸고 닦고 할 공간도 없이 아이들 물건으로 꽉 차있는 애있는 집이니 말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저 청소라기 보다는 정리의 개념이었다. 거실과 주방의 어수선함을 조금 정리하고 싶었을 뿐이다. 나도 깔끔하지는 않지만 아이 키우는 사람인지라 집에 굴러다니는 머리카락은 바로바로 돌돌이 돌리고 아이들, 남편 그리고 나의 건강을 위해 하루에 한번 환기시키고 이불털고 바닥 정도는 치운단 말이다. 그러고도 조금 부족한 부분들을 정리해주십사 하고 사람을 구하는건데 이렇게 사람 만나기가 어렵다.
이번이 4번째이다. 처음에는 연락을 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기쁘고 설레서 신학기 짝꿍을 만난 여중생처럼 연락처를 주고받고 안부를 물으며 약속한 날까지 연락을 이어왔다. 그러나 반복되는 차 고장이라는 메시지를 받고 나서는 나도 마음이 조금 단단해져 이번에는 연락처를 주고받지도, 카톡에 친구추가도 안했다. 솔직히 그 상대방의 전화번호도 묻지 않았다. 이름조차 말이다. 그저 카페 채팅창으로 주고받은 주소와 만나기로한 날짜만 확인했을 뿐이다. 나 역시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거절의 메시지에 대한 실망감을.
어젯밤 가사도우미가 올 것이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바로
“화장실 청소는 시키지 말자”
밥을 먹으며 이렇게 무덤덤하게 이야기했다.
“그치? 우리가 쓰는 곳인데 청소하라고 하기 좀 그렇네”
“내가 밥먹고 화장실 한번 청소할게”
내가 남편에게 반한 부분이 바로 이런 부분이다. 나와 남편의 성격은 정말 다르지만, 사람을 대하는 마음의 결이 참 비슷하다. 나 역시 가사도우미로 우리집에 와서 쭈구리고 앉아 화장실 청소를 할 ‘그녀’가 안쓰러워 궂은일은 시키지 말자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제 오늘 안하던 부엌 정리를 끝내 놓기까지 했다. 음식물 찌꺼기 거르는 곳까지 다 쓴 칫솔을 찾아다가 박박 문질러가며 닦아 놓았단 말이다. 일하시는데 이렇게 지저분하면 안되지 하면서 너저분한 것들을 정리하고 제자리를 못찾은 것들에게 자리로 돌아가게 도와주었다. 물론 내가 옮기고 정리했다는 소리다. 아, 물론 내가 했어야 하는 것들인데 안하고 있었지.
그렇게 부엌과 화장실이 정리되니 뭔가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장봐온 소갈비의 핏물을 빼는 동안 잡채에 들어갈 채소들을 다듬고 커다란 냄비에 물을 바글바글 끓여서 고기를 넣고 한번씩 데쳐 주었다. 양념을 부어 압력솥에 데친 고기를 넣고 불을 세게 올려 두었다. 잡채의 채소들을 모두 집합시켜 불려둔 당면과 달달달 볶아내니 제법 생일상차림이 되어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편이 좋아하는 진미채 소스를 자작하게 만들어내 불려둔 진미채에 버무려 반찬을 완성했다. 이 와중에 다행인 것은 둘째 순둥이가 보채지 않고 푹 잠을 잤다는 것이다. 아이가 보채면 엄마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몸이 하나이니 보채는 아이 안고 뭐 하나 제대로 해내기가 너무 힘들다.
어제 오늘 가사 도우미가 온다고 부엌을 치워둔 덕분에 넓고 깨끗한 공간에서 재료들을 마음껏 펼쳐놓고 요리할 수 있었다. 빈 공간이 주는 창작의 기회이다. 끼리끼리 논다고 가끔 아이 둘 키우는 친구랑 화상통화를 할 때가 있다. 그 친구의 집도 우리집이랑 비교해 만만찮게 지저분하고 어수선하다. 서로 보이는 배경을 창피해 하지 않으며 너도 그러냐? 나도 그렇다. 하며 쌓여있는 빨래더미를 보여주고, 해치워야할 설거지를 보여주고, 정리가 가능할지 가늠이 안되는 아이들의 장난감을 보여준다. 친구는 호텔에서 주말을 보내거나 휴식을 취하는 호캉스 패밀리다. 서울 근교의 호텔은 다 가본듯하다. 집 안치우고 쉬고 싶을 때는 아이들 데리고 호텔가서 쉬었다 온다고 한다. 어라~ 아주 신박한 방법이구나 생각했다.
나 역시 호텔을 사랑하는 여자다. 호텔 최저가 프로모션이 나오면 눈이 커지고 심장이 두근두근하는 사람인데, 혼자 호텔에 가는걸 좋아했다. 결혼하기 전에 말이다. 호텔에 들어서면 잘 정리된 침구며 아무것도 올려져있지 않은 책상이 너무 좋았다. 강남의 인터컨티넨탈 스위트를 갔던적이 있는데, 그곳의 아주 중후한 서재 책상이 있었다. 호텔이랑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스위트 룸이라 인테리어를 위해 가져다 놓은것이겠지 싶었다. 커다란 책상에 반듯하게 놓인 종이와 펜. 무엇이든 써내려갈 수 있을것만 같았다. 실제로 호텔에 비치된 작은 메모지에 이것 저것 엄청 써대고 그려냈던거 같다. 그리고 도도하고 빳빳하게 깔아놓은 하얀 호텔 침대 커버에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쉬었는데 그때가 참 좋았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인거 같다. 시간이 흘러 내가 챙겨온 물건들로 어수선해진 화장대며 책상 위 그리고 침대를 보면 글쓰고 싶은 생각이 또 싹 사라져버렸다. 빈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휴식과 채움의 시간이 분명 있다고 믿는다.
가사도우미를 맞이하는 전날 이렇게 남편과 나는 부지런히 대청소아닌 소청소를 하는데, 남에게 보이기 부끄럽지 않을 정도는 되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치우다보니 참 깔끔하게 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가사도우미가 와서 다 해줄 부분임에도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 싶은 마음이다. 다시 맘카페에 글을 올려야 할 거 같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사진을 첨부할 생각이다. 그리고 이층 방들의 사진도 올려 이곳은 정말 깨끗한 곳이니 걱정마세요. 치울게 하나도 없습니다. 160평의 이층집이란 집의 정보에 지레 놀라지 않게 설명을 해놓을 생각이다. 그저 거실과 부엌만 치워주세요. 아니 정리해 주세요. 제가 정리가 서툰 사람이라 배우고 싶어서 그렇답니다. 이렇게 올려야할까? 이렇게까지 사정해서 모셔와야 하는것인가 잠시 생각하게 된다.
전원주택 가사도우미라고 크게 다를게 없다.
다만 눈이오면 눈이 내리는거 보면서 같이 커피 한잔하며 마당을 지키는 소나무에 쌓이는 눈을 보면 되는 것이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비슷하다. 유별난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니 부디 나의 집에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