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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dos Paul Jan 21. 2024

흑백의 음악

<류이치 사카모토 : 오퍼스>를 관람하고

<류이치 사카모토 : 오퍼스>를 관람하고 왔다. 평소 류이치 사카모토라는 이름만 종종 들어봤고 그의 음악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더욱이 나는 음악이라 하면 그저 듣기만 해 봤지, 감상한다거나 공부해 본 적은 초등학교 이후로 단 한 번도 없다. 이런 문외한인 내가 피아노 연주만을 103분 동안 담은 영화를 우연찮은 계기로 보게 됐고, 나름의 느낀 감상을 짤막하게 적어보려 한다.


    우선 무슨 영화인고 하니, 흔히 영화하면 생각나는 그런 스토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100여 분이란 시간 동안 스크린은 그저 류이치 사카모토가 피아노로 20개의 곡을 홀로 연주하는 모습만 보여준다. 카메라도 아주 천천히 움직이며, 서서히 확대하거나 축소하고 몇 가지 구도로 사카모토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이게 전부다. 즉 통상적인 영화는 아니고, 오히려 스크린을 통해서 감상하는 일종의 '디지털 연주회'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영화는 사카모토의 피아노 연주와 더불어 그의 숨소리, 악보를 넘기는 소리, 페달 소리 등 미세하고 사소한 소리들마저 놓치지 않고 모두 녹음하여 영화에 담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중후반부, 그러니까 대략 한 시간 정도까지는 별 감흥이 없었다. 관람하던 당시 조금 피곤했던지라 졸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갑자기 영화의 전체 구조가 조금씩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나름의 해석이 떠오르자 그때부터 굉장한 몰입과 함께 그의 음악에 빨려 들어갔다. 


    앞서 말했듯, 나는 음악 문외한인지라 음악을 감상한다는 행위 자체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의 피아노 선율을 그냥 듣고, 생각하고, 또 듣고, 의미를 부여하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해석했다. 



    우선, 영화는 전체 배경을 흑백으로 처리했다. 색이라고는 흰색과 검은색, 그리고 그 둘의 비율만 달리 한 조합으로 도출된 회색뿐이다. 흑백은 다양한 색채로부터 오는 생기를 모두 포기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생동감 따위라고는 전혀 없으며, 메마르고, 죽어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영화 내내 들려오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 속에는 너무나 이상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려 발악하는 듯한 한 줄기의 생기가 들어있다. 영화 속에서 그가 연주하는 대부분의 곡의 분위기는 무겁다. 활기차다는 인상을 받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생기의 불씨가 남아있다. 그 한 줄기 생기는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그와 피아노를 비추는 단 하나의 조명과 대응된다.

    


    어두컴컴하고 침침한 전체 공간 속에서 그에게 비치는 단 한 줄기의 빛, 그것의 존재를 인지하자마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파도처럼 내 안에 밀려 들어왔다. 마찬가지로 무겁고 어두운 그의 음악 속에서 뛰노는 경쾌한 선율이 들려올 때의 그 감동은, 영화를 보고 몇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내 안에 여운으로 남아있다. 부조화 속의 조화, 무질서 속의 질서이다. 


    그렇게 조금씩 쌓아 올려지고 고조된 감동은 19번째 곡, 'Merry Christmas Mr. Lawrence'에서 터져버렸다. 앞선 곡들과는 미묘하게 달라진 분위기, 중반부에 스타카토처럼 연주하는 코드 진행은 가히 폭풍우 속에서 힘겹게 나아가는 누군가, 바로 사카모토 그 자신을 연상시킨다. 나는 그의 인생사를 잘 모르지만, 이 영화를 촬영할 때 이미 암투병 중이라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촬영할 때 그는 이미 죽음을 직감하고 있었다고 하고, 촬영 후 대략 6개월 뒤 사망하였다. 죽음을 앞둔 거장은 도대체 어떤 심정으로 곡을 연주했을까. 감히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암이라는 지독한 운명 앞에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던 그의 연주를 들으며 죽음이라는 명백한 엔딩을 알고 있음에도 힘겹게 거대한 파도를 헤치며 음악 활동을 이어가는 그의 삶을 머릿속에 그리며 감상을 마쳤다.


    영화가 끝났음에도 쉽사리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엄청난 여운에 휩싸인 채 그 장엄함과 고고함에 압도되었던 것이다. 어쩌면 죽음이라는 삶의 흑백 배경 속에서 그가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었고, 또 붙잡았던 것은 음악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이제 그는 인생이라는 여정을 마치고 떠나갔다. 그러나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것처럼, 


ars longa, vita brevis.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언젠가 내 인생의 배경이 흑백처럼 보일 때, 나는 두고두고 사카모토의 연주를 떠올릴 것 같다. 이것이야말로 영원히 남게 될 그의 질긴 예술이 아니겠는가. 또 다른 영화 상영일을 찾아보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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