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세린처럼 변하지 않고 사랑받으며 예뻐질 수 있을까
바세린은 나 어릴적 티비 선반 옆에 항상 놓여져 있었다. 커다란 통에 든 바세린은 내가 아주 어려 그 통을 열지 못할 때부터 있었고,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지 봤으니 근 10여년을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이제와서 돌이켜보건데 분명 그것에게도 유통기한이라는게 아니 소비기한이라는게 있었을터인데 참으로 대견하게 우리집에 잘 붙어 지냈던거 같다.
넘어져 다쳐 무릎에 피가나면 간단하게 물로 헹구고 바로 바세린을 발랐다. 요즘처럼 유난스러운 밴드도 없었다. 물론 있었겠지~ 그러나 우리집에서 몸에 밴드 붙이고 다닌 딸이 없었다. 그저 바세린 하나가 만병통치약이었던 것이다. 나는 어릴적 유난히 입술을 잘 뜯는 아이였다. 어린시절의 몇장 안되는 사진을 보면 입술을 잡아 뜯어 항상 퉁퉁 부어있었다. 엄마는 그런 나에게 바세린을 항상 듬뿍 발라주었는데 바세린의 꿉꿉하고 답답한 질감이 입안까지 전해져 돌아서서 닦아내곤 했다. 그래서 사계절 내내 입술이 부어있는 덜 사랑스러운 아이의 모습으로 자라왔다. 바세린은 나에게 몸 어디든 상처가 난 곳에 바르면 되는 그런 약이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내가 중고등 학생 시절을 지나면서 넘어져 다칠일이 없었던 시절에는 바세린과의 만남이 뜸했다. 그 시절에는 니베아 립글로즈가 유행해서 텁텁한 바세린을 입술에 칠하고 잘 일도 없어서 더욱 바세린의 존재를 잊고 살기 좋았던거 같다. 대학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점점 건조해지는 손과 발에 바세린을 바르기 시작했다. 아! 물론 어릴적부터 써오던 그 유통기한 날짜조차 지워진 그 바세린은 아니다. 바세린과 어울리지 않는 작은 고체향수 통에 바세린을 섞어 넣어 바세린의 부드러움과 고체향수의 진행 향기를 섞어 손에 부지런히 바르고 다녔다. 작고 귀여운 통이라 항상 가방에 넣고 다니며 차를 기다리거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시간이 남을 때 소일거리처럼 손에 부지런히 발라댔다.
남편이랑 한남동에서 데이트를 하던 날이었다. 결혼하기 전이라 남편 만나러 나가며 하얀색 높은 구두를 신고나갔었다. 하얀 구두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어느 구두회사의 광고에 꽂혀 멋들어진 높은 구두를 신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지금이야 그 구두들 다 나눔박스에 담아 처리하고 슬리퍼와 워킹화가 신발장을 차지하고 앉아있지만 말이다. 보기만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높은 구두를 신고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하던 날이었다. 남편이 거래처와의 전화가 길어져 또 하릴없이 남편의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바세린통을 열어 건조해진 손에 발랐다. 너무 많이 찍었던 것일까 아니면 남편의 통화가 길어져 지루했던 것일까 이유없이 그대로 발에 바세린을 바르며 마사지를 해댔다. 생각없이 발라둔 그 발이 하얀 구두와 만나 문제가 발생했다. 바세린을 발라 미끌미끌 촉촉한 발이 높은 뾰족구두에 들어가니 세상 무서운 고문이 따로 없었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조차 못할 정도였는데 어찌어찌 카페를 나와 편의점을 찾아 절뚝거리며 걸었다. 눈물까지 날 정도로 온몸의 무게를 바세린을 바른 미끄러운 발끝이 지탱하고 한남동의 잘 다듬어지지않은 언덕길을 내려왔다. 나중에는 거의 남편 팔에 매달려 다닐 정도였다. 언덕을 내려와 편의점에서 삼선 슬리퍼를 사서 신고서는 그때서야 눈물을 닦으며 웃었던거 같다. 이렇게 바세린을 한번 바르면 몸에 건조한 곳 구석구석을 찾아 문지르고 싶어진단 말이다. 나는 바세린과 이런 짖궂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
지금의 바세린은 정말 귀엽다. 엄지손톱보다 조금 더 큰 통에 담겨있는 바세린 립제품이 그렇다. 아이들 입술이 마를때면 그 바세린을 잘 때 살짝 발라둔다. 우리 엄마는 입술에 덕지덕지 발라주었는데 나는 그게 참 불만이었다. 그래서 아이들 잘 때 살짝 발라두면 아침에 그들의 반짝반짝 촉촉한 입술로 뽀뽀를 받을 수 있다. 아이에게 바르고 남은 바세린을 휴지에 닦아내지 않고 아이들 손톱 끝에 묻히며 마무리를 한다. 손가시가 나오지 않게 바세린을 발라두는 것인데 그 효과가 아주 좋다. 항상 손가시를 잡아뜯어 생채기가 나 걱정을 하게 하던 큰아이도 바세린을 발라주고 난 뒤부터 손가시 자체가 나오지 않았다. 부드러운 손이 되어 잡아 뜯는 습관도 많이 좋아졌다. 손톱 물어뜯어 개구리 손가락이 된 남편에게도 시도해보았는데, 남편은 끈적끈적한 바세린이 닿는 것 조차 싫어해 실패했다. 잘 때 몰래 발라주어도 이내 공포영화처럼 눈을 떠서 기겁을 해댄다. 언젠가 남편의 개구리 손바닥에 바세린 바르고 비닐장갑 끼워서 재워봐야겠다는 다짐을 항상 가지고 있다.
투박한 바세린 통이 세월이 지나 미니미니 미니립으로 변신하는 동안 나도 나이가 많이 들었다. 손으로 입술을 잡아 뜯던 다섯 살의 내가 내년에 45살이니 40여년이 지난셈이다. 바세린은 세월의 흐름에 잘 적응해 멋지게 젊어진 것 같다. 그럼 나는 어떠한가? 나 역시 이 세월을 잘 즐기며 또 잘 적응해 지내고 있는걸까? 작은 일에도 핑계를 대며 나때는 달랐다고 이야기하는 꼰대가 되어있는건 아닌지, 아이들 키우며 엄마는 안그랬다~하는 불통 엄마가 되는건 아닌지 항상 나를 돌아보게 된다. 바세린처럼 내가 가진 고유한 자아를 잃지 않으면서 변하는 환경에 끊임없이 발맞추어 나아가고 싶어진다. 변신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 말 나온 김에 머리나 좀 예쁘게 다듬어 볼까? 바세린을 챙겨 미용실로 가야겠다. 머리 하는 동안 손과 발에 듬뿍 발라 머리 변신 후 촉촉한 손 발로 맞이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