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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 온 결 Jan 20. 2024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들

글을 쓰게 된 이야기

  “어떠한 계기로 글을 쓰게 되었나요?”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와 묻는 첫 번째 질문, 또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어릴적부터 글 쓰는게 꿈이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어느 진지한 눈을 가진 작가로부터 이 질문을 받았다. 나는 매번 답해오던 ‘어릴적부터의 꿈’이 아닌 정말 어느 시점에 내가 글을 쓰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저 가볍게 물었던 질문이었을텐데 나는 그녀에게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한 뒤 펜을 들고 생각을 했다. 더듬더듬... 내가 앉아서 글을 쓰게 된 시점을 찾으며 한달 전, 석달 전, 일년 전으로 테옆감듯 회상을 시작했고 그 시작이 바로 산후도우미의 등장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에게 돈을 송금한 그 시점말이다.      


290만원.


복덩이 둘째가 태어나면서 남편의 사업이 세계적인 불황을 뚫고 승승장구 너무 잘 풀리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아이 얼굴을 잘 못볼 정도로 새벽에 나갔다가 또 새벽에 들어오기 일쑤였다. 남편 회사의 전례없는 기회가 왔다, 다시없을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회사 관계자들의 이야기로 그의 바쁨을 전해듣곤 한다. 그렇다해도 당장 두 아이를 혼자 돌봐야 한다는 부담감에 밤 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현관에서부터 들들 볶아대었다.     

우리의 복덩이 둘째와 산후조리원을 나오면서 한 달 계약한 산후도우미의 등장은 나의 글쓰기에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산후도우미는 집안 살림과 아이 케어 및 나의 건강관리까지 모두 신경써주었다. 한 달에 290만원이 솔직히 아깝지가 않을 정도였다. 그녀가 있으면 나는 뭐든지 다 할 수 있을거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실제로 내가 무언가 하려할 때 곁에서 힘이되는 이야기를 계속 해주었다. 한번은 김미경의 마흔수업이라는 책을 선물받아 읽는데, 김미경 강사의 초창기 시절 강연장에서 버벅거리며 떨더라 그런 대단한 사람도 작은 무대에서부터 시작했노라 이야기해주었다. 그렇게 내 곁에서 나의 아이와 나를 정성껏 돌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힘나게 해주었다. 실제로 일어나 신선한 생과일 주스를 마시고 매 끼니 따뜻한 국에 새로 지은 밥을 먹으니 정말로 힘이 나기도 했다. 첫째 아이 키울때 겪은 산후통과 산후 우울증이 감히 내 곁을 올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였다.


산후도우미와의 한 달이 어찌나 빨리 지나가는지 하루하루 지나가는게 너무 아쉬울 정도였다. 산후도우미가 없는 하루가 시작된다고 생각하니 없던 우울증이 생길 거 같았다. 남편도 곁에서 이 사실을 모를리 없다. 나의 스트레스가 높아짐을 느끼면서 산후 도우미 한달 더 쓰자 이야기를 먼저 해주었다. 너무 비싸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단다. 그녀가 두 번째 달에 출근을 하면서 나의 마음가짐이 바뀌었다. 그녀가 오는 시간동안 나는 290만원, 그 돈보다 더 가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압박이 들었다. 돈은 역시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그녀가 오면 나는 준비하고 있다가 바로 도서관으로 출발했다. 어떤 날에는 아예 시동도 걸어두었다가 바통터치 하듯 그녀에게 둘째 순둥이를 건네고 바로 차타고 나가기도 했다. 점심을 준비해두는 1시까지 나는 도서관 책들에 푹 빠졌다 나와 책 냄새에 흠뻑 젖은 채 따뜻하고 정성스러운 밥을 먹는다. 그렇게 나를 위해 준비된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고나면 다시 충전된 에너지를 가지고 2층 서재로 올라간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8월에 아이를 낳고 산후도우미는 근 10월까지 나와 함께 해주었다. 그 사이에 내가 사는 마을 근처에 작은 책방이 새로 생겼다.

책방에서 열리는 무료 글쓰기 수업을 호기롭게 신청했고, 그날역시 아이를 맡기고 커피까지 한잔 내려 마신 후 서점을 찾아갔다. 임신하고 출산, 육아를 하며 이런 사람냄새 나는 모임이 얼마나 반가웠던지 일찌감치 서점에 도착했다. 수업 자리를 준비하는 사람들 사이에 어색하게 서서 서점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어두었다. 그저 어색함을 감추기 위한 습관적인 행동이기도 하다. 수업은 글 좀 쓴다고 생각하는 나 스스로를 겸손하게 만들었고, 학생처럼 글쓰기 수업의 숙제를 차근차근 따라해보기로 결심했다.      


 첫 번째 숙제는 ‘좋은 생각’에 글을 기고하는 것이다. 나도 ‘좋은 생각’의 따뜻한 글들을 접하며 커왔기 때문에 글을 보내는 것부터가 나를 설레게 했다. 김포에서 서울로 가는 김포지하철은 ‘구래역‘에서 ’김포공항‘까지 30분, ’김포공항‘에서 ’서울역‘까지가 30분 이렇게 꼼짝없이 앉아 가야한다. 나는 친정 엄마를 만나러가는 지하철 안에서 ’좋은 생각‘에 글을 올리기로 결심했다. 처음 올리는 글이라 길게 써 내려갈 근육이 아직 부족하다 생각해 짧은 시를 올렸다. 물론 당선될 턱!이 없다. 정성도 없이 지하철에서 30분동안 끼적이며 올린 글이 당첨될리가!! 그러나 ’좋은 생각‘의 편집부는 엉터리 시를 올린 나에게 기특하다며 12월 잡지를 보내주었다. 그 책 한권을 받아보니 그렇게나 감격스러울수 없었다. 투박한 종이봉투에 담겨 온 ’좋은생각‘12월호. 그 날 이후 힘을 내서 ’좋은 생각‘에 글을 더 보냈다. 이번에는 시간과 정성을 들여 긴 에세이를 써내려갔다. 당장 내 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싶었지만 한참이나 ’검토중‘이라는 했다. 그렇게 한달을 더 보내고 나니 글을 쓰는 일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책방에서 내준 두 번째 숙제는 ‘제목 따라하기’였다. 베스트셀러 책들의 제목을 하나씩 따와 비슷하게 따라하는 것이다. 이 숙제는 내가 너무 좋아하는 시간이다. 짧은 시간동안 창작의 기쁨도 느끼고 모방의 희열도 함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제목을 뽑으며 좋은 소재가 될만한 것들은 형광펜으로 따로 그어두었다. 예전의 베스트셀러들 제목을 보니 내가 읽은 책들도 꽤나 되었다. 추억의 책들을 둘러보며 제목짓는 일은 지루한 육아에 남모르는 재미를 얹어주는 시간이 되었다.      


이렇게 책방에서의 크고 작은 즐거움을 찾으며 함께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에 가입을 했다. 마침 공저라는 과정을 모집했다. 글쓰기에 30만원을 내야하는가?에 대해 굳이? 나는 이렇게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글은 스스로 쓰면서 연습하는거지~ 그리고 글쓰는 팁은 책이며 유튜브에 널렸잖아~ 이런 생각을 해왔었다. 그런데 모든지 타이밍이 있다!! 연말에 통장에 모아둔 돈 100만원이 있었다. 크리스마스에 ‘몽클레어’ 패딩을 사 입자 계획해서 한달에 10만원씩 모아둔 돈이었는데 ‘몽클레어’ 바람막이도 못 사는 하찮은 돈이 되어 있었다. 패딩 하나 가격이 300만원이 넘다니... 브랜드의 거품을 운운하며 스스로 계획한 ‘몽클레어 패딩 적금’이 고스란히 남아 있던 참이었다. 그 돈은 나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공저와 개인 글쓰기 모집글에 눈이 꽂힌 것이다. 이렇게 타이밍이란 정말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나의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수험기간동안 접어두었고, 결혼과 육아를 핑계로 노트북에 먼지가 수북이 쌓였었다. 노트북을 켜고 한글에 글을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머릿속 글들이 손으로 나오기까지 버벅거리고 타자도 실수가 많아 다시쓰기를 반복하며 글을 쓴다. 아이가 잠들면 글을 쓴다. 차 안에서 아이가 잠들면 깨워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조용히 노트북을 꺼내 몇자 더 적어내려간다. 잠든 아이를 깨우고 싶지 않은 엄마의 마음과 그 시간동안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게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      


매주 목요일 1시.

최고그림책방에 나의 글을 프린트해 들고 간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신이 나 책방을 찾아간다. 일주일동안의 숙제를 검사받고 내가 적어내려간 글들을 함께 이야기하며 글에대해 이야기한다. 글쓰기 연습을 하는 동안에는 아이를 대신 안아주신다. 낯가림이 없는 아이는 자신을 안아주는 사람들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그대는 누구지요? 하는 눈으로 말이다. 책방을 돌아다니며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아이에게 안부를 묻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부지런히 글을 짓는다. 그 시간동안 써내려간 글들을 다시 집으로 가져와 다듬으며 글을 완성해 나간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참 많다.

산후도우미 290만원이 아까워 더 발전적인 시간을 가져야한다는 생각에 도서관을 다니며 책을 읽고, 책방에서 진행하는 무료 글쓰기가 나를 책방으로 이끌었다. 몽클레어 적금이 글쓰기의 토대가 되었고, 지친 육아는 나의 스트레스를 글로 풀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이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 나의 꿈에 가까이 가까이 다다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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