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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dos Paul Jan 22. 2024

모네와 인상주의 (1)

강동아트센터에서 개최한 전시회인 <모네와 인상주의>를 관람하고 왔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상주의의 대표적인 화가 중 한 명인 클로드 모네의 그림들이 중심이 되는 전시회다. 우선 필자는 미술에 관해서 문외한임을 밝힌다.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초등학교 미술 시간이 필자가 미술을 공부한 마지막 기억이고, 미술품을 감상한다든지의 행위는 전혀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우연찮은 계기로 이 전시회를 관람하게 되었고, "미술이란 것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었구나, 이렇게 강력한 것이었구나",라는 인상을 받아 이렇게 감상문을 작성하게 되었다. 


    우선 인상주의에서 '인상'이라 함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전시회 해설 영상에 의하면 '하나의 대상에 대하여 마음에 새겨놓은 느낌이나 감정'이라고 한다. 즉 대충 생각해 보면, 어떤 대상 그 자체에 집중하고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을 보고 느낀 순간의 나의 감정과 인상을 중요시하고, 그것들을 화폭에 담아내는 사조가 인상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상당히 부족한 설명일 것이다. 다만 필자가 미술 문외한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양해해 주시길...) 


    이것은 대상을 정확하고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자 했던 이전까지의 고전주의와는 확연히 다른 입장이다. 그리고자 하는 대상은 정해져 있어서 변하지 않고 정체되어 있는 그 순간의 이미지를 엄격하게 모방하고 따라 그리는 정통적인 접근 방법으로부터 탈피하여 대상물을 바라보는 각 개인의 고유한 '인상'과 순간의 감정을 담아내는 방법으로 접근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인 클로드 모네는 여기서 더 나아가, 각 그림을 이루고 있는 개별 요소들, 예컨대 사람과 같은 대상에 집중하여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의 자신이 보고 느낀 풍경 전체의 모습을 조화롭게 그려내었다. 


라 그르누예르



    <라 그르누예르>를 보자. 그림 속 분위기는 매우 평화로워 보인다. 이때 사람 한 명 한 명을 주목해서 보면, 약간은 대충 그렸다고 보일 정도로 그저 형태만 단순하게 그려 넣었다. 그러나 이런 성의 없는 각 인물들마저 주변 사물들, 즉 배와 물가, 나무 같은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전체적인 그림으로 감상자에게 다가올 때 편안하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일렁이는 것처럼 보이는 물가 부분을 확대해서 보면, 이 시각적 효과가 투박하고 단순해 보이는 모네의 몇 번의 붓질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단순하게 보이는 붓질들이 모여서 놀랍도록 조화로운 전체 그림을 창발 해낸다. 또 하나의 특징 중 하나는 사물과 주변 환경 간의 경계가 그리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각각의 개별적인 물체와 색채들을 부각하려는 것이 아닌, 자신이 느낀 순간의 그 감정 하나만을 온전히 표현하려 했던 모네의 의도가 아닐까 해석해 본다. 이러한 특징들은 비슷한 작품은 <라 그르누예르의 수영객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라 그르누예르의 수영객들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개별 인물들을 세심히 그려내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또 무엇일까. 어쩌면 다른 이들을 자신이 함부로 규정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아니었을까. 특정 인물을 자신이 본 그대로 세심하게, 구체적으로 그려내다 보면 그 모방성 자체는 훌륭할 수 있겠으나, 그 인물은 그 그림 안에서 그저 화가가 바라보기만 하는 하나의 수동적인 대상물로써 전락하고 만다. 누구나 자신이 타인에 의해서 규정받고 억압받지 않길 바라기에, 모네 또한 타인을 그렇게 판단하기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을까. 따라서 경계를 뭉뚱그리고 다소 모호하게 표현하면 그 인물에 대해서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없게 되고, 그저 미지의 인물로 남게 됨과 동시에 주변 환경과의 관계성이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원자들 간의 결합 그 자체에 에너지가 있듯이, 각 개별 구성 요소들이 인상을 주고 각각에게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요소들 간의 맺어진 관계성, 주변 환경과의 조화 그 자체가 깊고 아름다운 인상을 준다. 


루앙 대성당 연작



    이러한 특징은 위 <루앙 대성당> 연작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 모네는 루앙 대성당이라는 하나의 건축물을 동일한 장소에서 날씨만을 달리하여 여러 시간에 걸쳐 그려내었다. 생각해 보라. 대성당이라는 건축물을 그와 관계를 맺고 있는 외부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그 자체로만 바라보게 된다면 이러한 연작이 등장할 수 없다. 이처럼 단일한 대상을 말할 때조차 그 대상이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주변을 배제하고 말할 수 없다. 이는 대상들과의 관계 그 자체에 힘이 있기 때문이다. 즉 같은 대상이라 할지라도 그 순간의 상황에서 주변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느냐가 그 순간의 인상을 결정하고, 이는 하나의 작품으로써 고유한 감각을 만들어낸다. 같은 대상이라 할지라도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 이러한 인상주의 작품, 그중에서도 모네의 작품들의 특징이라 생각한다.


풀밭 위의 점심



    전시회의 부제인 '영원한 빛의 화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네는 빛이 어떻게 비치는지, 빛이 어떻게 그토록 다양하고 다채로운 색채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주목했던 것 같다. 작품 <풀밭 위의 점심>에서는 등장하는 인물들에게서 역동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단지 서로에게 보내는 시선만이 관찰된다. 그러나 작품 전체를 보다 보면 머리 위에서부터 쏟아내려 오는 빛에 주목하게 된다. 빛은 나뭇잎들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인물들의 옷 위에 떨어져 번쩍임을 만들어내고, 풀밭과 보자기 위에 떨어져서 빛나는 부분들이 자신의 영역임을 알린다. 빛은 실제로 인물들이 풀밭 위에서 편안한 분위기 속에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생동감 있는 모습을 만들어낸다. 모네는 빛이 작품 속의 수많은 요소들에 부딪히는 모습을 그려내었다. 이는 지금도 풀밭을 내리쬐고 있는 햇빛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모네는 자신에게 비치는 대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으며, 거기서 온 자신만의 고유한 인상을 충실하고 투철하게 화폭에 담아내었다. 그토록 투박하고 성의 없어 보이는 붓질들로부터 어떻게 이토록 조화롭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낼 수 있었는지, 전시회를 떠난 지 꽤 시간이 흐른 지금도 작품을 다시 볼 때마다 감동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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